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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빼앗는 ‘회생절차’의 실체

애매한 파산법 규정 악용 기업 적대적 M&A…격무 시달리는 법원 파산부 정확한 검증 어려워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기업 빼앗는 ‘회생절차’의 실체

기업 빼앗는 ‘회생절차’의 실체

기업회생절차는 가능성 있는 기업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일부 적대적 기업합병 그룹은 경영권을 빼앗고자 기업회생절차를 악용하기도 한다. [Shutterstock]

#1 2016년 9월 한 지방법원 파산부에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서 한 건이 접수됐다. A기업 대표이사 B씨가 낸 것이었다. 문제는 B씨가 회사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는 것. 회사의 다른 이사진은 물론, 지배주주들조차 B씨가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서를 낸 것을 전혀 몰랐다. 그들은 법원으로부터 그 사실을 처음 들었다.   

#2 비상식적인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에 따른 피해는 2010년 10월에도 있었다. 연매출 500억 원이 넘는 C기업이 8억 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서를 제출한 것. 신청서를 낸 곳은 C기업의 채권자 중 한 곳이자 납품업체인 D기업이었다. 주채권 은행도 아닌 납품업체가, 그것도 지속적으로 거래해온 업체가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신청, 알고 보니…

기업회생절차는 사업을 계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이 과잉투자나 금융사고 등의 문제로 뜻하지 않게 부채가 늘어 영업이익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에 이용하는 법적 제도다. 즉 신청하는 기업 처지에서는 사활이 걸린 중대사다. 일단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 해당 기업의 가치는 폭락하고 주식은 상장폐지되기 때문에 회사 이사진이나 주주들은 파산 일보직전의 상황이 아니라면 가급적 이 제도의 이용을 피하려 한다.  

따라서 기업은 상법에서 정한 절차나 내부 정관에 따른 이사회 의결 등 기업 내부 관련자의 의견을 모은 뒤 숙고에 숙고를 거쳐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 여부를 결정한다. 채권자들이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일단 법원이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받아들이면 추심 중지 및 금지 명령이 내려져 채권자가 기업을 상대로 빚을 독촉하거나 받아내는 행위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채권자가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하는 것은 빚 받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회사 대표이사인 B씨와 채권자인 D기업은 왜 이렇게 비상식적인 일을 벌인 것일까. 이들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낸 데는 그만한 속사정이 있다. 두 회사 모두 회사 안팎에서 경영권 다툼을 벌이던 세력이 수세에 몰리자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악용한 것이다.  

A기업 한 임원은 “회사 소유권 및 경영권을 탈취하려고 대표이사 B씨가 이사진 의결도 거치지 않은 채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했다. 이 이상한 신청을 주도한 인물은 대표이사 B씨와 회사 지분 11%를 가진 E씨다. 이 둘이 회사 경영권을 탈취하기 위해 손을 잡고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E씨가 가진 11% 주식으로는 이사회 장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업회생절차를 악용했다. 회생절차가 시작되면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파산법) 제74조 2항에 따라 A기업 대표이사이자 회생절차 개시신청인인 B씨가 기업관리인으로 선임된다. 관리인은 파산법 제56조 1항에 따라 회생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해당 기업의 업무 수행과 재산 관리·처분 권한을 갖게 된다. 이 권한을 통해 주식을 소각하고 특수 관계인에게 재발행하는 등의 수법으로 경영권을 탈취하려 한 것이다.”

C기업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기업회생절차가 개시되자 C기업의 기존 주식은 대부분 효력을 잃었다. 법원은 채권자의 추심 행위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주주들은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에 문제가 있다”며 반발했다. 채권자인 D기업이 자신이 가진 채권의 추심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위험을 감수하고 C기업의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것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하지만 그 이유는 기업회생절차가 끝난 뒤에야 밝혀졌다. 회생절차 과정을 거치며 C기업은 새 주식을 발행했다. 기업회생절차 개시로 C기업의 주식은 상장폐지돼 이전보다 폭락해 있었다. D기업은 이때를 틈타 새 주식을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대거 사들임으로써 C기업을 인수했다. 경영권 다툼에 애먼 주주들만 크게 손해를 본 셈이다.  

이렇듯 경영권 분쟁에 기업회생절차 개시가 악용될 수 있던 이유는 신청 요건이 까다롭지 않아서다. 파산법 제34조 1항에 따르면 현재 기업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더라도 파산할 위험이 상존한다면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이 가능하다. 신청 대상도 광범위하다. 동법 제34조 2항에 따르면 채무자, 기업 이사, 10%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 혹은 전체 자본의 10% 이상 채권을 가진 채권자라면 누구나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할 수 있다.

C기업의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은 지방법원 심의를 거쳐 두 달 만에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A기업의 회생절차 개시는 한 달 후인 10월 각하됐다. 대표이사 B씨의 신청서를 받은 지방법원은 결정문을 통해 “파산법과 관계없이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이사회 결의 없이 진행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회생절차 개시신청 각하의 이유를 밝혔다.

