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3

2005.02.22

분식회계 집단소송 정부 말 바꾸기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5-02-16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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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식회계 집단소송 정부 말 바꾸기

    1월27일 증권선물거래소 창립기념식에 참석한 이해찬 국무총리,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앞줄 오른쪽부터).

    “과거 분식회계와 법 시행일 후 분식회계를 구별할 수 있는 회계적 방법은 없다. 분식회계에 대해서만 (증권집단소송제) 시행을 늦추자는 의견도 있는데 이는 오히려 분식을 인정하는 꼴이 돼 대외 신인도에 안 좋다고 생각한다.”

    2003년 5월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증권집단소송법 제정 공청회’에 참석한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의 말이다.

    그로부터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재경부의 태도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최상묵 금융정책국 증권제도과장은 “과거 분식과 현재 분식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또 기업이 과거 분식을 털어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대외적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기업의 과거 분식에 대한 증권집단소송 대상 배제 논란과 관련한 재경부의 ‘공식 의견’인 셈이다.

    이 같은 태도 변화를 들어 재경부, 법무부,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 등은 2월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과거 분식에 대한 증권집단소송 2년 유예’ 의견을 제출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등을 제외한 대다수 의원들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 2월21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법 개정안의 통과가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등은 “노무현 정권의 유일한 경제 개혁 법안인 증권집단소송법조차 사실상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나눌 수 없다던 과거-현재 분식이 어떻게 갑자기 구분 가능해질 수 있느냐”는 것. 이에 대해 최상묵 과장은 “변양호 당시 국장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회계 원칙에 대해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며 “당시에는 소송 남용 방지가 주요 쟁점이었던 만큼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경부에 “회계상 구분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은 금감위다. 금감위 윤용로 감독정책 2국장은 “금감위는 법 제정 때부터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으나 법 시행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사실 시행 전 저질러진 행위에까지 새 법을 소급 적용하는 것은 문제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과거 분식과 현재 분식 구분은 기술적으로 99% 가능하다는 것이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황인태 회계전문심의위원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2003년 6월16일 이정재 당시 금감위원장이 “법률적 유예기간을 둔다 해서 그 기간에 분식회계를 치유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힌 것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과거-현재 분식회계를 기술적으로 구분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대다수 회계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현재 분식을 과거 분식으로 둔갑시켜 법망을 피해갈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석유통에 담긴 석유 중 밑의 1m는 과거에 산 거고 위의 1m는 지금 산 것이라 주장한다면, 심지어 석유통을 흔들어 둘을 섞어버린다면 그를 구분해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한 회계사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열린우리당 측이, 2년 유예기간 동안 기업들이 과거 분식을 ‘역분식’을 통해 털어낼 수 있도록 금감원 감리 면제를 추진키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금감원조차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김 소장은 “기업의 분식 여부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금감원의 감리와 검찰 수사, 국세청 세무조사밖에 없다. 검찰 조사마저 금감원 고발 없이는 어렵다. 그런데 금감원이 감리를 멈춘다면 사실상 우리나라는 2년 동안 ‘분식 천국’이 돼버릴 가능성마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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