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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베껴봅시다” … 디자인 도둑 비상

봄 옷 출시 의류매장 이유 있는 환불 종종 … 자동차·휴대전화 등 전 업종 피해 눈덩이

“또 베껴봅시다” … 디자인 도둑 비상

“언니가 환불해 오래요.”

“이렇게 옷을 뜯었다 다시 박아놓고 환불해달라고 하시면 곤란해요.”

봄 옷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백화점 의류 매장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풍경이다. 신상품을 선보이면서 이른바 ‘진상’ 고객들이 활동하는 시즌이 된 것이다. 의류업계에서 ‘진상’ 고객이란 옷을 구입했다가 디자인과 패턴만 베끼고 환불을 하러 오는 의류 제작업체 직원들을 의미한다.

최근 동대문시장에서 디자인 카피 대상 1호가 되고 있는 브랜드 M의 매니저 김모씨는 “유형이 있기 때문에 ‘진상’ 손님은 쉽게 구분이 된다”고 말한다.

“열 번 사가면 7, 8회 환불을 해가고, 사러 오는 사람과 바꾸러 오는 사람이 달라요. 백화점이 서비스를 가장 중시한다는 걸 약점 삼아 매번 환불을 해가죠. 저희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바꿔주지만, 완전히 뜯었다가 박아오는 경우엔 저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죠.”



결국 일주일 전 구입한 스커트를 다른 색 실로 박아온 뒤 환불을 요구한 손님은 ‘본사에 문의해볼 테니 다시 연락해달라’는 매니저의 대답을 듣고 돌아간 뒤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또 다른 브랜드 A의 매니저 이모씨는 “겉모양만 베끼는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라벨을 거꾸로 박아온 경우도 있고, 아예 자기네 공장에서 똑같이 만든 옷을 가져와 환불해달라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또 베껴봅시다” … 디자인 도둑 비상

중국에서 디자인을 도용당한 마티즈Ⅱ(왼쪽)와 체리자동차 QQ. 면과 선의 비례 처리와 부품 디자인까지 카피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마티즈와 너무 똑같은 QQ자동차

실제로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에 가면 ‘매긴나잇브리지’ ‘타임’ ‘에고이스트’ 등 인기 브랜드들의 옷을 그대로 본떠 만들어놓고 브랜드 이름까지 버젓이 붙여놓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매니저 이씨는 “신상품을 선보이는 패션쇼 직후 서울, 부산 등 전국에서 카피가 나오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옷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많은 임금을 주고 고급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있는 의류업체로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뎅은 “3시간이면 복사품이 나오는 디자인 업계에 환멸을 느껴 패션 회사를 매각하려 한다”는 말까지 했을까.

“또 베껴봅시다” … 디자인 도둑 비상

올봄 도매 시장에 카피 제품이 쏟아져 골치를 썩고 있는 국내 패션 브랜드

오늘날 디자인 유출 피해는 패션업계뿐 아니라 전 산업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 소비자들이 ‘패션’을 중시하면서 디자인 모방과 유출 피해는 점점 더 심각해진다. 구매를 결정하는 데 품질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 디자인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니, 기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디자인이다.

GM대우가 결국 중국의 체리자동차의 QQ가 마티즈 디자인을 도용했다며 중국 상하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자동차의 외관이 닮았다는 이유뿐 아니라 ‘부품을 바꿔도 굴러갈 정도’로 기능적 디자인까지 카피가 됐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과는 달리 디자인에서 ‘모방’과 ‘트렌드’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중국 법원에 한국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라는 소송을 내는 결정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업체의 설명이다. GM대우 홍보팀 김성수 부장은 “QQ가 마티즈를 모방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2003년이지만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모방’이라는 결과를 받기까지 면밀한 조사를 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를 중국 정부에 알려 ‘조정’을 의뢰했고, 중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조정하려 했지만 업체에서 반응이 없으니 (소송을 하라는)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체리자동차는 중국 정부와 GM대우의 ‘경고’에도 대담하게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미국에 수출 의지를 밝혀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 GM대우차의 닉 라일리 사장은 2월21일 새로운 마티즈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기존 모델이 해외에서 특허 등록을 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 만큼 새 디자인은 바로 특허 등록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일본 특허청이 자동차의 라이트 부분 등 일부분의 디자인 등록을 인정하고 있는 데 비해, 중국 특허청에 해당하는 ‘지식산권국’은 자동차 전체의 디자인 등록만을 인정한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 자동차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하고 그릴이나 헤드라이트 위치만 약간 바꿔도 디자인 등록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유출 급증

자동차 전문가들에게는 옆 단면의 캐릭터 라인을 기준으로 하여 면과 선의 비례 처리가 ‘카피’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단순한 그래픽(헤드라이트나 그릴 모양)이 달라도 옆면의 실루엣이 똑같으면 ‘카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실루엣에서 디테일까지 완전히 똑같은 모양이 아니면 모방이 아니다. 베이징에서 광고 디자인을 공부하는 유학생 전환주씨는 “중국인들은 절대 QQ가 마티즈를 닮았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특허청 해외협력국 박용주 사무관은 “해외진출 기업이 늘어나면서 특히 중국에서 우리나라 디자인이 침해당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이 디자인 중복 심사로 인한 시간적 낭비와 노력을 줄이기 위해 통일된 특허제를 논의 중이지만, 디자인 등록이 각국의 특성을 인정하는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어서 솔직히 갈 길이 한참 멀다”고 털어놓는다.

