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1

2005.02.01

살벌 … 솜방망이 그때그때 달라요

국회 인사청문회 잣대 오락가락 … “허준영 경찰청장 지나치게 관대” 지적 나와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5-01-26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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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벌 … 솜방망이 그때그때 달라요

    2005년 1월14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는 허준영 경찰청장.

    허준영씨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인사청문회를 ‘손쉽게’ 통과하고 1월19일 경찰청장에 취임했다. 병역 문제를 비롯해 몇 가지 흠이 발견됐으나 무난하게 청문회 벽을 넘은 것을 두고 국회가 허 청장에게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합적인 평가로는 병역과 시력 문제, 대학졸업 및 재산증식 과정 등에 대해 일부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보여지나, 대체적으로 경찰의 현안 과제인 자치경찰제 도입과 경찰수사권 조정, 경찰개혁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소신을 갖추었다고 보여진다.”(행자위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청문위원들은 허 청장이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속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음에도 “도적적 흠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1970년대엔 입영 신체검사가 정확하지 않았다”면서 면죄부를 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반나절가량 진행된 인사청문회는 ‘수박 겉핥기’식 분위기가 역력했다. 허 청장이 내정된 뒤 불거진 병역 비리, 경찰임용 비리, 부인의 국민연금 미납 문제,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질의됐으나 의원들의 추궁은 ‘솜 방망이’에 그쳤다.

    의원들은 “병역 문제도 해명이 됐다”며 우군을 자처하는가 하면 투기 의혹에 대해 “재테크”라고 오히려 옹호하기도 했다. “‘월간조선’ 1월호를 읽어보라”(한나라당 김기춘 의원)는 ‘황당 질문’도 있었다. 청문회인지 사석인지를 혼동케 하는 문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부하직원들과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면서요? 열린 지도자상이 아닐까 싶습니다.”(열린우리당 우제항 의원)

    “네, 42.195km를 완주했습니다.”(허 청장)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이 임명한 후보자를 옹호하는 건 다른 청문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낯익은 장면.

    ‘수박 겉핥기’식 분위기 … 야당 의원도 두둔

    그런데 이번 청문회에선 야당 의원들까지 허 청장을 두둔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지명자를 꼼꼼히 검토해야 할 야당 의원들이 ‘부실 청문회’에 톡톡히 한몫한 것이다.

    허 청장은 경북고 고려대를 졸업한 TK(대구경북) 인사. 동향인 데다 경북고 동문이어서 그랬을까. 곽성문 권오을 의원의 질문엔 ‘바늘’이 없었다.

    “후보자는 부친에 이어 2대째 경찰에 봉직하면서 헌신한 만큼 검증됐다고 본다.”(한나라당 곽성문 의원)

    이렇듯 여당 의원들의 감싸기와 동향 출신 야당 의원들의 옹호 덕에 허 청장은 “잘 몰랐다” “노력하겠다” “명심하겠다”는 면피용 답변을 내놓고도 비교적 쉽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허 청장에게 일부 문제가 있었으나 준비와 시간 부족 등으로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살벌 … 솜방망이 그때그때 달라요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 장대환 전 국무총리서리, 윤성식 전 감사원장 후보(왼쪽부터).

    이 같은 국회의 부실 검증에 대해 “학연·지연이 있는 의원은 청문위원에서 배제해야 한다”거나 인사청문회 무용론도 제기된다. 이기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대한 청와대의 ‘부실 검증’이 여론의 질타를 받는 상황에서 인사청문회가 진행된 터라 국회에 대한 실망은 더욱 컸다.

    허 청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국무총리 감사원장 등에 대한 역대 인사청문회와 대비가 된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아파트 평수를 비롯해 사생활까지 낱낱이 까발려지면서 장상, 장대환 두 총리 후보가 ‘서리’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낙마했다. 2003년엔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가 학창시절 성적까지 공개돼 망신을 당하면서 인신공격장을 방불케 한 ‘살벌한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바 있다.

    장 전 총리서리 인사청문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정쟁에 의한 희생양’이었다는 의견과 ‘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는 견해가 충돌하는 것. 장 전 총리서리는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피의자 청문회를 구별하지 못했다”면서 자신이 인민재판식 인사청문회의 희생양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장 전 총리서리는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에게서 장남의 국적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에 대해 집중 공격을 받았다.

    “장 지명자와 배우자의 유동자산이 14억원이 넘는데 생활비에다 장남 유학비가 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부부 중 한 사람의 봉급을 모두 저축할 수 있었느냐.”

    14억원의 재산은 장 전 총리서리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의원들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 없이 정쟁에 매몰된 흠집잡기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인사청문회 내용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장 전 총리서리는 ‘마녀사냥’을 방불케 한 여론의 공격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장 전 총리서리를 둘러싼 의혹은 이번에 허 청장을 두고 제기된 의혹과 엇비슷해 보인다. 장 전 총리서리의 낙마가 야당의 ‘김대중 정부 길들이기’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쟁에 춤추기보다 도덕성·자질 검증에 충실을”

    장 전 총리서리에 이어 장대환 전 총리서리도 낙마하자 장상 전 총리서리가 장대환 전 총리서리보다 뒤에 지명됐다면 인사청문회를 통과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장상 전 총리서리가 위장전입 등 2~3개 항목에서 문제점이 지적된 반면, 장대환 전 총리서리는 12곳의 부동산 투기의혹과 회사 대여금을 이용한 주식매입, 자녀 위장전입, 학력시비 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장 전 총리서리 인사청문회는 고위 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봐주기’식으로 일관한 허 청장 인사청문회보다 나았다고 볼 수 있다. 고위 공직자가 되려면 일반 국민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윤성식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이 2003년 감사원장 후보로 받은 인사청문회는 “인사청문회가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윤 위원장은 감사원장으로서의 자질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야당에 의해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청문회에서 딸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 정도가 거론됐을 정도로 도덕성에선 문제가 없었다는 평가다.

    당시 청문위원들은 윤 위원장의 직무수행 능력이나 식견에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언론과 시민단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윤 위원장은 국회의 임명 동의를 받지 못했다. 야당의 대통령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낙마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오락가락하는 국회의 불공평한 잣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 노무현 정부 인사 시스템을 만드는 데 관여한 한 인사는 “시기에 따라 인사청문회의 잣대가 서로 달랐다”면서 “인사청문회를 정쟁 수단으로 이용하는 후진적 정치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용덕 교수는 “인사청문회 제도는 학계에서 꾸준히 도입을 주장해온 것으로 제도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의원들이 인사청문회를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하는 장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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