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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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숨결마저 멜로디로 승화하는 재즈 보컬리스트와 한 시간

그레고리 포터 내한공연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09-30 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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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몸에서는 한없이 부드럽되 거침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숨에 100km까지 올려도 계기판을 봐야 속도를 알 수 있는 차에 탄 듯한 느낌이었다. 그 차는 한 시간 동안 멈춤 없이 달렸다. 힘과 편안함이 동의어가 될 수 있음을 체험한 시간이었다. 9월 2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클럽앤써에서 열린 그레고리 포터의 공연을 보며 받은 인상이다.

    포터는 197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는 목사인 어머니였는데, 종교적 신념보다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불우이웃을 돕는 생활을 어린 포터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어릴 적 이런 생활을 담은 노래가 새 앨범 제목이기도 한 ‘Take Me To The Alley’다. 어머니는 그에게 냇 킹 콜의 노래를 들려주며 음악적 감성을 키워주기도 했다. 포터의 꿈은 풋볼 선수가 되는 거였다. 체격이 좋고 재능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해 제법 좋은 성적을 올렸다. 샌디에이고주립대에 풋볼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하지만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시합 중 심각한 어깨 부상을 겪었다. 선수 생활이 더는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 어머니는 절망에 빠진 포터를 다독이며 노래를 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는 그렇게 노래를 시작했다.

    2010년, 오랫동안 만들어둔 곡을 바탕으로 데뷔 앨범 ‘Water’를 발매한다. 흑인 남성 보컬이 기근인 상황에서 전통 재즈와 솔, 가스펠 등에 기반을 둔 이 앨범은 곧바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대기만성 보컬리스트를 눈여겨본 레이블이 많았고, 그는 블루노트와 계약을 맺으며 다시 한 번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50년대 재즈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21세기 최고의 재즈 스타 노라 존스를 배출한 블루노트는 포터의 힘 있고도 부드러운 목소리에 아낌없이 투자했고 A급 스태프들까지 배치했다. 포터는 세 번째 앨범이자 첫 번째 메이저 데뷔작인 ‘Liquid Spirit’로 그 기대에 부응한다. 세상 또한 명가(名家)와 명인의 만남에 화답했다. 이 앨범은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재즈 보컬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2000만 회 이상 스트리밍됐다. 재즈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그가 한국에 왔다. 서울재즈페스티벌에 두 차례 참가한 적은 있지만 홀로 무대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새 앨범 ‘Take Me To The Alley’로 한층 풍성해진 레퍼토리를 선보인 그의 공연은 피아노와 색소폰, 드럼, 그리고 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4인조 밴드와 함께 했다. ‘Holding On’의 피아노 전주에 맞춰 등장한 포터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레코딩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인간의 목소리였다. 뭐랄까, 숨결마저 멜로디로 승화하는 듯했다. 재즈와 솔, R&B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되 편안하고 부드러우며 힘 있는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왜 그가 이 시대 최고 재즈 보컬리스트인지, 포터는 묵묵히 증명해보였다. 힘을 쓰는 게 아니라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음악을 돋보이게 만들 줄 아는 것이다. ‘Liquid Spirit’에서는 직접 박수를 치며 객석의 흥을 돋우기도 했다. 보컬리스트로서의 자신을 무작정 내세우기보다 연주자가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재주도 일품이었다. 젊었을 때 스타가 돼 기고만장한 게 아닌, 생활인으로서 오랜 경험을 가진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음악적 인격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이날 공연이 특별했던 건 여느 콘서트와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대와 객석의 높이가 동등했고, 포터와 밴드는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며 함께 호흡을 나눴다. 공연 드레스코드가 블랙 앤드 골드였던지라 공연이라기보다 파티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이런 분위기에 얹히는 그의 목소리는 품격과 흥을 공존케 했고, 꽤나 오랫동안 기억될 한 시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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