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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아트로드 개척자 ‘본토비’

사물놀이 장단 세계인 가슴 울렸다

15개월간 30개국서 200여회 공연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사물놀이 장단 세계인 가슴 울렸다

사물놀이 장단 세계인 가슴 울렸다
예술그룹 ‘본토비(Born to be)’가 6월13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3년 10월 ‘주간동아’에 예술의 실크로드인 ‘아트로드(art road)’ 구축을 위해 세계로 떠나겠다고 호언한 지 20개월(주간동아 406호 참조), 2004년 3월 미국행 비행기에 오름으로써 대장정을 시작한 지 13개월 만이다.

본토비의 멤버 천성훈(29·서울예대 영화과 졸업), 정진구(27·서울예대 영화과 졸업), 박태성(27·중앙대 연극영화과), 신지현(26·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추경엽(25·서울예대 영화과 졸업), 박지혜(24·서울예대 무용과)는 1년3개월 동안 북미, 남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30개국 150여개 도시를 돌면서 200여회의 공연을 했다. 대장정에 오르기 전 1년 동안 피땀 흘려 연습한 사물놀이와 퍼포먼스 등은 미국 조지타운대학 학생들에서부터 티베트의 농민들까지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항상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우린 광대다, 즐거움을 줘야 한다’고 다짐하며 매번 최대의 에너지를 뿜어냈던 게 관객들에게 신명을 준 것 같습니다. 공연 끝부분에선 늘 관객들도 함께 덩실덩실 춤추고 그랬죠.”(천성훈)

6명이 쏟아내는 추억은 며칠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것 같다. 칠레에서는 일주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공연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라파스에서 산티아고까지 밤새 버스로 달려와 곧장 칠레대학의 작은 강의실에서 공연을 했다. 칠레대학은 세계 100위 안에 드는 우수한 대학으로, 공연의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쿠데타로 내홍을 겪고 있는 볼리비아에서는 하루도 시위대를 만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최루탄과 공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자욱한 볼리비아에서 본토비 멤버들은 ‘빵이 없어 굶어죽는 판인 나라에서 예술 공연을 하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의 시골마을인 오아카에서는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 앞에서 공연을 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감동의 기회를 주어 고맙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멕시코시티의 소칼로 광장에서는 7명의 형제가 햄버거 하나를 나눠먹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유니온 스퀘어 거리에서의 공연에는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신명나는 ‘덩더꿍’ 소리에 그들은 ‘원더풀’을 외쳐댔다. 백화점 경비원들이 공연을 막으러 뛰쳐나와 20분 만에 막을 내리긴 했지만.

꽹과리를 맡은 태성 군은 “티베트 라사에 있는 조캉사원 앞 광장에서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티베트에서는 집회 자체가 금지되고 있다. 때문에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광장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티베트를 찾은 다른 예술가들은 “중국 정부의 허가를 얻어내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본토비는 그냥 무작정 악기를 꺼내 들었다. 공안이 달려오자 ‘딱 20분만 하겠다’고 통사정했다. 꽹과리와 북을 울려대자 금세 500여명의 구경꾼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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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로마 콜로세움 앞 광장에서의 공연 모습(왼쪽)과 1월 튀니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모습.

“너무들 좋아하시더라고요. 공안들도 구경하는 게 신나는지 약속한 20분이 지나도록 제재하지 않았어요. 용감무쌍함 덕분에 조캉사원 앞에서 공연을 한 최초의 한국인이 됐어요. 우리가 묵은 호텔의 주인은 직접 우리 멤버들의 목에 티베트 전통 술을 걸어줬어요. 가장 귀한 손님에게 반가움을 표시하는 티베트 전통이래요.”(박태성)

문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여행의 또 다른 선물이었다. 과격하고 폭력적일 것이란 이슬람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은 튀니지에서 말끔히 씻어냈다. 한 달에 고작 4만~5만원을 버는 택시기사는 본토비 멤버들에게 양고기를 사주며 자상하게 챙겨줬다. 시골마을의 한 아주머니는 자기 집으로 본토비 멤버들을 데리고 가 직접 저녁을 차려주기도 했다.

