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8

2016.12.21

건강

대통령도 즐긴 ‘혼밥’의 건강학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성장기엔 학습·언어능력과 자존감 하락 위험

  • 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입력2016-12-19 15: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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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族)’이 꾸준히 늘고 있다. ‘식구(食口)’는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2015년 현재 대한민국 4가구 가운데 하나가 1인 가구다. 식구가 한 명이니 혼밥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혼밥에 대한 인식 역시 변했다. 일종의 트렌드가 된 것이다.

    최근엔 대통령까지 이 트렌드에 동참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 전 대통령비서실 수석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낯선 사람과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는 체질이란다. 전 청와대 조리장 역시 종합편성채널 채널A와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평소 TV를 보면서 혼자 식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해외 순방 때도 일정이 없으면 호텔에서 혼자 식사한다”고 말했다.

    혼밥에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여럿이 함께 식사하는 동안 신경 써야 하는 많은 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가 식탁에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를지, 누가 먼저 수저를 들고 대화를 주도할지 같은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일본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는 친구끼리 식사할 때도 ‘예의 바른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응답자의 90% 이상이 ‘다른 사람의 식사가 끝나기 전에는 일어나지 못한다’고 했고, 절반은 ‘모두 모일 때까지 식사 시작을 못 한다’고 답했다. ‘무슨 이야기든 하려고 한다’(30%),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행동하려고 한다’(20%), ‘어디에 앉을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18%)는 응답도 많았다. 혼밥은 이런 골칫거리를 제거해준다.



    혼밥은 편리하고 낭만적인 일?

    이와 동시에 혼밥을 하면 과도하게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미국 연구진은 피험자 37명을 그냥 혼밥, TV 시청하며 혼밥, 동성의 낯선 사람과 식사, 동성의 친한 사람과 식사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눠 열량 섭취 정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친숙한 사람과 밥을 먹을 때 가장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방에게 집중하느라 자신이 얼마나 많이 먹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낯선 사람과 밥을 먹거나 TV를 보지 않은 채 혼자 밥을 먹는 경우 열량 섭취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처럼 장점이 있음에도 혼밥을 꺼렸던 건 한때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사회 부적응자’ 혹은 ‘권력 서열에서 밀려난 자’임을 보여주는 징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최근엔 상황이 조금 변했다. 젊은이 사이에서는 혼자 술 마시는 행위를 낭만적인 것으로 여기는 등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보통 사람은 불편해하는 상황에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멋진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마음드림의원 원장)는 “충분히 독립적이고 성숙한 사람은 혼자 밥을 먹든, 같이 밥을 먹든 별로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도 제시했다.

    문제는 혼밥을 하는 이가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셰리 터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혼밥을 할 경우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타인과 소통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마치 타인과 밥을 먹는 것 같은 가상 환경을 만들어 외로움을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시크릿 가든’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혼자 밥을 먹는 일 역시 같은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혼밥이 아이의 성격이나 학습능력 형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1주일에 5회 이상 부모와 함께 식사하는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이른바 ‘바른 아이’일 경향성이 높다고 밝혔다. 전자의 경우 술을 마실 확률이 42% 줄고, 담배를 피울 확률은 59% 줄어들며, 마리화나 같은 마약을 하거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66%나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연구에서 부모와 자주 밥을 먹는 아이는 학습능력이 높다는 것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횟수가 많은 아이일수록 자존감과 자기만족이 높고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도 높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이런 아이가 부모와 관계가 좋고 스트레스를 잘 견디며 어법을 비롯한 학업수행능력도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거울을 앞에 두면 더 맛있는 혼밥 가능

    이쯤 되면 우리나라에 ‘밥상머리 교육’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의 속도에 맞춰 밥을 먹고, 상대가 좋아하는 반찬이 무엇인지 살피며, 숟가락을 드는 타이밍과 마지막 감사 인사까지 생각해야 하는 ‘밥상머리’는 인간관계를 맺는 가장 진솔한 교류의 장인 셈이다.

    일본에서는 노인기의 혼밥이 정서에 미치는 영향도 연구했다. 일본 연구진이 65세 이상 남성 1만7612명과 여성 1만95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 남성 혼밥족의 우울증 상대위험도는 2.36으로 타인과 식사하는 사람의 위험도인 1.03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다. 반면 여성은 혼밥족 1.31, 그렇지 않은 경우 1.21로 상대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았다.

    밥을 혼자 먹을지, 다른 사람과 같이 먹을지 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혼자 밥 먹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 혼밥을 하면서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혼밥은 얼마든지 편안하고 멋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이 혼밥을 즐길 방법은 없을까. 일본 나고야대 연구진은 이 질문에 유쾌한 답을 내놨다. 거울을 앞에 두고 밥을 먹으란 것이다. 사진을 앞에 두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움직임까지 볼 수 있는 거울은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이 연구를 이끈 다나카 류자부로 나고야대 교수는 “거울이 실제 타인과 밥을 먹는 듯한 환경을 구현해 밥맛이 좋아질 것”이라며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일수록 효과가 더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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