주간동아 803

2011.09.05

日 노다 총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나

21년간 17명째 단명 정권 속출…강력한 지도력 부재로 국정은 계속 표류

  • 도쿄=이종각 한일관계 전문 칼럼니스트

    입력2011-09-05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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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노다 총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일본 총리가 또 바뀌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동일본 대지진(2011년 3월 11일)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여론과 당내 비판을 이기지 못한 채 재임 1년 2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그리고 8월 30일 후임 총리에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54) 재무상이 취임했다.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노다 후보는 당내 최대 계파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의 지지를 등에 업은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 경제산업상에게 1차 투표에선 뒤졌으나 결선투표에서 극적으로 승리, 총리 자리에 올랐다. 경선 전 여론조사 지지율이 4%에 불과한 데다, 당내 기반도 취약한 노다 후보가 승리한 것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 중인 오자와에 대한 반(反)오자와 정서에 힘입은 바 크다.

    이로써 쇼와(昭和)시대(1926~89년)가 끝나고 헤이세이(平成)시대(1989년 11월~)가 열린 이후 21년여 동안 일본 총리는 총 17명이 바뀌었다. 노다 총리 이전 16명 가운데 가장 길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정권 5년 4개월을 제외하면, 나머지 15명의 재임기간은 평균 1년 2개월이다. 지난해 중국에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내줬지만 그동안 세계경제를 리드해온 일본의 총리 재임기간이 중고등학교 반회장 임기와 비슷한 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총리는 일본의 개혁과 변화를 외쳤다. 그러나 아무리 특출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도 재임 1년 남짓 만에 국정을 개혁하는 업적을 남기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1955년 이후 장기 집권해온 자민당 정권 말기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아소 다로(麻生太) 정권의 존속 기간은 평균 1년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정권 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은 8개월 만에, 간 정권은 1년 2개월 만에 퇴진함으로써 초단명 정권이 5대째 계속되고 있다.

    ‘헤이세이 불황’으로 정치 불안정



    한국에서 현행 헌법의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는 대통령 임기가 너무 짧아 임기 중반부터 레임덕 현상이 일어나는 등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된다. 헤이세이시대 20여 년간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던 고이즈미 정권이 유일하게 한국 대통령 임기와 비슷한 5년 남짓이었던 만큼, 최근 일본 정권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음을 웅변한다.

    공교롭게도 헤이세이시대가 시작한 지 1개월여 후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는 버블붕괴(1990년 1월)가 시작됐고, 지금까지 장기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불황을 흔히 ‘헤이세이불황’이라고 부른다. 일본이 버블붕괴 이후 20년 이상 침체와 혼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정치 불안정, 특히 1년 남짓의 단명 정권이 계속된 점도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계속 이어지는 단명 정권은 일본이 국가 장기발전 비전을 입안 및 추진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혼미를 거듭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본 정부가 국가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좋은 예가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대응이다.

    일본은 2011년 9월 현재까지 한국과의 FTA 논의를 몇 년째 방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떠한 FTA 논의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지 않다. 물론 FTA를 해야 경제가 좋아진다든지, FTA만이 어려운 경제를 살리는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대국에다 통상국가라고 자부하는 일본이 FTA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자유무역으로 가는 대세에서 스스로 도태되는 행위다.

    특히 끊임없는 총리 교체는 일본의 가장 강력한 동맹인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예를 들어, 미국은 역대 일본 정권과 오키나와 미군 비행장 이전 문제를 협의해왔으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동안의 의견 접근이 물거품되는 상태를 10년 이상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외국 정상이 일본 총리와 어떤 사항에 합의해 발표해도 총리가 곧바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빈번해 합의사항은 휴지조각이 되곤 한다. G8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일본 총리는 매년 얼굴이 바뀌어 다른 국가 정상들은 신임 일본 총리와 새롭게 인사를 나눠야 한다.

    日 노다 총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그렇다면 최근 일본에서 단명 정권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집권(1979년) 이후 재임 11년간 과감한 개혁으로 ‘영국병’을 치유한 영국 마거릿 대처나 과거 자민당 출신 총리 가운데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1964~72년 재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1982~87년 재임)처럼 비교적 장기간 재임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정치지도자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토, 나카소네는 국민에게도 상당한 인기가 있었고, 일본 매스컴은 그들을 ‘대통령형 총리’라고 불렀다.

    앞서 언급한 자민당 집권 말기의 아베, 후쿠다, 아소, 그리고 민주당의 하토야마는 총리를 지낸 아버지나 조부의 후광을 얻은 ‘세습 총리’다. 이들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권력을 잡은 지도자가 아니다. 아버지 등의 정치기반을 물려받은 ‘세습 의원’으로, 온실에서 자라 총리가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들에게는 당면한 난관이나 위기를 극복해 국가를 이끌어가겠다는 정치지도자로서의 강력한 의지와 능력이 없었다.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하면 그냥 총리직에서 물러나버리는 것도 단명 정권 속출의 한 원인이다.

    자민당은 민주당 흔들기 계속

    또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선거에서 자민당을 이기지 못해 자민당이 제1당으로 장기 집권하면서 자민당의 각 파벌 보스가 나눠 먹기식으로 총리 자리에 앉은 점도 단명 정권이 이어진 한 원인일 수 있다.

    노다 총리는 자위대원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정교사, 도시가스 점검원 등 어려운 생활을 거쳐 정치에 입문한 5선 의원이다. 그에게는 대지진 복구와 원전사고 수습, 국가채무 감축, 엔고 대책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최근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일본 국채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내렸다.

    노다 총리는 간 정권의 무상복지정책 수정, 소비세 인상 방침에 찬성한다. 그러나 당내 최대 파벌인 오자와 그룹은 이에 반대해 당내부터 추슬러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으며, 여소야대 형국인 참의원은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게다가 외교 문외한인 그는 “모두 사면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엔 A급 전범이 없다”고 말할 만큼 극우, 군국주의적 역사관을 지녔다. 총리 재임기간 중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다면 한국, 중국과 외교 분쟁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1야당인 자민당은 여론지지도가 낮은 민주당을 조기에 흔들어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를 통해 재집권하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 민주당 대표에 선출된 노다 총리는 간 전 총리의 사퇴에 따른 잔여 임기(내년 9월 말)만 맡기 때문에 임기는 1년에 불과하다. 앞으로 당내 기반이 약한 노다 총리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곧바로 레임덕에 빠지고, 간 전 총리처럼 사퇴 공세에 시달려 또다시 단명 정권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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