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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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4월 위기설의 실체

장기 내수 침체 위기설보다 무섭다

1300조 가계부채로 이자 못 갚는 한계가구 급증이 시한폭탄…경제계 “이미 빙하기 왔다”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3-27 14: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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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금리인상’을 ‘경제위기’의 또 다른 말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만큼 가계부채가 심각해 대출이자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급기야 얼마 전부터는 재계를 중심으로 ‘4월 위기설’이 돌고 있다.

    4월에 온갖 경제 악재가 겹쳐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대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더욱이 큰 경제위기가 10년마다 반복된다는 주기설도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4월 위기설의 주요 근거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 9400억 원 가운데 4400억 원이 4월 만기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수주 성공, 사옥 처분, 인원 감축 등을 통해 1차 채권 상환은 가능하지만 7월과 11월에 도래할 채권 상환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란 게 업계 생각이다. 만에 하나 대우조선해양이 부도가 나면 지역경제나 연관 산업에 끼칠 타격이 엄청나리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장기형’ 경기침체의 덫 

    다음으로는 미국이 매년 4월과 10월에 발표하는 환율보고서에 따라 중국과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기간 때부터 빼들었던 카드로, 만약 미국이 두 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대미(對美) 수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대미 무역흑자 302억 달러(약 33조 8180억 원)를 달성하고 경상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7.9%를 기록해 현재 환율조작국 바로 전 단계인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돼 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이 기존에 맺은 모든 무역협정을 재협상하겠다고 밝히며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도발 가능성과 탄핵정국에 따른 심리적 악재 등이 4월 위기설의 근거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만으로 4월 당장 경제환란이 일어나지는 않으리라는 게 여러 경제전문가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렇다고 낙관한다는 얘기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4월 위기설보다 더 큰 파도가 몰려올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바로 ‘장기형 경기침체’다. 통계를 보더라도 이미 우리나라는 L자형 저성장 경기침체기에 진입해 있다. 2년 연속 2%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저성장 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GDP는 설비투자 감소, 서비스업 성장 둔화 등으로 전년보다 2.7% 성장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사사분기에는 0.4% 성장하면서 5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국민총소득(GNI) 역시 전년보다 성장률이 둔화된 모습이다. 현재 유일한 희망은 글로벌 경제 회복에 따른 수출량 증대다. 2월 국내 수출물량은 26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하는 등 수출 회복세가 뚜렷하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17년 2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 따르면 2월 수출물량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 상승하며 넉 달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2월 수출물량 증가율은 2014년 12월 12.5% 이후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다. 화학제품과 수송장비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전반적으로 증가한 덕분이다.

    또한 2월 수출금액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2.2% 올랐으며 이는 5년 5개월 만에 최대 폭이다. 원유와 철강, 반도체 가격 상승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한미 간 금리 차 역전될 수도

    하지만 ‘4월 위기설’의 내용처럼 조만간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면 수출에 빨간불이 들어올 공산이 크다. 원화가치가 상승해 수출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시작하면 중국의 대미 수출 길은 좁아질 테고, 중국에 중간재를 공급해온 한국 수출기업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품목의 60% 이상이 재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반도체나 부품 같은 중간재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국내 수출 상승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미지수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서민 체감 경기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 회복세에 따른 거시경제는 호조세인 반면, 실물경기는 나날이 나빠지고 있는 것. 이는 내수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가처분소득은 줄고 고용 불안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미국에서 날아든 기준금리 인상 소식은 서민의 가계부채 공포를 더욱 구체화했다.  

    3월 16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연준)는 기준금리를 연 0.75%(상단 기준)에서 연 1.00%로 올렸다. 연준이 올해 세 차례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미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강세인 신호까지 나타나면 세 차례가 아닌 그 이상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연준이 2000년대 중반 2년여에 걸쳐 금리를 17차례(총 4.25%p 상승) 올렸던 걸 생각하면 미국 기준금리가 향후 언제, 얼마나 오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한국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 연내 한미 간 금리 차가 역전될 수도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연준이 세 차례 금리인상을 하면 연말쯤 연방기금금리는 1.25~1.5%로 한국 기준금리 1.25%를 넘어서게 된다. 한국 금리가 미국 금리보다 낮아지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미 간 금리 차가 역전되면 한국시장에서 해외자본 유출이 더욱 빈번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데, 그럼 대출금리가 높아져 가계부실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13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다. 이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주택담보대출로, 빚내서 집을 산 사람에게 가장 버거운 짐은 금리인상이다. 매달 납부해야 하는 대출이자가 많아지고, 자칫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다다를 경우 주택 가압류 등 최악의 상황도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부동산시장 붕괴도 우려된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계속 인상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3월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KEB하나·NH농협·신한·우리은행)의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만기 10년) 평균 금리는 3.45%로 지난해 12월(3.23%)과 비교해 0.22%p 올랐다. 이 중 국민은행은 3개월 사이 0.31%p를 인상했고 농협은 0.18%p, 신한은행은 0.14%p, 우리은행은 0.13%p 올렸다.