상법 제393조 1항에 따르면 주식회사의 중요한 자산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 일상 업무에 속하지 않는 중요한 업무는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돼 있다. 이 내용은 A기업 정관에도 명시돼 있다. 즉 B씨는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하면서 법적 강제성이 있는 상법 조항과 회사내부 계약인 정관을 모두 어긴 셈. 그로부터 얼마 후 A기업의 11% 지분을 가진 E씨는 다시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했다. 그러나 법원은 두 달 뒤인 12월 말 “A기업의 파산 위험을 증명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신청을 또 각하했다.



기업회생절차 신청만으로 신뢰도 추락

하지만 법원 파산부는 A기업 대표이사 B씨의 사례처럼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자가 상법과 회사 정관을 어겼다 해도 신청서는 접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 사건을 맡은 법원의 공보판사는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받아들일 때는 보통 파산법에 따라 적합성을 평가한다. 신청한 기업의 회생절차 적합 여부를 둘러싸고 파산법 이외 법률적 문제나 제시된 자료의 오류 등과 관련된 문제는 기업회생절차 심사 과정에서 해당 신청을 받은 파산부가 밝힐 내용”이라고 밝혔다.

기업회생절차는 과도한 채무로 파산 직전에 놓인 기업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재기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게는 오히려 독이다.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서가 법원에 접수되는 것만으로도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누군가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서를 낸 사실이 알려지면 먼저 신용도가 크게 떨어진다. 그러면 국책사업 등 대형사업 입찰에서 배제되는 등 손해를 보기 일쑤다. 게다가 동일 업종 기업이 모인 조합에서도 신용도가 하락한다. 조합 내에서 융자 등 금전적 도움을 받을 때 제한이 생길 수 있는 것.

일반적으로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자는 신청서 접수와 함께 포괄적 금지명령을 법원에 신청한다. 포괄적 금지명령이란 회생절차 개시신청 기업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채권 집행을 할 수 없도록 법원이 집행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파산 관련 한 법률 전문가는 “개인회생의 경우 채권자 수가 제한돼 회생절차 개시신청과 함께 시작되는 개별적 채권 추심 중지로도 충분하지만, 채권자 수가 많은 기업은 모든 채권자에게 개별적 채권 추심 중지를 내릴 수 없다. 따라서 법원이 포괄적 금지명령 신청을 들어주는 게 관행”이라고 밝혔다.

포괄적 금지명령이 법원으로부터 내려오면 채권자의 추심이 막힐 뿐이니 기업이 손해 보는 부분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회생절차가 필요 없는 기업에게 이 금지명령은 영업 방해에 가깝다. 법원이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리면 기업의 모든 채권자에게 채권 추심 금지명령서가 발송된다. 금지명령서가 발송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 소식이 금융권에 알려지면 기업의 신용도 측면에선 그 자체로 재앙이다. 포괄적 금지명령서가 채권자에게 발송되면 금융권에서는 기업이 파산위험 상태라 여기고 추가 대출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한번 신용도가 떨어진 기업은 회생절차 개시신청이 각하되더라도 추후 대출을 받을 때 고금리가 적용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크다.  

법조계에선 이처럼 기업회생절차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피해 기업을 줄이려면 법원 파산부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건을 맡은 파산부 판사가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받아들이기 전 해당 기업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확인한다면 부적절한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청서를 검토할 판사도 부족

기업 빼앗는 ‘회생절차’의 실체

파산부 판사들이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뉴스1]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각 지방법원 파산부 판사는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에 대한 사전 조사는 고사하고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극심한 업무과중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 14곳 법원 파산부가 관리하는 법정관리 기업은 1150곳으로 총 84명의 파산부 판사가 인당 13개 기업을 관리해야 한다. 파산부 소속 판사가 가장 많은 지방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손이 모자라기는 마찬가지. 2016년 10월 5일 기준 450개 기업의 법정관리 내용을 판사 18명이 맡고 있다. 판사 인당 평균 25개 기업을 관리하는 것. 일부 지방법원은 파산부가 따로 없어 민사재판부에서 전문성이 필요한 파산사건을 다루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판사가 파산부 업무를 다루는 기간이 짧은 것도 문제다. 순환보직으로 파산부 업무를 오래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파산부 판사가 모자란데 업무 파악 기간까지 짧아 전문성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파산 신청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예외 규정을 둬 파산부 판사는 최대 3년까지 파산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지방법원의 경우 파산부도 예외 없이 해마다 인사 대상에 올라 다른 부서로 이동한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파산부 업무를 완전히 익히기까지 통상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데 서울을 제외한 지방법원은 판사가 업무를 익힐 만하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6.12.28 1069호 (p48~50)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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