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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삼각산 문화 밸리’ 조용히 뜬다

예술인·학자들 둥지 튼 서울 통의·부암동 일대 … 상업주의 멀리한 ‘집’ 중심 문화운동 확산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삼각산 문화 밸리’ 조용히 뜬다

‘삼각산 문화 밸리’ 조용히 뜬다

광화문 서쪽 통의동과 부암동 등에서 문화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의 이승희 대표.

서울의 중심 광화문에서 서쪽으로 꺾어져 영추문과 청와대 길을 지나 부암동사무소에 이르면 여기가 서울인가 싶은 풍경이 펼쳐진다. 도로는 번듯한데, 길가엔 1950년대에 지어진 나지막한 2층 건물들이 이어지고 이발소, 철물점, 중국집, 옷 수선집 등이 시간을 잊은 듯 행인과 차들을 바라본다.

언제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이곳에 무척 작은 흰색 큐브와 손바닥만한 창문이 뚫린 오렌지색 벽이 생겨났다. 호기심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갈 무렵, 흰색 큐브 정면 유리에 꽤나 엽기적인 이미지가 붙었다. 안쪽 벽면의 그림과 유리면에 붙은 음화(사진 필름)의 초상, 이를 바라보는 행인의 모습이 조명으로 인해 겹쳐지면서 몽환적이고 불길한 상상력을 발동시켰다.

겉에서 보기엔 평범한 한옥 … 마당 안쪽은 작은 콘서트홀

2주일이 지나자 부암동사무소 직원이 갤러리로 판명된 흰색 큐브의 주인을 찾아와 ‘사진을 떼라’고 통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이 동네를 모르는 모양인데 동사무소에 민원이 하도 많이 들어와 다른 일을 못하고 있다”며 사정 반 으름장 반으로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런 반응도 전 좋았어요. 놀러 와 있던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지만.(웃음) 계속 서울 강남에서 살고 뉴욕에서 8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는데, 이곳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제 전공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인데 이곳에서 사는 일 자체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된 거죠.”



‘삼각산 문화 밸리’ 조용히 뜬다

오보이스트 성필관씨.

56년에 지어진 건물에 2004년 가을 4평짜리 카페와 그보다 더 작은 갤러리를 연 이승희씨(‘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대표, 전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유쾌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사계절이 바뀌는 걸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곳에 두 개의 공간을 얻었고, 정체한 것처럼 보였던 동네에 예상보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새로운 문화적 소통의 중심지를 만들 용기를 얻었다.

이곳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에서 북악스카이웨이에 이르는 옛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당이 아담한 기와집이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일반 대중과 예술에서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 음악회를 마련해온 오보이스트 성필관씨와 플루티스트 용미중씨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이다.

‘삼각산 문화 밸리’ 조용히 뜬다

'열린책들' 사옥을 설계한 황두진씨.

겉에서 보기엔 평범한 한옥 같은데, 마당 안쪽 문으로 몇 걸음 들어서면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70석 규모의 객석을 갖춘 작은 콘서트홀과 한옥이 붉은색과 노란색 벽으로 이어져 있어서다. 벽에는 그가 서울 반포에서 부암동으로 이사 와 2003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16명의 인부들과 함께 콘서트홀을 직접 지은 과정이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붙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인왕산과 북악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이 50이 되고, 그게 45년 동안 예술을 한 셈인데, 예술이 이런 게 아니다 싶어 강원도에 은둔해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려 했어요. 강원도 가다 큰 사고가 나는 바람에 서울로 돌아와 저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공간을 나누기로 한 곳이 여기예요. 이왕 서울로 온 거, 중심에서 자본주의가 아직 지배하지 못한 곳을 찾았죠. 물론 패배할 것이 분명한 결투지만, 죽기 살기로 해보고 싶어요. ‘예술의 전당’을 위한 예술이 있다면, 사회적 책임을 지는 예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는 이곳에서 돈에 타락한 예술의 상징으로 피아노를 베에 싸 ‘장사’ 지내는 퍼포먼스를 하고, 조촐한 16세기 악기 쳄발로 공연을 하기도 했고 자주 국악 공연을 연다. 이번 성탄절엔 ‘조선시대의 크리스마스’라는 콘서트를 열었다. 홍보 없이 인터넷 홈페이지(www.freechal. com/capone)를 통해 사람들이 모인다.

‘삼각산 문화 밸리’ 조용히 뜬다

황두진 건축사 사무소에서 보이는 '영추문'.

변화는, 지리적으로 보면 통의동에서 시작해 부암동을 거쳐 평창동과 국민대까지 이르는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는 광화문 서쪽, 글도 쓰고 개인전도 여는 작가인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아이디어를 따르자면, ‘삼각산 문화밸리’에 해당한다.

