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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味食生活

입맛은 여전하다, 음식이 변했을 뿐

도토리묵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맛은 여전하다, 음식이 변했을 뿐

입맛은 여전하다, 음식이 변했을 뿐

맛있는 도토리묵은 한쪽 끝을 잡고 들었을 때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차져야 한다. 또 쫀득하고 찰랑한 질감에 쌉싸래한 맛과 구수한 향이 있어야 한다.

유명한 산의 등산길 초입에는 반드시(?) 막걸리집이 있다. 또 막걸리 안주로 반드시 도토리묵이 있다. 그 집에서 직접 쑨 묵임을 확인해주기 위해 사발에 굳힌 도토리묵이 가게 앞에 진열돼 있는 것이 보통이다.

등산객들은 이런 곳에 앉아 막걸리와 도토리묵을 먹으며 꼭 한두 마디 토를 단다. “이건 뚝뚝 끊어지는 것이 밀가루가 섞였다.” “옛날에 먹던 그 맛이 아니다. 어릴 적 도토리를 따다 드리면 할머니가 묵을 해주셨는데, 분명히 이 맛이 아니다.” 그러면 주인은 자기 가게에서 쑨 것이 확실하다며 주방에서 도토리 가루를 들고 나온다. 가루가 든 봉지에는 분명 ‘도토리 분말 100%’라고 적혀 있다. 등산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맛이 바뀌었나” 할 뿐이다.

하지만 입맛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릴 적 추억과 함께 먹었던 음식의 맛은 평생 기억된다. 특히 7세 이전에 먹었던 음식은 거의 각인되다시피 한다. 어릴 적 추억의 음식이라면 그 맛에 대한 기준은 당신의 기억을 믿는 것이 맞다. 그러니까 등산길 초입 가게의 도토리묵이 어릴 적 먹었던 그 도토리묵과 다르기 때문에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럼 그때의 도토리묵과 지금의 도토리묵은 무엇이 다를까.

먼저 고향 뒷산 도토리는 어떤 품종이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도토리는 다 같은 것 아니냐고? 아니다. 도토리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너도밤나무 등의 열매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 열매들이 모두 도토리묵 재료가 된다. 그런데 도토리는 나무마다 맛이 다르다. 예컨대 상수리나무의 도토리로 묵을 쑤면 쓰고 떫은맛이 강하고 구수한 맛은 아주 적다. 달고 구수한 맛이 가장 강한 것은 졸참나무 도토리다. 이 도토리는 속껍질을 까고 그냥 먹어도 맛있다. 자신이 어릴 적 어떤 도토리로 쑨 묵을 먹었는지에 따라 도토리묵에 대한 기호가 달라질 수 있다.

어릴 적 먹었던 그 도토리의 묵이라 해도 쑤는 방법에 따라 또 맛이 달라진다. 즉석에서 도토리묵을 쑤는 가게들은 ‘도토리 100%’라는 간판을 달고 있고, 마트에서 파는 도토리묵도 거의가 ‘도토리 100%’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도토리 100%’가 아니라 ‘도토리 가루 100%’가 맞다. 그러니까 도토리에서 전분을 뽑아내는 식품회사에서 도토리 가루를 구입해 만드는 묵이다. 예전에 집에서 하던 방식은 이와 달랐다. 알도토리를 물에 불렸다 갈고 끓여서 비지를 뺀 뒤, 다시 끓여 굳혔다. 알도토리로 쑤느냐, 도토리 전분으로 쑤느냐에 따라 맛이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또 하나, 도토리 전분이라 해도 끓이는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도토리묵 공장에서는 대부분 스팀을 이용한다. 도토리 전분을 푼 물에 고온의 증기를 쏘아 끓이는 것이다. 끓이는 시간과 솥 벽에 눌어붙는 것을 줄이기 위한 방식이다. 옛날 방식은 직화로 솥을 가열해 은근하게 장시간 쑨다. 어느 게 맛있을지는 금방 감이 올 것이다.

우리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그게 맛있고 맛없음이 요리사의 솜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식재료에 따라 이미 맛이 결정돼 있다. 도토리묵 양념을 아무리 잘해도 도토리묵이 맛없으면 절대 좋은 맛이 날 수 없다. 이런 눈으로 식당 주방을 살펴보자. 간장, 된장, 액젓, 두부, 국수, 참기름, 식용유, 밀가루, 어묵 등. 대충 식재료만 봐도 요리사가 솜씨를 발휘하기 전 그 맛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은 좋은 식재료가 80%를 좌우하고, 요리사의 몫은 나머지 20% 정도다. 좋은 식재료로는 한두 번 음식을 망칠 수 있어도 나쁜 식재료로는 단 한 번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



주간동아 2010.11.15 762호 (p82~82)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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