“가는 나라마다 정(情)이란 단어가 있는지 물어봤어요.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정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튀니지에서는 찾았어요. ‘하넨’이래요. 책에서 읽고 전문가에게서 들은 이슬람 문명보다 더 진하게 이슬람을 느낀 것 같아요.”(신지현)

단일 팀이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이거나 멤버끼리 사이가 틀어져서, 혹은 신체적으로 지쳐서 중도포기하거나 뿔뿔이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본토비도 언제나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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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만난 영국의 유명 무용가 아크람 칸에게 아트로드 증정표를 선물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첫 번째 목적지로 삼고 떠났을 때 본토비의 재산은 2000달러(약 200만원)가 전부였다. 케이블TV에 현지공연 모습을 방영하는 것으로 경비를 충당하는 게 애초의 계획이었지만, 이 제작사는 본토비가 한국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부도가 나고 말았다. 앞이 깜깜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현지 선교사들과 교포들이 선뜻 도움을 줬다. “한국 젊은이들이 기특한 일을 한다”며 후원금을 모아준 교포들은 멤버들끼리 싸우거나 지쳤을 때마다 중도포기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팀의 막내 지혜 양은 “돈이 없었다면 현지에서 비행기삯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지치고 힘들 때마다 조금만 더 가보자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덧 계획을 완수하게 됐다”며 웃었다.

“현지 예술인과 많은 교류 … 본토비 정신 계속 지킬 것”

본토비는 현지 예술인들과도 많은 교류를 했다. 모두 52명의 예술인을 만나 이중 ‘상업적이지 않으며 삶 속에서 예술을 추구하는’ 20명에게 ‘아트로드 증정표’를 선물했다. 영국의 ‘스타 안무가’ 아크람 칸, 볼리비아의 국보급 화가 마마니 마마니, 브라질의 전통음악가 딩뇨 나시멘토 등이 본토비의 친구들이 됐다. 본토비는 언젠가는 이 친구들을 한국에 초청해 예술 축제를 벌일 수도 있다는 꿈을 꾼다. 폴란드 카도비체 연극제에서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연극축제의 총예술감독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는 유명하진 않지만 실력 있는 예술가를 한국에 초청하기 위해 애타게 찾고 있었다. 본토비의 친구들은 이런 지역축제에서 멋진 주인공으로 초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물놀이 장단 세계인 가슴 울렸다

2004년 7월 파리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서의 공연 모습(위)과 2005년 5월 네팔 카트만두 근교의 농가에서 마을 사람들과 찍은 기념사진.

다들 ‘안 된다’고 했다. 졸업생들이 학교를 어슬렁거리면서 ‘사물놀이를 하며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도, 후배들도, 교수들도 ‘그저 꿈에 불과한 계획’이라며 혀를 찼다. 졸업생들이 사물놀이를 배우겠다며 장구 수업을 꾸준하게 ‘도강’하고, 아예 학교연습실을 대여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하고, 아크로바틱으로 몸 만들기에도 애를 쓰자 그제야 ‘쟤들 진짜 뭔가 하려는가 보다’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이쯤 되자 교수님들도 본토비를 믿어주며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본토비는 7월1일 오후 6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의 귀국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한다. 그리고 영화, 연극, 시나리오 작업, 학교 등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이들은 아트로드를 통해 각자 깨달음을 얻었다. 연기에 대한 확신과 세계에 대한 비전, 그리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젊은이다운 각오까지.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회원들끼리 다짐했어요. 각자 인생을 열심히 살다가 나이 들어 함께 모일 때는 골프장에 가는 대신 사물놀이 공연을 하자고요. 예술이란 특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거란 걸, 이번 아트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깨달았거든요. 우리처럼 세계 예술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도 전수해주고 싶고요. 그렇게 ‘본토비 정신’을 이어가겠습니다.”(천성훈)



주간동아 2005.07.05 492호 (p56~57)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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