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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로버, 밀수범 잡는 공항의 비밀병기

관세청 비밀 세관원 거미줄 감시…“수상한 걸음걸이, 딱 걸렸어!”

  • 주성민 군사전문 자유기고가 bluejays@kebi.com

로버, 밀수범 잡는 공항의 비밀병기

반팔의 폴로셔츠를 입은 두 남자가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왔다. 잠시 후 40대로 보이는 3명의 남자가 두 사람과 슬쩍 합류하면서 검사장으로 향했다. 그때 이런 움직임을 지켜보던 비밀요원이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지금 내려간다. 모두 다섯 명이다.”

홍콩에서 온 그들은 항공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감시 대상이었다. 그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고, 비밀요원은 이미 자료를 PDA로 전송받아 감시 중이었다. 검사장으로 내려온 그들이 캐러셀(carousel·수하물 컨베이어벨트) 앞으로 가자 다른 비밀요원이 거리를 두고 접근했다. 그들은 저마다 꽤 부피가 큰 여행가방을 찾아 카트에 싣고 세관 검사라인으로 다가갔다. 카트를 밀고 온 그들에게 마셜(Marshall)이라 불리는 검사지정관이 물었다.

“신고하실 게 있나요?”

20대 여성 마셜의 질문에 한 남자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재빨리 다가온 비밀요원이 검색을 지시했고, 마셜은 그들을 검색대로 데려갔다. 마셜은 그들의 가방을 검색했으나 옷가지 외에는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 그러나 정밀검색 결과 가방의 바퀴가 문제였다. 그들이 가져온 대형 여행가방의 바퀴가 모두 금이었던 것. 검은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고무까지 입힌 황금바퀴였다. 금은 모두 30kg이었다. 이 사건은 2004년 6월에 적발된 아주 기발한 금괴밀수 사건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그들을 감시한 사람들이 바로 공항세관의 비밀감시요원 로버(Rover)다.



입국장을 순회 감시하는 로버

로버는 입국장에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며 감시할 대상을 찾아내고 추적하는 일을 한다. 오랜 현장 경험과 훈련된 감각으로 무장한 이들은 입국장을 돌아다니면서 여행자 속에 섞여 은밀하게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고 표정을 읽으며,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나 자연스럽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낸다. 필요하다면 곁을 지나가며 대화를 엿듣기도 한다. 반입이 금지된 물건을 숨겨 들여오는 범법자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관은 여행자의 ‘사전정보 분석 시스템’인 아피스(APIS)를 운용해 항공기가 도착하기 전에 승객들을 미리 분석한다. 어느 지역을 방문했고 어디를 경유했으며 어느 항공사를 이용하는지, 관세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지 등 모든 자료를 컴퓨터로 분석한다. 아피스를 통해 전체 승객 중 5% 내외의 검색 대상자가 사전에 지정되고, 자료와 정보는 로버의 PDA로 전송된다. 그러나 나머지는 로버가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로버제도가 잘 운영되는 나라다. 10여 년 전 관세청은 요원들을 선발해 호주에서 교육을 받게 했고, 인천국제공항은 개항 초기인 2001년부터 로버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공항세관은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휴대품은 엑스레이 검사를 하지 않는다. 거기다 세관에 신고할 게 없는 승객에겐 신고서도 안 받기 때문에, 밀수품 반입에 대한 취약한 방어체계를 보완하고자 로버가 활동한다.

로버는 24시간 근무로 8개 ‘검사관실’에 소속돼 하루 2개 조로 나눠 12시간씩 근무한다. 이들은 10시간 이상 걷고,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일의 강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홍콩이나 방콕, 오사카 등 ‘우범지역’으로 분류한 도시에서 항공기가 왔을 때는 1개 조가 더 투입돼 집중감시를 한다. 로버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범법자를 가려내는 덕에 선량한 90% 이상의 여행자가 검색 없이 신속하게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관세청은 로버의 감시업무를 비밀로 하므로 언론의 취재를 꺼린다. 로버의 활동이 노출되면 운용에 문제가 생기거나 인권침해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세관의 비밀병기에 해당되는 로버는 여자 요원을 포함해 100여 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밀수의 마지막 방어선 마셜라인

