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4

..

백신의 진화는 끝이 없다

‘암백신’ 시대 성큼 … 한 번에 여러 질환 잡는 백신개발 확산, 금연백신 실용화 가능성도 제기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5-12-12 09: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백신의 진화는 끝이 없다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 아이(위)와 백신 연구 모습.

    ‘어릴 때 맞은 예방주사 한 방으로 평생 특정 암에 걸릴 위험이 없어진다면?’

    백신이 진화하면서 이런 꿈같은 얘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백신은 인플루엔자(독감), A·B형 간염, 소아마비, 결핵(BCG) 등을 막아주는 것으로만 인식돼왔다.

    하지만 빠르면 2006년 말쯤이면 자궁경부암을 막아주는 ‘암백신’ 시대가 국내에서도 본격 열릴 전망이다. GSK(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의 ‘서바릭스(Cervarix)’와 MSD의 ‘가다실’이 그것. 자궁경부암은 미국 여성의 사망 원인 2위에 올라 있고, 전 세계적으로 매년 50만명 정도가 목숨을 잃고 있는 원인. 중앙암등록본부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매년 평균 4361명의 새로운 자궁경부암 환자가 생겨나고 있다. 자궁경부암의 주요 원인은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로, 특히 HPV 16형 및 18형은 전체 자궁경부암 발생 원인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흔한 종양 유발성 바이러스 유형이다.

    자궁경부암 백신 이르면 내년 말 등장

    현재 3상 임상단계인 GSK의 서바릭스는 이러한 고위험도의 HPV 16형과 18형에 의한 인체 감염을 차단해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도록 고안되었다. 2004년 11월 의학저널 ‘란셋’에 발표된 바에 따르면, 북미와 브라질의 15~25세 여성 1113명이 참가한 2상 임상실험에서 이 두 가지 바이러스에 의한 지속성 감염을 100% 예방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MSD의 가다실 역시 원리는 비슷하다.



    그렇다면 암까지 잡아주는 백신의 진화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최근 여러 학술대회를 통해 금연백신의 실용화 가능성이 제기됐다. 11월2일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린 미국 암연구협회 학술대회에서 금연백신 ‘닉박스’의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한 임상실험 결과가 공개됐다. 이 금연백신은 체내에서 면역계의 반응을 촉발해 항체의 형성을 유도하고, 이 항체가 니코틴에 달라붙도록 작용하는 백신으로, 38%가 30일 이내에 담배를 끊는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만간 3상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2~3년 내에는 발매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번에 여러 질환을 잡는 콤보백신(combination vaccines)의 개발도 확산되고 있다. 백신접종 횟수를 줄이고, 주사로 인한 통증 및 각종 주사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아울러 아이가 어떤 종류의 백신을 접종했는지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DTPa(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백신을 기본으로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소아마비, B형 간염 등 6가지 질환을 한꺼번에 예방할 수 있는 콤보백신이 나와 있다.

    백신의 기본은 ‘예방’. 그러나 이제 ‘치료’까지 가능한 백신이 소개될 전망이다. 최근 면역학과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인간 면역체계에 대한 비밀이 속속 파헤쳐지면서 개발되기 시작한 새로운 개념의 백신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 대신에 몸속에서 면역체계를 교란하는 단백질을 ‘항원’으로 인식시키는 원리다.

    암을 예로 들면 정상 세포와 달리 암세포에만 나타나는 종양 단백질을 확인한 뒤 이 단백질을 항원으로 인식하도록 처리해 몸속에 주입, 암 예방과 치료 효과를 동시에 얻게 된다.

    다국적 제약사들 예전과 달리 백신개발에 열중

    이런 형태의 가장 유력한 백신은 에이즈(AIDS) 백신. 현재 동물실험을 마치고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 중이다. 이밖에 폐암, 유방암, 흑색종, 알레르기 같은 자가면역 질환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백신 개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사들의 백신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백신은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고도의 제조기술이 필요하며, 개발에 실패했을 경우 금전적 손실이 크다는 위험부담 등으로 그동안 홀대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GSK, 사노피 아벤티스, 머크, 와이어스 등 이른바 백신 4강 구도에 노바티스까지 합세해 너도나도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주요 제약업체들이 예방용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리는 까닭은 예방의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암 등 치명적 질환을 예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 특히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 이슈가 불거지면서 예방백신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돼 백신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백신 사업에 가장 강한 의욕을 보이는 제약사는 단연 GSK이다. GSK는 현재 가장 많은 종류의 백신을 보유하고 있으며, 백신 사업의 성장 잠재성을 일찌감치 파악해 백신 비즈니스를 선도해가고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 등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백신 외에 자궁경부암 백신 ‘서바릭스’, 로타바이러스 백신 ‘로타릭스(Rotarix)’, 폐렴구균 백신 ‘스트렙토릭스(Streptorix)’, 개량 독감 백신과 수막염 백신 등 혁신적인 백신들을 줄줄이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다양한 백신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이제 의학은 ‘치료’의 개념에서 한 걸음 진보된 ‘예방’의 개념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