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5

2009.05.12

황사, 조사하면 다 나와!

한반도 주변 상공 한·일 공동 최초 관측 … 최첨단 장비 갖춘‘비치 200T’ 투입

  •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입력2009-05-08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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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사, 조사하면 다 나와!

    미국의 레이시온사가 만든 관측용 항공기 ‘비치 200T’ (아래큰사진). 관측에 나선 ‘비치 200T’ (작은사진중 좌측). 첨단 관측장비가 실려 있는‘비치 200T’ 내부 (작은사진 중 우측).

    베일에 싸인 한반도 서해와 동중국해 상공의 대기오염 실태가 한일 양국의 공동 항공관측을 통해 파악됐다. 그동안 이들 지역은 한중일 3국의 미묘한 이해관계 때문에 관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일 양국은 공동 관측에 나설 항공관측기도 공개했다. 두 나라가 함께 기후변화에 대비해 항공관측을 실시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에 측정된 결과는 한반도 기후변화 현황은 물론, 해마다 중국과 내몽골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영향을 파악하는 데도 활용될 전망이다. 4월13일 오후, 구름이 잔뜩 낀 날씨의 김포국제공항 활주로. 흰색 기체에 프로펠러 엔진 2개를 단 아담한 항공기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광주과학기술원과 일본 도쿄대가 한일 공동 관측에 나설 항공관측기를 처음 공개하는 자리였다.

    중국 오염물질 ‘서울 공기 위협’ 확인

    이날 공개된 관측기는 미국의 레이시온사(社)가 만든 ‘비치 200T’(일명 슈퍼킹 에어) 10인승 항공기로, 5가지 첨단 관측장비가 실려 있다. 이를 이용하면 공기 중에 섞여 있는 0.2∼1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크기의 미세 검댕과 탄소 농도, 구름 입자 등을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공기 중의 휘발성 유해화합물 등 유해물질 측정 연구를 맡았다. 기체 뒷면 출입문을 통해 들여다본 내부는 기체에 달린 센서에서 보내온 각종 자료를 분석하는 장치로 가득했다. 항공기 조종과 장치 작동을 제외하고 모든 측정은 자동으로 이뤄진다.

    황사, 조사하면 다 나와!
    이 항공기는 3~4월 총 9차례에 걸쳐 김포와 일본 나고야를 오가며 관측했다. 3월27일 일본 가고시마에서 서해, 김포를 왕복하는 1190해리(약 1915km) 구간을 이동하면서 첫 관측 비행을 실시했다. 3월30일에는 김포와 서해 구간을 왕복하며 공기 중 오염물질을 측정했다. 한일 간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관측으로 2~3km에 머물던 한반도 주변 공기오염 상황 파악 범위가 6km 상공으로까지 확대됐다.



    관측에 참여하고 있는 광주과기원 김영준 교수는 “서해 높은 상공의 공기 오염도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이번 관측은 서해 0.3~8km 상공의 대기 샘플을 확보하지 못해 오염물질 추적에 속수무책이라는 학계의 지적에 따라 한일 간 협력으로 이뤄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번 기회로 매년 봄 서해와 동중국해를 통해 한반도, 일본 열도로 넘어오는 황사 및 대기 오염물질에 대한 추적 능력이 크게 확대되리라 보고 있다. 실제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대기 중 질소산화물 농도는 최근 20년간 3배 넘게 늘었다. 농도 증가가 정체를 보이는 미국이나 농도가 줄고 있는 유럽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특히 중국 동부와 서해 상공의 대기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다.

    대기 중에 포함된 검댕도 주요 오염원 가운데 하나. 이것은 햇빛을 차단하고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에어로졸은 공기 중의 물방울과 결합할 경우 강수량에 영향을 미치는 등 기후변화의 요인이 된다. 하지만 한국은 관측 전용 항공기를 확보하지 못한 데다 일본의 단독 관측은 정부가 허용하지 않아 그간 서해 상공에서는 공기 샘플조차 채취하기 힘들었다.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공백 지역이던 셈.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서해와 동중국해 일대의 기후변화 예측 모델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07년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이 일대의 기후변화 예측 모델이 매우 불확실하다고 경고하는 등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 측 연구책임자인 도쿄대 곤도 유타카 교수는 “이번 관측으로 대기 중에 떠도는 고체와 액체 등 미세 입자의 분포를 고도별로 파악하고 중국, 내몽골에서 날아오는 황사 추적이 더 용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 관측은 당초 예측 모델로만 추정하던 이 일대의 공기오염 수준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4월4일과 5일 김포와 가고시마를 오가며 진행된 관측에서는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와 일본 남서부로 높은 농도의 일산화탄소가 유입되는 경로를 찾아내기도 했다.

    한반도 기후변화 예측 모델 창출

    황사, 조사하면 다 나와!
    또한 한반도 상공의 대기는 중국에서 넘어오는 오염된 공기에 거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3월30일 서울 하늘의 일산화탄소 농도는 3.3km 상공에서 가장 높게 관측됐다. 특히 대류권에 형성된 미세 검댕층이 지표면의 온도를 떨어뜨리고 빛을 차단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곤도 교수는 “이번 관측 결과가 지상에서 빛을 이용해 미세먼지 측정 레이더로 관측한 서울 2~6km 상공의 먼지 분포와 일치했다”며 “항공관측 결과와 지상에서 수집한 관측 결과를 통해 정확한 오염물질 유입 경로를 파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두 나라 연구진은 이르면 8월까지 관측 결과를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기상 전문가들도 이번 연구를 통해 한반도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이산화탄소와 오염물질의 고도별 분포 및 이동 경로를 파악해 정확한 기후변화 예측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날 언론에 공개된 ‘비치 200T’는 일본의 해상보안청이 사용하던 것을 민간항공 서비스 회사 다이아몬드 에어서비스(DAS)가 헐값에 인수해 개조한 것이다. 5가지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장거리 관측을 위해 엔진 성능을 높이는 데 들어간 비용은 15억원 정도. DAS 미와 요시오 대표는 “장비를 싣고 일부 성능을 높이는 데 쓴 비용을 제외하면 무상이나 다름없다”며 “퇴역 항공기라도 충분히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이보다 큰 대기관측 전용 항공기를 상당수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AS 역시 소형 제트기를 개조한 ‘G-II’ ‘MU-300’ 등 관측용 항공기 3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김영준 교수는 “늦게나마 한일 간 협력으로 한반도 주변의 기후변화 모델을 확보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며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상황에서 변변한 관측용 항공기를 확보하지 못한 우리 형편이 못내 아쉽다”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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