“또 베껴봅시다” … 디자인 도둑 비상

‘디자인 퍼스트’를 내세우는 이노디자인의 혁신적 디자인으로 톱 브랜드로 성장한 아이리버 mp3. 중국 모방 브랜드 ‘손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패션업계의 ‘진상’ 손님들이나 마티즈 디자인 도용 사건은 후발업체 등 경쟁적 관계에서 디자인을 훔쳐가는 경우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카메라가 발전하고 카메라 겸용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재미로’ 디자인을 유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얼마 전 한 자동차 회사에서 일어난 디자인 유출 사건은 이미 업계에서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자동차 부품 협력업체 신입사원이 출시 1년을 남겨둔 신차를 카메라폰으로 찍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바람에 업계 전체가 발칵 뒤집어진 사건이다. 협력업체 직원은 새로운 모델을 남보다 빨리 봤다는 순진한(?) 소영웅심에서 사진을 올렸지만 4년 동안 극비리에 신차를 만들어온 회사로서는 현실적으로도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보안 책임을 물어 임원급까지 인사 조치되고 자동차 디자인은 일부 수정된 채 출시됐지만 그 여파가 후속 모델들에까지 줄줄이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동차는 차체 디자인이 약간만 바뀌어도 수백 개 부품업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산업디자인 업계에서도 보안이 가장 철저한 분야다. 같은 직원들끼리도 신차 디자인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회사 홍보 시에도 늘 ‘음지’에 남아 있는 부서이기도 하다. 신차 사진이 외부로 나갈 때는 유출에 대비해 사진마다 외부인은 알지 못하는 고유한 표시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고 마케팅이 중요해질수록 디자인이 유출될 위험도 비례해서 커진다.

적극 대응과 보호 대책 세워야

삼성도 새로운 휴대전화 디자인 19종이 모바일 전문 사이트에 공개돼 이틀 만에 이를 삭제하고 유출 경로를 추적하는 등 소동을 벌였다. 조사 결과 해외 사업자들에게 신제품을 미리 보여주는 과정에서 디자인이 새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 측은 “이번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상 하나 받기 위해 국제전 등에 첨단 모델을 내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디자인 모방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기업 전자회사 디자인센터의 한 디자이너는 “신제품 디자인이 유출돼 경로를 조사해보니, 고객 호응도 조사에 참여했던 학생이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 것으로 밝혀져 모두가 허탈해했다”고 말했다.

디자인을 훔쳐 똑같은 물건을 판매할 목적이든, 남보다 먼저 얻은 새로운 정보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디자인을 공개하든 디자인을 도둑맞은 업체가 입게 되는 피해는 똑같이 치명적이다.

세계적 디자인 업체 이노디자인에 의뢰한 mp3플레이어로 일약 업계 최고 브랜드로 성장한 ‘아이리버’도 중국 가전업체 ‘손상’의 mp3 모방 제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동환 홍보팀장은 “시장 잠식보다는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이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이리버’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한다. 삼성 측도 “유사 제품이 브랜드 가치에 입히는 피해는 규모를 수치화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 베껴봅시다” … 디자인 도둑 비상

디자인 왕국 일본의 전자제품들 (‘일본 디자인의 현재’,성곡미술관 전시, 4월10일까지).

그럼에도 업체들이 디자인 도용에 대한 피해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쉽지 않다. 마티즈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어디까지가 트렌드의 반영이고, 무엇이 모방인지 객관적으로 가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젊은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매긴 나잇브리지’의 정은경 대리는 “새로 런칭한 브랜드가 디테일까지 카피당하는 등 피해가 커서 동대문시장에서 ‘소탕작전’에 나서기도 했지만, 로고까지 카피한 경우가 아니면 모방업체에 ‘경고’ 이상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또한 트렌드에 유달리 민감한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이 디자인의 모방이나 도용을 부추기는 구실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패션 디자이너 박모씨는 “디자인 카피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 상품은 전혀 팔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럽이나 미국 소비자들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훨씬 트렌드나 스타 마케팅 등에 휩쓸리는 경향이 커서 아시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이노디자인의 경우, 상품이 기계라 해도 패션아이템화하면서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만큼 모방 디자인을 단속하는 데 들어가는 돈과 시간을 남보다 앞선 디자인을 출시하는 데 쏟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모든 상품의 유행 주기가 그만큼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디자인의 특성과 소비자들의 취향 자체가 ‘트렌드’로 요약된 이유를 디자인의 자신감 결여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자동차 외관을 바꾸는 ‘드레스업’과 대기업의 아웃소싱 자동차 디자인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진 ‘토마토 A&P’의 김진필 대표이사는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들이 지금까지 외국 업체들 사이에서 틈새시장만을 전략적으로 노리다 보니, 시장 변화에 맞춰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BMW나 벤츠처럼 한 가지 전통의 ‘얼굴’로 밀고 나가기에는 실패에 대한 부담도 크고 유연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트렌드를 따라가게 되고 새 모델이 나오면 ‘모방했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어쨌든 디자이너에게 ‘카피했다’는 말은 가장 가슴 아픈 말”이라고 말한다.

“지금 자동차 디자인 업계에서 유행은 벤츠와 BMW에서 만들고 있지요. 아무리 혁신적인 것도 그들이 하면 트렌드가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한 모델이 나오고 그 이미지를 밀고 나가다 보면 변하지 않는 ‘얼굴’이 하나쯤은 생기지 않겠어요?”

실제로 휴대전화와 mp3플레이어, 그리고 일부 자동차 디자인에서 우리 디자인 산업이 세계의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예를 볼 수 있다. 산업디자인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늘 모방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우리나라의 디자인이 복제품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뛰는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진흥원과 특허청 등 정부 기관들이 여전히 일회성 지원 사업에 매달리거나 피해 사례 집계 등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며 ‘디자인이 실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적극적인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주간동아 2005.03.15 476호 (p36~38)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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