로버, 밀수범 잡는 공항의 비밀병기

명품 시계, 고급 와인 등 값비싼 물품이 밀수되는 만큼 로버는 끊임없이 브랜드 정보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2009년 1년간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사람은 1146만 명이고, 2010년 하루 입국자는 3만7000명이다. 이렇게 많은 여행자를 모두 다 검색할 수는 없다. 세관은 4단계의 감시체계를 운용한다. 1단계는 아피스를 통해 검색대상자를 지정한다. 2단계는 화물을 ‘엑스레이 검사실’에서 판독해 검색이 필요한 물품에 ‘전자 실(seal)’을 부착한다. 3단계는 로버가 찾아낸다. 4단계는 마지막 통과라인인 마셜이 직접 검색해 찾는다.

마셜은 여행자에게 일일이 물어보고 대답을 들으며 검색 상대를 결정한다. 짧은 질문을 던진 후, 대답을 듣고 표정을 살피며 검색 여부를 불과 몇 초 안에 판단한다. 고작 몇 마디를 나누며 사람을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셜이 있는 검색라인은 범법자를 찾아낼 수 있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그래서 이 라인을 ‘마셜라인’이라 부른다. 마셜이 서툰 감각으로 실수하면 범법자에겐 행운이 될 테고, 이 사람 저 사람 모두를 검색하다가는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원망을 듣게 될 것이다.

마셜은 경험으로 다져진 감각과 순발력으로 대상자를 집어내야 한다. 문제가 있는 사람은 초조한 기색을 보이기 쉬우므로 표정을 읽는 게 중요하다. 반복되는 밀수방법으로는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홍콩에서 입국한 영국 여성은 동전 모양으로 만든 금괴를 콘돔에 넣어 자신의 은밀한 신체에 감춰 들여왔다. 그런 상태에서 걸음걸이는 자연스럽지 못하게 마련이다. 수상하게 생각한 마셜이 금속탐지기로 검색하자 몸 안에 숨긴 금이 드러나고 말았다.

한 여행자는 입국할 때마다 전기 드릴을 사가지고 왔다. 아피스 분석을 통해, 반복되는 행동에 의문을 품은 로버가 마셜에게 검색을 지시했다. 정밀검색 끝에 찾아낸 것은 중형 전기 드릴의 부품이었다. 그는 부품을 빼내고 금괴를 녹여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넣었던 것이다. 금을 숨겨 들여오는 이유는 해외 금값이 우리나라보다 싸기 때문이다. 따라서 밀반입에 성공하면 큰돈을 번다. 이런 부단한 노력과 아이디어 탓으로 국내 금 거래량의 60% 이상은 밀수돼 대부분 암거래로 유통된다.

수년 전, 한 아일랜드 남자는 방송용 장비인 ENG 카메라를 가지고 검색대를 통과하려고 했다. 엑스레이 검사실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실’을 부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관찰하던 로버가 검색을 지시했다. 카메라가 한 대에 배터리가 13개라는 게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마셜은 배터리를 카메라에 연결했다. 그러나 전원이 들어오면서 카메라는 정상적으로 작동됐다. 마셜은 난감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 뜯어봐도 되겠지요?”

성질이 보통 아닌 아일랜드 남자가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

“빌어먹을, 정 뜯고 싶다면 한 개에 100달러씩 변상해.”

아일랜드 남자들은 대체로 성질이 급하다. 한 대 얻어맞을 각오를 한 마셜이 배터리를 뜯었다. ENG 카메라 배터리는 크기가 상당하다. 그런데 배터리 속 충전물질이 반 이상 비워진 자리에 금괴가 채워져 있었다. 13개 배터리를 모두 ‘골드 배터리’로 만들었던 것이다. 적발된 금이 13kg이니 그의 배터리는 개당 3000만 원 이상 나가는 희귀한 배터리였던 셈이다.