“처음엔 대학의 문화 사업 구상이었는데, 삼각산 계곡에 사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문화운동을 벌이고 있어서 넘겨(?)주었다. 올해부터 대학에서 ‘몸으로 표현하기’라는 예술강좌를 시작하는데, 이것은 내 나름의 삼각산 문화밸리 참여가 될 것이다.”

인사동~북촌 지역 같은 무분별한 개발 경계

광화문 동쪽, 즉 인사동과 사간동에서 시작해 북촌 한옥마을과 삼청동에 이르는 지역이 이미 분별없는 개발로 인해 문화적 기능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보는 이들이 통의동에서 시작해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삼각산 밸리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삼각산 문화 밸리’ 조용히 뜬다

삼각산 문화밸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들. 작rk 백미옥씨의 집 '갤러리키미'.

조선시대 관료들이 드나들었다는 통의동 영추문을 마주한 곳에 사무실과 살림집을 마련해 살고 있는 건축가 황두진씨 역시 스스로 ‘삼각산 문화밸리’의 책임을 지고 사는 이다. 그는 통의동의 랜드마크가 된 열린책들 사옥 ‘소설(The Social)’을 설계했고,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공부하다 이사까지 와버렸다.

“열린책들 사옥을 짓기 위해 여기 온 순간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치더군요. 아, 기회가 너무 빨리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오래된 일본식 주택 내부에 화재가 나 헐고 다시 짓는 건데, 600년 역사의 물리적 흔적은 없었지만, 그 오래된 사연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죠. 고도가 많은 유럽에서 ‘맥락주의(contextualism)’가 발달했는데, 물리적·정신적 맥락을 찾아내 그에 맞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거죠. 저도 열심히 리서치를 했어요.”

그는 조선시대 양반촌으로 알려진 가회동과 북촌 한옥들이 대부분 30년대 이전에 팔린 뒤 땅을 잘게 나눠 집 장사들이 지은 것이어서 원형을 찾기 어려운 반면, 계속 건축 규제를 받았던 통의동의 경우 중인촌으로서 티(T)자형 골목 패턴 등에서 오히려 조선시대 골목의 원형을 발견하기 쉽다고 말한다.

십자형이 아닌 T자형 골목은 왕으로부터 땅을 하사받은 신하들이 길에서 자기 집 솟을대문까지만 직선으로 길을 냈기 때문에 생겨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골목 형태다. 일종의 ‘무계획적 권위주의’랄까.

역시 건축가였고 통의동에서 살았던 시인 이상이 ‘오감도’에 설정한 ‘막다른 골목’ 역시 매일 마주치던 골목에서 한 모더니스트가 느꼈던 전근대적 조국에 대한 두려움과 환멸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 T자형 좁은 골목은 지금 서구 자본주의의 상징인 자동차의 출입을 막는 ‘척사’가 된 셈이다.

황두진씨의 ‘맥락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이곳에 모여 살았던 중인 계급, 즉 프티부르주아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낳은 여항문학과 공공적 시설물 없이 ‘집’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예술, 말하자면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예술이 매우 중요하다.

“이곳이 북촌이나 삼청동처럼 되지 않으려면, 이곳이 상업자본이나 돈 많은 예술가들의 별장이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즉 돈 있는 사람들이 소비하러 오는 공간이 아니라 뭔가-주장이든 실제 예술작품이든-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중인)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집의 문화활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방성을 가져도 상업주의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지요.”

‘삼각산 문화 밸리’ 조용히 뜬다

마은식씨가 운영하는 커피상점 '카페에스프레소'.

황씨가 이곳에 이사 온 뒤 시작한 ‘집의 문화활동’이 바로 문화계에서는 꽤 알려진 ‘영추포럼’이다. 2004년 11월엔 ‘광화문 권역의 변화’에 대한 주제 토론이 열리기도 했다.

경복궁 바로 옆 통의동의 변화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입구에 열린책들 사옥과 대림미술관, 진화랑이 있다. 최근 코오롱이 건물을 리노베이션-맥락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실망스럽다-한 디자인센터가 있고, 뉴욕에서 활동하던 작가 오숙진씨가 2층에 살림집을 쓰고 있는 대안공간 ‘브레인팩토리’와 카페 ‘FAN’이 있다. ‘브레인팩토리’는 젊고 강렬한 개성을 가진 작가 리스트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2004년 봄에 이사 온 성필관 용미중씨 부부와 가을에 온 이승희 교수가 사는 부암동은 워낙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긴 했다. 길을 걷다 2층을 올려다보면 낡은 창틀에 기댄 이젤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평창동이나 경기도 양평처럼 화가 동네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곳에 사는 예술가들이 이른바 ‘재야’작가인 탓인 듯싶다. 평창동에 ‘귀족’ 예술가들이 많다면, 부암동엔 ‘중인’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고나 할까. 그들 가운데 일부는 평창동으로 옮겨가길 바랄 것이고, 일부는 창조라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살고 있을 것이다.

