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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우리 사회 예술 자유지수

우리 사회 예술 자유지수

우리 사회 예술 자유지수

백 기 영
미술인회의 사무처장

한 사회가 예술가를 어떤 존재로 인정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으로도 그 사회가 얼마나 자유롭고 관용을 가진 사회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군사정권 시절부터 예술가들을 돈으로 다스리고 통제해왔다. 관변단체를 만들고 그 단체에 소속된 예술가들만을 집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다른 예술 활동을 위축되게 만들거나 아예 생존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례 중의 하나가 서울 목동의 ‘예술인회관’이다.

1996년부터 정부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예총)에 215억원을 지원해 지하 5층, 지상 20층 규모의 건물을 짓다가 더 이상 지원 명분이 없어지자 공사가 중단된 채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다른 예술가들을 제쳐두고 정부가 예총에만 이러한 특혜를 준 것은 부당한 일이다. 또한 예술인들의 복지공간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 공간이 예술가들이 편안히 드나들며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으로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단지 예총이 부동산 임대사업을 통해 장기적인 운영자금을 확보하려던 시도가 불발로 그쳤다고 보는 것이 옳다.

창작열 불태울 수 있는 공간 내어 줄 수 없나

문화 지원 사업이 아닌 경제적, 혹은 특정 단체의 이익에만 결부된 이런 사건에 대해 예술가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퍼포먼스 예술가 김윤환 씨를 중심으로 한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이 공간을 예술가들에게 돌려달라며 400명의 예술가들에게 분양했다. 그리고 2004년 5월 목동의 예술인회관을 무단으로 점거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도심의 버려진 공간을 소생시킨다’는 취지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우리 사회의 문화 권력과 정부가 손잡고 만들어낸 특혜성 사업에 대한 정치적 도발이었다. 예총은 ‘예술인회관 무단 점거’에 동참했던 20명의 예술가들을 고발했다.



그러나 올해 6월3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검찰의 약식 기소에 비해 훨씬 낮은 벌금형을 선고하고 7명의 작가들에 대해서는 선고를 유예했다. 또한 재판부는 ‘한국예총이 예술인회관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다년간 건축을 중단한 채 예술인을 위한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그 동기에 참작할 사정이 있고, 건조물 침입으로 인한 관리권의 침해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혀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정당성을 상당 부분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어쨌든 현행법상 유죄가 선고됐고, 이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해 예술인들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정당한 예술가들의 요구를 오히려 범법자 취급하며 덮어버리려고 하는 예총의 태도가 놀랍고 황당할 뿐이다.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예술가들의 ‘스콰ㅅ(squat)운동’이 사회에 활력을 더하고 새로운 문화를 태동시키는 원동력 구실을 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공영 아파트나 버려진 공간에 예술가들이 무단으로 들어가 창작촌을 꾸미게 되면, 이들의 행위는 비록 불법적인 것이지만, 이들이 생산하는 문화적 행위들을 공공적인 가치로 인정해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주고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들의 자유는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같은 정치적인 규제와 음란물 단속과 같은 윤리적인 통념에 의해서 통제돼왔다. 어쩌면 정권의 논리에 맞는 예술들을 지원 육성함으로써 그외의 활동은 위축시키는 식의 통제가 훨씬 더 효율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은 여기에 스스로를 길들이지 않으면 생존조차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고려한다면,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활동은 단순히 예술인회관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더 확장되어야 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이들 예술가는 포장마차를 끌고 홍대 앞 거리에 나타났다. 이들은 발표의 기회를 얻기 힘든 음악인들, 시인들, 화가들, 실험 영화인들로서 거리에서 공연하고 시를 발표하고 다양한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술포장마차’라고 이름 붙인 이 포장마차는 예술가들의 끼를 맘껏 발산하는 예술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모든 활동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직도 법정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 있고, 주변 상인들의 반발로 예술포장마차에서는 아무것도 판매할 수 없도록 마포구청의 제재를 받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예술가들을 부자유하게 구속하는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는 일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주간동아 2005.07.05 492호 (p92~92)

  • 백기영 미술인회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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