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8

2010.10.18

구수한 된장찌개 사람 잡았군!

이서군 감독의 ‘된장’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10-18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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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수한 된장찌개 사람 잡았군!
    이건 마술이다. 12년 만에 부활한 사형의 당사자가 된 살인마가 죽기 직전 된장을 추억한다. “아, 그 된장찌개 맛 한번 보고 싶다”고 말이다. 한 방송국 피디가 이 말에 솔깃해 된장을 추적한다. 그런데 들을수록 이상하다. 연쇄살인범이자 탈주범이었던 그 남자가 어느 산장에서 정신없이 된장찌개를 퍼먹고 있다가 손목에 수갑을 찼다. 더 놀라운 것은 그를 검거하러 간 형사와 경찰들도 된장찌개 냄새에 빠져 탈주범이 마지막 숟가락을 놓을 때까지 꼼짝도 못했다는 것. 아, 그 냄새란! 대답하는 사람마다 입에서 침을 흘린다.

    사람들은 간혹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 등의 수식어를 동원해 맛을 설명한다. 아주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설명도 길어진다. 하루에 두세 개 볼 수 있을 맛집 소개에선 이런 멘트가 빠지지 않는다. “아, 정말 맛있어요. 난생처음 보는 맛이에요.” 그런데 맛이야말로 얼마나 설명하기 힘든가? 아무리 그 맛을 설명해봤자, 한 숟가락 떠보기 전까지는 주관적 체험에 불과하다. 아무리 상상한들 결국 먹어보는 것 말고는 별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서군 감독은 이 맛을 장장 110분가량의 드라마로 끌고 나간다. ‘식객’류의 맛 탐방 드라마가 놓쳤던 맛의 핵심을 이 감독은 신비와 초월적 마술로 재구성해낸다. 그것도 일주일이면 두세 번은 먹는 국민음식 된장을. 하지만 집마다 맛이 달라 인구수만큼 다른 맛이 있을 정도인 까다로운 음식이다.

    그 된장은 마술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죽은 여자 위에 된장이 흩뿌려져 있었는데 그곳만 부패하지 않고 깨끗이 보존됐다. 분명 된장인데 꽃향기가 났다. 성분을 조사해보니 된장에 100% 성분의 염화나트륨이 있었다. 알다시피 세상에 100% 염화나트륨이라는 게 실재할 수 있는가. 그래서 피디는 이 맛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콩밭, 옹기 장인, 염전을 찾아 헤맨다. 흥미로운 것은 맛의 비밀을 찾는 과정이 그 마술 같은 된장을 만들어냈던 묘령의 여인 장혜진을 찾아가는 과정과 겹친다는 것이다. 장혜진을 찾으러 갔다가 옹기의 비밀을 알고, 소금의 비밀을 알러 갔다가 장혜진의 흔적을 만나는 식이다.

    결국 마술적이며 환상적인 된장 맛의 비밀은 ‘사랑’으로 밝혀진다. 영화 ‘된장’은 남미의 초월적 마술주의 작품인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처럼 음식의 향연과 맛의 기적을 드라마로 구성한다. 하지만 영화 ‘된장’은 남미식 초월적 마술주의를 뛰어넘는 어떤 지점에 도착한다.

    100% 소금의 원리는 바로 순도 높은 사랑에서 빚어진 눈물이다. 음식 맛의 원천은 사랑이라는 내용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이야기를 펼쳐내는 솜씨는 다이내믹하고 리듬감이 있다. 순서대로 혹은 사건대로 풀었더라면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가 영화라는 마술을 통해 초현실적 환상과 만난다. 매화가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경 너머로 젊은 남녀가 맞잡은 손이 있어야만 이 환상은 완성된다.



    장진 감독은 ‘한국 코미디 영화감독’이라 자칭하지만, 내 생각에 그는 ‘한국형 미스터리 스릴러 거장’이다. 영화 ‘된장’ 역시 각본에 장진이 참여했고 제작도 해 여기저기서 그의 ‘냄새’가 난다. 최근에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장진이 직접 나서지 않고, 한발 물러서 각본이나 제작을 할 때 훨씬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12년 만에 돌아온 이서군 감독의 ‘된장’은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영화라고 확신한다. 한국 영화가 기다려온 환상적이면서도 아름답고 깊이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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