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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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쓰나미’에 다 쓸려간다?

검찰 수사로 부산·경남 정관계 쑥대밭 … YS 정권 때부터 줄대기 ‘메가톤급 파괴력’

  • 박태우 국제신문 서울정치부 기자 yain@kookje.co.kr

    입력2009-04-03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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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차 쓰나미’가 경남을 거쳐 부산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칼끝’은 부산과 경남지역의 정관계 인사들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이 지역 출신의 전현직 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 전·현 정권의 핵심 실세 등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전방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박 회장이 농업의 휴켐스 매각 비리로 구속돼 처음 ‘박연차 리스트’의 존재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검찰 수사가 ‘미풍’에 그치리라는 전망이 강했다. 지역에서 ‘자물쇠’로 소문난 박 회장의 무거운 ‘입’이 그 근거였다. 하지만 검찰이 박 회장 자녀들에 대한 수사 등으로 박 회장을 압박하자 결국 그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고, 3월18일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의 체포를 ‘신호탄’으로 수사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 후 일주일 만에 현직 국회의원 소환을 예고하는 등 ‘빛의 속도’로 지역 정관계를 흔들고 있다.

    태광실업 본사가 있는 경남 김해는 현재까지 진행된 검찰 수사만으로도 초토화됐고 부산지역 국회의원, 검사, 판사, 경찰까지 거론되는 등 부산도 ‘풍전등화’다. 이제 부산·경남지역 출신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실명 거론 대상자들 말 바꾸기

    현재까지 박연차 로비 수사와 관련해 구속된 지역 인사는 이 전 원장, 송 전 시장,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민주당 이광재 의원 등 5명이다. 이들 외에 검찰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 인사는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 박진 권경석 의원, 권철현 주일대사, 김혁규 김태호 전·현 경남도지사, 민주당 최철국 의원, 김맹곤 전 의원, 부산과 경남지역을 거쳐간 판사 검사 경찰 등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이들도 ‘현재까지’일 뿐 앞으로 어느 선까지 검찰 수사가 확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검찰 수사 진행에 따라 실명이 거론된 인사들은 박 회장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해명에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허 최고위원은 사건 초기 “박 회장에게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이 허 최고위원의 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밝혀지자 그는 “후원자 명단을 보니 모르는 사람이 3명 있는데 박 회장이 차명으로 돈을 보낸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실이더라도 정상적으로 영수증을 발급해 문제 될 건 없다”고 말했다.

    최 의원도 처음에는 박 회장의 돈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이후 “박 회장 측근인 정모 씨에게 전세보증금 공탁을 위해 7000만원을 수표로 빌린 뒤 2007년 이자를 더해 갚았으며 불법자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말을 돌렸다. 권 의원은 “경남 행정부지사로 퇴직할 때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마련한 위로연에서 박 회장을 만난 적은 있지만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또 어떻게 말이 바뀔지 모를 일이다.

    박 회장 로비 수사가 부산·경남지역에서 ‘메가톤급’ 파괴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연차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의 면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현재 리스트에는 부산의 K·K·H·J·Y, 경남의 K·K·K·K·K·K·A, 울산의 K·J 등 전현직 정치인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상당수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이끈 상도동계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다.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천거로 정치에 입문한 뒤 1990년 3당 합당 당시 갈라섰다는 점에서 박 회장과 이들 정치인 간 최초의 연결고리는 결국 김 전 대통령 집권기에 형성됐으리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즉 부산·경남지역이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른 시점부터 박 회장의 로비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부산·경남지역 정치권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태광실업의 베트남 중국 등 해외 진출이 YS 집권기에 이뤄졌다. 당시는 지금처럼 해외투자가 쉽지 않았다. 박 회장이 정치권에 줄을 대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태광실업은 YS 집권기인 1994년 베트남 현지법인, 95년 중국 칭다오 법인을 설립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지역에서는 박 회장 수사로 “부산과 경남지역의 정관계 인사 가운데 성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거나 “사상 최대 로비사건이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산지역 실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열린우리당 시당위원장을 맡았던 윤원호 전 의원이 꼽혔다. 윤 전 의원은 박 회장과 ‘누나’ ‘동생’이라 부를 만큼 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 윤 전 의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가능성은 제기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윤 전 의원은 “박 회장에게 공식 후원금 500만원은 받았지만 그뿐이다”면서 “박 회장은 여성과는 깊은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그와 친분이 깊다고 소문난 부산의 한 여성 사업가가 부도를 맞았을 때도 자금 지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문난 ‘마당발’ 온갖 설 난무

    ‘박연차 쓰나미’에 다 쓸려간다?

    박 회장이 정치인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하는 장소로 이용했다고 알려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국음식점 ‘강서회관’.

    태광실업을 반석에 올려놓은 뒤에도 박 회장이 정관계 로비를 계속한 점에 대해서도 정치권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박 회장과 친분을 유지해온 한 전직 의원은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박연차의 개인사를 알면 이해는 간다”고 말했다. 그는 “박 회장이 중학교까지밖에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좋은 교육을 받고 고위직에 올라간 인사들에 대한 일종의 학력 콤플렉스가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의원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보험이 필요하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부산·경남지역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각종 ‘설(說)’이 넘쳐나고 있지만 대부분 ‘카더라’ 수준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박 회장이 ‘마당발’로 통하지만 아무나 만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로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로비 대상자 대부분이 깜짝 놀랄 만큼 거물급 인사들인 점만 봐도 그렇다.

    박연차 리스트의 ‘두 가지 열쇠’는 박 회장과 돈을 받은 당사자들의 ‘입’이다. ‘비밀’을 푸는 한 가지 열쇠를 손에 넣은 검찰이 나머지 열쇠도 찾아낼 수 있을지 부산·경남지역의 눈과 귀는 온통 검찰 수사 결과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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