화장실까지 추적한 레이디 로버

휴대품을 제외한 모든 화물은 엑스레이 검사를 거쳐야 한다. 검사실에선 전문 판독요원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검색할 화물을 찾아낸다. 판독요원은 오랜 경험을 통해 엑스레이로 투시된 술병의 형체만 보고도 어떤 위스키인지 알아낸다.

로버, 밀수범 잡는 공항의 비밀병기

세관 직원이 모니터를 통해 검색대를 통과하는 물품을 검사하고 있다.

검색이 필요한 화물은 4각형의 손바닥만 한 ‘노란색 실’을 부착한다. 만일 총기나 폭발물 등 안보와 관련된 것이 탐지되면 ‘적색 실’을 붙여 비밀요원의 집중감시를 받게 한다. 마셜라인 바닥에는 센서가 있어 전자 ‘실’을 매단 채 접근하면 경보음이 울려 검색대상자가 왔음을 마셜이 알게 된다. 여행자가 캐러셀 앞으로 갔을 때, 가방에 노란색 ‘실’이 달려 있으면 자신이 검색대상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때 시간낭비를 피하려면 마셜에게 털어놓는 게 좋다. 세관 검사장에서 도망갈 데라고는 화장실뿐이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입국한 한 여성이 화장실에 들어가 2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 여성은 아피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입국심사대에서 나올 때부터 레이디 로버가 뒤를 밟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 특유의 육감으로 감시당하고 있음을 깨닫고 화장실로 비상 도피했던 것이다. 기다리다 지친 레이디 로버는 화장실의 ‘장기 체류자’를 설득했다.

“여기 있어봐야 해결이 안 돼요. 관세만 내면 되니까 나오세요.”

여성은 자수했고 가방에 은닉한 10대의 라이카(Leica) 카메라를 내놓았다. 이 카메라는 독일제 기계식 카메라의 전설이라 상당한 값어치가 있다. 최근엔 값비싼 명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고급 와인은 위스키나 브랜디보다 비싼 게 많아 마셜은 끊임없이 브랜드 정보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2010년 6월, 한 병에 수백만 원이나 하는 최고급 명품 와인을 90달러짜리로 위장해 밀반입한 3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2006년부터 위장 반입한 와인 4400여 병을 상류층을 상대로 유통시켰다. 적발된 것 중 가장 명품은 와인 애호가들의 꿈인 1986년산 ‘샤토 라피트 로칠드’와 1981년산 ‘샤토 페트뤼스’였다.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두 와인은 세계적으로 최고급품에 꼽힌다. 현재 세관의 면세한도액은 400달러다. 해외에서 이것저것 사다 보면 400달러를 초과해 쇼핑하기 쉽다. 한도 초과로 걸렸을 때 실수를 인정하면, 세금 부과보다 경고하는 뜻에서 ‘본인신고’로 처리될 수 있다.

하지만 발뺌만 하면 가산세에다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 아피스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다. ‘미스터 블랙’이 되면 아주 골치 아파진다. 해외에서 들어올 때마다 ‘이유도 없이’ 마셜라인에서 피곤해질 일만 남는다. 면세점에서 구매한 모든 것은 기록된다. 한도를 초과한 구매가 여러 번 되풀이되면 역시 아피스의 정보 네트워크에 걸려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더 뻔뻔해져야 할 것 같다. 7월 말부터 ‘알몸 투시기’로 불리는 전신 스캐너도 통과해야 하니 말이다.

스캐너 앞에 서면 신체의 내밀한 윤곽이 선명하게 모니터에 드러난다. 여성의 가슴 형태와 남성의 성기 모양이 그대로 보이는데, 이미지 분석실에선 모니터에 비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이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며 사용금지를 권고했으나 국토해양부는 거부했다. 인천공항에는 3대가 설치돼 있고 7월 말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아피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알몸 스캐너’ 통과를 피할 방법이 없다.



주간동아 2010.07.12 745호 (p62~64)

주성민 군사전문 자유기고가 bluejays@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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