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7

2009.03.17

추억의 3층밥, 디지털이 그 맛을 알까?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03-12 1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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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3층밥, 디지털이 그 맛을 알까?

    1 충만한 밥상. 손수 차리다 보면 모락모락 김까지 식욕을 자극한다. <br> 2 음식축제에서 찹쌀떡을 치고 있다. 참여한 만큼 더 맛난 게 음식이다. <br>3 만두 빚기. 음식을 하다 보면 먹을 준비도 덩달아 된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둘과 자취한 적이 있다. 집에서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한 시간을 아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과 달리 쉽지 않았다. 밥은 연탄불로 했는데,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받아먹기만 하던 ‘머스마’들이 밥을 제대로 할 리가 있나. 삼층밥은 기본이었다. 솥 맨 아래는 타고, 위는 설익은 밥. 여기에다 그때는 쌀에 돌이 있어 일어야 했다. 하지만 요령도 없고 귀찮기도 해서 대충 물만 붓고는 밥솥에 안쳐 밥을 했다. 그래도 얼마나 입맛이 좋았던지 돌도 씹어 소화시킬 만큼 아귀처럼 먹었다.

    반찬이라고는 주말마다 집에서 어머니들이 싸주시는 밑반찬이 전부.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수요일쯤 되면 대충 떨어지거나 곰팡이가 피거나 쉬어서 먹을 수 없다. 그럼, 고추장이나 간장에 설익은 밥을 비벼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먹는 게 이러니 공부가 잘될 리 없었다. 자취한 지 한 달쯤 지나 부랴부랴 부모님들의 소환령이 내렸고, 어설픈 자취생활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밥 짓기도 이제는 매뉴얼 시대

    추억의 3층밥, 디지털이 그 맛을 알까?

    디지털 전기압력밥솥. 메뉴얼의 시대인 요즘 삼층밥은 추억이 됐다.

    요즘은 일부러 삼층밥을 지으려 해도 쉽지가 않다. 밥 짓기를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다만 디지털 기기이다 보니 매뉴얼을 읽고 이해하고 몸에 익히는 것이 일이 된다. 현대사회에서는 알아야 할 디지털 기기가 왜 그리도 많은지.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비롯해 이제는 밥 짓기까지 매뉴얼을 알아야 그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우리 식구는 그동안 가스압력밥솥을 이용하다 얼마 전 ‘디지털 밥 짓기’로 넘어왔다. 이렇게 하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가스불에 밥을 하면 늘 시간을 가늠해야 한다. 반면 전기압력솥은 솥에 물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제가 알아서 밥하고 뜸들이고 한다.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 직접 해보면 아무리 디지털 시대지만 밥 짓기 하나에도 선택의 길은 많다. 백미인가, 현미인가. 무슨 잡곡을 얼마의 비율로 넣을 것인가. 곡식의 싹을 틔운 발아 현미밥도 가능하다. 그 밖에도 쑥을 넣은 쑥밥, 굴을 넣은 굴밥, 김치 넣은 김치밥…. 이렇게 밥 짓기 하나에도 다양한 선택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음식을 손수 하면 더 맛있다는 점이다. 남이 지은 삼층밥을 먹기는 어렵지만 본인이 지은 밥이라면 먹을 만하다. 왜 그럴까.

    우리 식구들한테 물었더니 식구마다 대답이 골고루 나왔다. 여기에 내 경험을 덧붙여 정리해봤다. 첫째가 ‘내 것’이니까 하는 자부심. 남이 한 실수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내가 한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한 게 사람이다. 손수 했다면 삼층밥도 맛나게 먹는데 다른 요리라면 더 말해 뭘 하겠는가.

    다음으로 음식을 손수 마련하는 동안 먹을 준비가 된다. 음식 재료를 다듬고 씻고 버무리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이 조금씩 반응을 한다. 이제 곧 음식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고…. 먹을 준비가 된 사람과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밥상에 앉은 사람이 같을 수 있겠는가.

    추억의 3층밥, 디지털이 그 맛을 알까?

    마음대로 김밥. 골고루 마련한 김밥 재료를 식구마다 먹고 싶은 대로 싸게 한다. 시간도 절약되고 선택해 먹는 즐거움이 일품이다.

    밥 짓기에 대한 성찰

    한편으론 자기 입맛이 기준이 된다. 아무리 주부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라도 식구들 입맛을 다 맞추기는 어렵다. 나머지 식구들은 손수 음식을 하는 사람의 입맛을 따를 수밖에 없다. 보통 때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입맛이 까다로워지는 때라면 자기만의 입맛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몸이 아픈 뒤나 먼 여행지에서 이따금 몸 깊숙이 솟아나는 입맛. 음식을 손수 하다 보면 길들여진 감각이 아닌 자기만의 고유한 감각을 되살릴 수 있다.

    자기가 하면 가장 먹기 좋은 조건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음식의 맛은 온도와도 관계가 깊다. 이를테면 짠맛은 식으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조리한 음식은 밥상에 놓는 순간부터 온도가 계속 바뀐다. 따끈한 국이라면 따끈할 때, 냉국이라면 미지근해지기 전에 먹는 게 맛있다. 손수 한 사람은 이런 맛의 흐름을 가장 잘 즐기게 된다.

    원하는 공간에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밥을 손수 지을 수 있다면 외식과 달리 공간과 시간을 자신이 선택하게 된다. 남이 해주는 서비스가 아무리 좋아도 자기 마음 같지는 않다. 이럴 때 누구에게 기대지 말고 손수 하면 된다. 최상의 서비스란 자신이 자신에게 주는 게 아닐까.

    식탐도 한결 줄어든다.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이라면 언제든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과식도 하지 않게 된다. 음식을 손수 하다 보면 이렇게 품위를 지키는 힘도 덩달아 생긴다.

    마지막으로 들고 싶은 건 조금 거창하다. ‘밥벌이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가 돈을 버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밥벌이. 이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밥을 직접 짓다 보면 밥벌이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다. 내가 아는 한 이웃은 4월에 직장에서 희망퇴직이 예정돼 있는데, 회사를 그만둔다고 생각해선지 시간에 여유가 생겨 오랜만에 식구들과 주말을 한가하게 보냈다. 아이와 봄나물을 하러 강둑에 다녀오고, 모자란 건 시장을 봐서 사고. 이렇게 마련한 봄나물을 넣고 아이와 함께 김밥을 말아 먹었단다. 그랬더니 그 집 일곱 살 난 아이가 “아빠는 요리사야!”라며 좋아하더라 했다.

    그날 저녁, 부부가 강둑길을 산책하며 ‘이렇게 그냥 밥만 먹고 살아도 행복하겠다’며 웃었단다. 돈을 적게 벌어도 가족과 온전히 소통한다면 밥벌이는 즐거움이자 자기실현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보물은 바로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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