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3

2005.02.22

생체리듬 거스르다 화 부를라

규칙성 파괴 땐 질병에 직·간접 노출 … 생활습관 바꾸기 무리한 시도 금물

  • 장미경/ 사이언스타임즈 객원 기자 rosewise@empal.com

    입력2005-02-17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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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체리듬 거스르다 화 부를라

    인간의 몸에는 100여 가지의 생체리듬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한두 가지쯤 한 해의 목표를 세워놓게 마련이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식지 않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목표가 있다면 바로 ‘아침형 인간’일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다른 사람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들의 성공 스토리가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 일어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지만 평소 자신의 생활습관을 무시한 채 아침형으로 무리하게 바꾸려고 했다가는 극도의 피로나 소화불량, 설사 등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부작용은 신체의 주기적인 리듬인 ‘생체리듬(biorhythm)’이 깨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체리듬’이란 말 그대로 우리 몸이 갖고 있는 규칙적인 리듬을 뜻한다. 생체리듬의 규칙성이 파괴될 경우 우리 몸은 우울증이나 불면증, 심지어 암과 같은 무서운 질병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다는 전문가들의 연구보고서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실제 2001년 덴마크 암학회의 요니 한센 박사는 유방암 환자 7000여명과 같은 수의 정상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야간근무 기간이 긴 여성일수록 유방암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간호사, 스튜어디스 등 야간근무를 6년 넘게 계속한 여성의 경우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70%나 높고, 야간근무 기간이 6개월을 넘어서면 유방암 발병률이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한센 박사는 “야간근무 여성에게서 유방암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야간근무가 우리 몸의 수면주기를 방해해 생체리듬의 규칙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눈 뒤쪽 시신경교차상핵이 생체시계 조절



    또한 2003년 6월에는 야간근무가 결장암이나 직장암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야간근무가 잦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미국 하버드 의대 에바 션해머 박사팀이 간호사 7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 달에 세 번 이상씩 15년 동안 야간근무를 한 간호사는 그렇지 않은 간호사에 비해 결장암과 직장암 발병 위험이 평균 3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생체리듬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얼마나 진행돼 있을까. 학자에 따라서 인체에 존재하는 생체리듬의 수를 100개 정도까지 추산하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메커니즘이 어느 정도 규명된 생체리듬은 ‘일주기리듬(circadian)’뿐이다. 인간은 햇빛이 많은 낮에 활동적으로 움직이고 밤에 수면을 취하는데, 이를 수면-각성 주기 또는 일주기리듬이라고 한다. 일주기리듬이라는 용어는 ‘하루’를 의미하는 라틴어(dies)와 ‘약’을 의미하는 단어(circa)가 합성돼 만들어졌다. 즉 하루 동안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체현상을 뜻한다.

    생체리듬 거스르다 화 부를라
    일주기리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름 아닌 햇빛이다. 따라서 야간근무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빛을 잘 활용해서 자신의 일주기리듬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야간근무를 시작할 때 밝은 빛을 쪼이고, 끝날 무렵 빛을 피하는 방법으로 일주기리듬을 늦추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생체리듬의 주기성이 전적으로 햇빛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1994년 독일 마르크스플랑크연구소의 아쇼프 연구원은 밝은 빛에 노출되지 않은 격리된 공간을 마련하고, 이곳에서 며칠 동안 14명의 지원자들을 지내게 하면서 수면-각성 관찰 실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지원자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하루를 주기로 자고 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우리 몸속 어딘가에 인체의 주기적인 기능을 조절하는 생체시계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생체시계는 인체의 어느 부위에 존재할까. 지금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체시계 기능은 눈 뒤쪽 뇌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시신경교차상핵이라는 곳에서 담당한다. 시신경교차상핵이 일주기 정보를 얻어내고, 뇌의 송과샘(송과선, 좌우 대뇌 반구 사이 셋째 뇌실의 뒷부분에 있는 솔방울 모양의 내분비기관)에서 분비되는 수면조절호르몬인 멜라토닌(melatonin)을 이용해 생체시계를 조절한다. 낮과 밤을 구별하는 호르몬으로 알려진 멜라토닌이 지속적으로 분비되지 않을 경우엔 잠에서 일찍 깨어나고, 반대로 과다 분비되면 아침에도 계속 졸리게 된다.

    최적의 순간 약 투여 최대효과 내는 ‘시간약물학’

    인간의 생체리듬 관련 기관은 수면뿐만 아니라 체온 변화·순환기의 흐름 등에도 관여하며, 호르몬 분비와 면역 활성도를 주기적으로 조절한다. 따라서 장거리 여행이나 야간근무로 인해 나타나는 신체의 적신호는 생체리듬의 파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아기들의 경우 수면시간이 길고 체온 변화도 심한데, 이는 생체시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며, 노인들 역시 생체시계의 정확도가 떨어져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긴다.

    하지만 호르몬의 양에 따라 생체 기능이 바뀐다는 점 외에 생체시계에 대한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생체시계의 시간 정보를 신경에 전달함으로써 생체리듬을 생기게 하는 유전자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신희섭 박사는 “생체시계 관련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데 성공한다면 시차로 인해 겪는 고통에서부터 우울증, 불면증 등 생체리듬과 관련된 인간의 행동과 질병을 쉽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체리듬의 메커니즘을 잘 응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시간약물학 분야다. 시간약물학의 목표는 시간에 따라 병의 상태가 달라지는 점을 활용해 최적의 순간에 약을 투여함으로써 최대의 효과를 올리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심장발작이나 뇌중풍(뇌졸중)은 주로 아침에 많이 발생하는데, 이유는 몸이 기관을 수축시키는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아침에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장발작의 위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침을 대비해 잠들기 전에 약을 복용한다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콜레스테롤은 주로 저녁 시간에 합성되므로 관련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은 초저녁에 투약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위산 분비 역시 밤에 활발하기 때문에 위산분비 억제 약도 저녁식사 후 복용하는 것이 좋고, 천식 또한 밤에 빈번하게 발생하므로 초저녁에 약을 복용하면 밤 시간에 심해지는 천식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고 전문의들은 조언한다.

    아침형 인간이 되고자 신년 초부터 일찍 일어나는 훈련을 하고 있다면 한 박자 천천히 실행에 옮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내 몸에 맞춰진 생체리듬의 규칙성이 놀라 깨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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