2001년 환기미술관 입구 오거리길에 문을 연 커피 상점 카페에스프레소는 근처에 사는 미술가들과 큐레이터, 혹은 미술학원 원장들이 모여 장작 때는 난롯가에서 예술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부암동의 명소다.

커피 공부와 목공예를 함께 시작해 15년 경력을 가진 카페에스프레소의 주인 마은식씨는 손님이 너무 많은 혜화동 가게를 정리하고 호젓한 곳을 찾아 들어왔다고 했다. 가게 옆에 목공작업실이 있고 살림집은 바로 길 하나 건너편인 그도 진짜 이 동네 사람이다.

“가게 위층에 작가 김덕기씨가 살고, 건너편에 이택희씨가 살아요. 여기서 부르면 내려오지요. 박종성, 음현정, 홍소안씨 같은 젊은 작가들 모두 이 동네 살아요. 사람들이 다른 동네와 많이 달라요. 유학파도 많고 젊은 예술가들도 많은데,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다들 소박해요. 작가들 사이에 가끔 대기업 회장이나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 대학 총장들도 섞이는데 여기선 전혀 티를 내지 않더라고요.”

‘삼각산 문화 밸리’ 조용히 뜬다

작가 오숙진씨가 문을 연 '브레인팩토리아'와 'FAN'.

미술 기획자인 이영철 교수(계원조형예술대)도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아파트 근처에도 가기 싫어’ 2년 전에 인왕산 자락으로 찾아 들어온 사람이다.

화랑 급속히 늘어나자 일부 인사들 ‘걱정 반 환영 반’

“여기는 인구 밀도가 낮고 부동산 값 폭등할 때도 전혀 덕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좀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요. 요즘은 슬슬 변하는 거 같더군요. 땅값도 많이 올랐고.”

그는 새로 생긴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의 오렌지색 벽이 변화에 가속도를 붙이지 않을까 걱정한다.

부암동 고개를 내려오면 ‘부암컨서트홀’이 있고, 평창동에 이르면 화랑재벌로 꼽히는 ‘가나아트센터’에 이어 토탈미술관, 김종영 미술관, 영인미술관, 그로리치 미술관 등이 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미술관이거나 재단이 운영하는 규모가 큰 미술관들이다.

설이면 작가들이 모여 윷판을 벌이는 곳이 토탈미술관인데, 최근의 기획전들이 훨씬 젊어지고 도발적이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언덕 꼭대기에 가정집을 개조해 새로 문을 연 갤러리 세줄과 키미갤러리가 있다. 키미갤러리는 서양화가 백미옥씨가 살면서 운영하는 곳으로 참신한 공모전과 전망 좋은 카페로 유명해졌다.

“미국에서 살다 인사동에서 살 생각을 하고 들어갔다가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이곳으로 왔어요. 젊은 작가들 기획전을 하고 있는데, 역시 전시가 좋으면 집이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이 많아져요. 동네에서 어찌 그리 입소문이 빠른지.”

백 대표는 최근 근처에 화랑이 급속히 늘어나 걱정 반 환영 반이다. 나이 많은 동네 집주인들이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집을 팔면 바로 바로 갤러리나 상업적인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걱정 역시 이곳이 ‘제2의 삼청동’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삼각산 문화밸리에 둥지를 튼 이들이 경계하는 것은 물론 인사동이나 북촌 한옥마을을 휩쓸었던 급속한 상업화다. 그러나 이들은 ‘상업화’가 단순히 가게가 많아지는 것뿐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이 몰려와 가난한 토박이 주민들을 몰아내는 것도 포함한다고 본다.

황두진씨는 “실제로 이곳이 복고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폐쇄적인 지역이 될 위험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이 때문에 삶으로서 예술을 생산하는 ‘중인’들의 문화, ‘집’ 중심의 자생적 문화 활동을 강조한다. 고급 취미를 가진 여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클이 생기고, 예술가들이 이들을 위해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집에 관람객들이 모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자의식 없이 권력으로서 문화가 결국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 실례가 2004년 12월 중순에 폐관된 구기동 ‘미아’ 미술관이다. 전직 대통령 사돈 가족이 서울미술관을 인수해 문을 연 ‘미아’ 미술관은 호화로운 외양과 달리 재개관에서 폐관까지 거의 모든 과정이 미술계와 상관없이 이뤄졌다. 한 미술계 인사는 “미술관이 아무리 크면 뭐하나. 미술판 일로 보이지 않는 걸”이라고 말한다.

삼각산 문화밸리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스스로 앞에 나서는 일에 서툴다는 것이었다. 경복궁과 청와대의 위압이 그런 ‘맥락’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집은 공공에 개방되었으나 간판도 없는 ‘살림집’ 모양이다. 관심을 갖고 찾아들어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어렵다. ‘아는 만큼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 알게 되는 공간이 바로 ‘삼각산 문화밸리’다.



주간동아 2005.01.11 468호 (p66~68)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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