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5

2017.04.26

대선 여론조사 결과에 담긴 숨은 1인치 ⑩

여론조사와 득표율의 함수관계

역대 공식 선거운동 전후 조사 결과와 실제 득표율 비슷해…이번 대선엔 ‘글쎄’

  •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ankangyy@hanmail.net

    입력2017-04-24 11: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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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표 논란은 2002년 12월 16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무소속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 합은 40〜45%를 오갔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30%대 중·후반에 머물렀다. 누가 봐도 이 후보의 명백한 열세였다. 그러나 이회창 캠프는 승리를 자신했다.

    11월 25일 후보단일화가 이뤄진 다음에도 승리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10% 내외의 숨은 표가 있다는 주장이 그 근거였다. 숨은 표를 두고 숱한 논란을 겪었다. 숨은 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입증할 수 없었다. 또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실제 그해 6월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호남 3곳과 충남을 제외하고 전국 광역단체장을 석권했다. 여론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접전을 펼칠 것으로 봤다. 그러나 개표 과정에서 숨은 표가 대거 쏟아져 나왔다. 이런 숨은 표의 강렬한 기억 탓에 이회창 캠프는 여론조사의 열세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개표 결과 이 후보는 2.3%p 차로 패배했다. 숨은 표 때문인지 이 후보의 득표율은 여론조사 지지율보다 높았지만 전세 역전은 없었다. 2002년 숨은 표 얘기가 세상에 나온 이후 선거 때마다 그와 관련된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열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크게 승리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치른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불리한 전세를 뒤집고 야당과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숨은 표는 총선, 지방선거에서 주로 2위 후보나 정당에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대로 승패 갈려

    그러나 대선은 총선, 지방선거와 다르다. 대선은 보수, 진보, 지역, 세대가 총동원된 진영 대립으로 치닫기 일쑤다. 투표율도 70% 전후로 총선, 지방선거보다 20%p가량 높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선은 숨은 표가 끼어들 틈새가 크지 않다. 과거 대선은 공식 선거운동 전후 여론조사와 최종 결과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2년 18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은 11월 27일 시작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28일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45.0%였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42.0%로 나타났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실제 득표율은 박 후보 51.6%, 문 후보 48.0%. 공식 선거운동 전후의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득표율이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다(그래프 참조). 선거운동 기간 일부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앞서기도 했다. 당시 문재인 캠프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추격세가 이어졌고, 숨은 표가 상당수 나오리라는 전제로 승리를 기대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도 공식 선거운동 전후 여론조사와 실제 득표율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11월 25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지지율 38.8%,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14.4%를 나타냈다. 실제 득표율은 이 후보 48.7%, 정 후보 26.1%였다. 2002년 16대 대선도 그랬다. 11월 25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43.5%,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37.0%를 기록했다. 실제 득표율도 노 후보가 48.9%를 나타냈고, 이 후보는 46.6%를 얻었다.

    1997년 15대 대선도 마찬가지다. 11월 29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지지율은 32.8%로 나타났고, 이회창 후보는 29.3%였다. 실제 득표율도 김 후보는 40.3%를 얻어 이 후보의 38.7% 보다 앞섰다. 공식 선거운동 전후 여론조사와 실제 득표율이 비슷하다는 원칙은 92년 14대 대선에도 적용된다. 선거 여론조사가 최초로 실시된 87년 13대 대선에서도 여론조사와 실제 득표율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번에는 숨은 표 위력 발휘될까

    직선제 개헌으로 치른 모든 대선에서 공식 선거운동 전후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득표율은 거의 비슷했다. 이번 대선에도 이런 공식이 적용될까. 4월 17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사흘 전인 1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지지율 40.0%를 기록해 37.0%를 얻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오차범위에서 앞섰다. 18일 서울신문 여론조사는 문 후보 37.7%, 안 후보 34.6%로 역시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이었다. 19일 JTBC 여론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42.0%를 얻어 31.8%를 보인 안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공식 선거운동 전후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문 후보가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과거 대선 패턴이 지속된다면 문 후보가 승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 대선이 과거와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은 보수와 진보, 여야, 지역 대결 구도가 아니다. 호남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두 야권 후보가 맞붙는 사상 최초의 선거다. 20〜40대는 문 후보 지지, 50대 이상은 안 후보 지지로 갈렸을 뿐 모든 것이 낯선 풍경이다. 섣부른 예측이 어려운 이유다.

    가장 큰 변수는 보수층의 움직임이다. 선거가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보수층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아직까지 보수층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과거 여론조사에서는 보수층 의견이 과다 반영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만큼 보수층은 여론조사에 적극 응했다. 이 점을 보완하고자 휴대전화 조사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조사, 인터넷 조사가 도입된 것이다.

    지금은 반대다. 보수층 의견이 과소(寡少) 반영되고 있다. 가정 일반전화보다 휴대전화 응답률이 더 좋다. 특히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 부산·경남, 충청보다 야당 성향이 강한 호남, 수도권에서 응답률이 더 좋다. 20〜40대는 여론조사에 적극 응답하는 데 비해 60세 이상은 상대적으로 응답률이 저조하다. 보수층의 향배에 ‘공식 선거운동 전후 여론조사 결과=실제 득표율’이라는 대선 공식의 운명이 달려 있다. 또한 대선 최초로 숨은 표가 나타날지 여부도 관심사다. 보수층은 언제쯤 침묵을 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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