    ‘그림의 떡’ 소상공인대출

    최근 정부는 부동산시장의 과열을 가라앉히고자 대출규제정책을 펴고 있다. 그 결과 신용등급이 좋지 않아 제2금융권을 찾는 서민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이익은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저축은행은 17년 만에 최대 순이익을 올렸다. 79개 저축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8622억 원으로 전년보다 2218억 원(34.6%) 늘었다. 이는 1999년 이후 최대 규모다. 저축은행의 이자수익도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 저축은행 이자수익은 3조1267억 원으로 전년보다 6321억 원(25.3%)이나 늘어났다. 신용카드사를 제외한 할부금융사, 리스사(캐피털사) 등으로 구성된 78개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지난해 순이익도 1조54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5%(2183억 원) 증가했다. 대부업체의 대부잔액도 늘었다. 2016년 상반기 말 기준 대부업체의 대부잔액은 14조4000억 원으로 6개월 만에 1조1700억 원이 늘어났다.

    또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사람의 63%는 월세 등 생활비 마련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저소득층이 연 20% 이상 고금리를 감당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미 한계가구(가처분소득에 대한 원리금상환액 비중이 40% 이상이고,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은 가구)는 2015년 158만3000가구에서 지난해 181만5000가구로 14.7% 늘어난 상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영세 상인의 상황도 비슷하다.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문 닫는 가게가 크게 늘고 있다. 점포거래 전문업체 ‘점포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에 나온 점포 수는 2만4286개로 2015년 (1만4118개) 대비 72%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2만7908개) 상황과 비슷한 수준이다.

    현재 매물로 나온 점포는 대부분 영업난을 이기지 못해 처분하는 것인 만큼 평균 권리금도 전년 대비 3.6%가량 떨어졌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소상공인 사이에서는 ‘빙하기가 시작됐다’는 얘기가 떠돈다. 더욱 비관적인 건 지금보다 더한 추위가 찾아오리라는 전망”이라고 토로했다.

    최 회장은 정부의 소상공인 관련 정책이 있으나 마나 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내수가 이렇게 나쁜데도 지난해 정부는 소상공인의 세무조사를 강화해 세금을 2조 원이나 더 거둬들였다. 쥐도 도망갈 구멍은 만들어놓고 몰아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신용보증재단에서 제공하는 소상공인대출 역시 신용이 좋아야 받을 수 있어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 하위 30%의 소득 수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뒷걸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계층의 주요 일자리인 임시·일용직, 영세 자영업 등이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저소득층 일자리가 몰린 분야의 고용이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이들의 가처분소득도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더 오르면 한계가구는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금융, 주거, 복지 차원에서 종합적인 가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지금의 가계부채 문제는 금융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여러 부처와 함께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임대주택을 늘려 주거를 안정화하고 취약계층의 채무를 탕감해야 한다. 연체이자 금리체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시장 악화는 장기 경기침체의 대표적인 시그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식 실업자 수는 135만 명. 취업준비생, 주당 18시간 미만 근로자까지 합하면 약 450만 명에 달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 악화는 경기침체 시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이렇게 내수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려야 만들 수가 없다. 장기 경기침체기를 걷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재계, 대선주자에게 ‘제언문’ 전달

    여기에 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로 리스크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국정공백 사태로 정부는 내수 활성화 방안 마련은커녕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차기 정부의 ‘경제 리더십’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렸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5월 대선에 나설 대선주자들의 경제정책 공약들을 살펴보면 경기 활성화가 아닌 규제 성격의 내용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1월 “먼저 10대 재벌에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고 그중에서도 4대 재벌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재벌 해체’를 주장한다. 다른 대선후보들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주요 경제개혁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3월 22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 72명은 ‘제19대 대선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을 발표했다. 이 제언문을 통해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진단하면서 그 해법으로 공정사회, 시장경제, 미래 번영이라는 3대 틀과 9대 과제를 밝혔다. 박 회장은 그다음 날인 23일 이 제언문을 들고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5개 정당 대표를 직접 찾아갔다.

    회장단은 “(대선주자들은) 이번 제언을 늘 하는 얘기로 치부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지금처럼 경제가 엄혹한 상황에서 대선주자와 경제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자는 제안인 것이다. 또한 이번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더라도 기업의 경제활동까지 묶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항변이기도 하다.

    주요 기업이 검찰 조사 등 사정당국의 칼날 아래 놓여 있는 상황에서는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데다 가장 중요한 미래 먹거리 발굴 프로젝트까지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투자가 주춤하면 중소기업도 성장동력을 잃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번 제언문에는 ‘불신의 벽 허물기’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정부가 기업을 믿지 못하다 보니 일일이 규제하고, 정치권은 대립 프레임에 갇혀 제대로 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인 것. 또한 회장단은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수많은 일자리 공약은 제대로 된 노동개혁정책이라 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비정규직 불이익과 정규직 기득권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도 제언문에는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현 정부의 좋은 정책은 일관성 있게 추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복지를 지나치게 높여 복지 재원이 고갈되는 일은 지양해달라는 내용도 담겼다.

    성태윤 교수는 “대선 같은 큰 정치 일정을 앞두고는 경제가 더욱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경제계는 이에 경각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앞으로 우리 정부는 기업의 해외 이탈을 막고, 해외로 나간 기업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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