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0

2016.08.10

정치

“오래전 기획된 구원투수 겸 소방수”

靑, 이철성 경찰청장 내정 배경…각종 의혹, 고민 날릴 성공 스토리와 국정철학 파악 능력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박훈상 동아일보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6-08-05 17: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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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놀랍지는 않다.”

    7월 28일 강신명(52) 경찰청장 후임으로 이철성(58·사진) 경찰청 차장이 내정된 사실이 알려지자 청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될 사람이 됐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이후 23년 전 음주사고 이력, 강원도 별장 투기 의혹, 석사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졌지만 경찰 내 분위기는 “이와 관계없이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야권 관계자의 입에서조차 “자식 농사도 잘 지었다. 위장 전입 흔적조차 없다. 자기 관리 잘하고 깨끗한 사람 같다”라는 평이 나올 정도.   

    정치권 일부에선 이 내정자를 대상으로 제기된 각종 의혹 등을 이유로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검증 능력을 탓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모습이 청와대가 던진 최선의 카드이자 회심의 일격에 당황한 야권의 오버액션이라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 내정자는 청와대가 급한 불을 끄려고 미리 챙겨둔 소방수이자 구원투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이 내정자가 청와대 치안비서관 업무를 마치고 경찰에 복귀할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경기지방경찰청장 중 어디로 갈 것인지만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의 최종 종착지가 경찰청장이 될 것이란 사실에 토를 다는 이는 조직 내부에 아무도 없었다”고 전했다.



    신화적 성공 스토리와 환상의 타이밍

    지난해 12월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치안비서관에서 자리를 옮길 당시 이 내정자가 기존 경찰청장들이 거쳐 온 서울청장, 경기청장에 임명되지 않고 경찰청 차장으로 간 것도 후일 그를 크게 쓰기 위한 청와대의 사전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서울청장이나 경기청장을 하다 행여 예상치 못한 불미스러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고, 강신명 청장이 치안비서관과 서울청장을 거친 이력을 감안해 이 내정자를 경찰청 차장으로 보냄으로써 청와대가 자기 출신들만 챙긴다는 구설의 싹을 애초 잘라버렸다는 것.



    경찰 안팎에서 이 내정자를 경찰청장 유력 후보로 꼽은 것은 청와대와의 탁월한 교감 능력 때문이다. 7월 28일 이 후보자의 내정 사실을 밝히며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치안비서관을 거쳐 대통령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권 말기 대통령선거(대선)를 앞둔 상황에서 일선 치안총수에게 청와대의 뜻을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를 이끌며 조계사에 은신해 있던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을 별다른 잡음 없이 체포하고 상황을 수습했던 점도 큰 점수를 얻은 듯하다. 당시 이 내정자는 “청와대 치안비서관으로서 청와대와 경찰 간 소통과 조율을 잘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내정자의 신화적 성공 스토리는 경찰이 현재 처한 두 가지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미다스의 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현재 경찰이 안고 있는 첫 번째 고민은 부산지역 학교전담경찰관들의 여고생 성관계 파문과 사건의 조직적 은폐 정황, 이후로도 이어진 경찰관 성비위 사건으로 땅에 떨어진 경찰 이미지를 회복하는 일이다. 두 번째 고민은 강 청장 재임 시절 최고조에 이른 경찰 조직 내 경찰대 출신과 비경찰대 출신 간 반목 및 갈등을 적정선에서 봉합하는 일이다.

    청와대는 일단 이 내정자가 정식으로 임명되면 현재 위기 국면을 어느 정도 돌파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내정자의 인생 스토리는 일반 국민이 듣기에도 놀랍고 서민 친화적이다. 이 내정자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1991년 경찰청이 출범한 이후 잎사귀 2개(순경)에서 왕무궁화 4개(치안총감)까지 경찰의 모든 계급을 섭렵한 첫 청장이 된다. 경기 수원시 출신인 이 내정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원 유신고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쳤다. 군대를 다녀온 후 82년 3월 순경으로 입문한 이 내정자는 89년 경사 시절 간부후보생(37기) 시험에 합격해 경위로 재임용됐다. 간부후보생 출신 간부가 그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면서 “너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 시험을 쳐보라”고 권유한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작은 무궁화를 달고 다시 경찰 생활을 시작할 때 그의 나이는 서른하나, 경찰대 졸업생보다 7~8년 늦은 출발이었지만 결국 경찰에 입문한 지 34년 만에 총수 자리에 도전하는 위치가 됐다. 경찰 한 관계자는 “경찰대 출신은 엘리트주의가 강하지만 이 내정자는 자수성가, 입지전적 인물이라 국민에게 비치는 이미지도 좋다”고 말했다.



    경찰 내 출신 갈등 잠재울 유일한 대안

    타이밍도 딱 맞았다. 대구 출신으로 이 내정자와 함께 다음 청장 하마평에 올랐던 이상식(50) 부산청장(경찰대 5기)이 부산지역 경찰들의 여고생 성폭행 사건과 은폐 의혹 등으로 청장 후보 경쟁에서 일찌감치 밀려났고, 부산 사건을 포함한 일련의 경찰 성추문 사건과 그 대처 과정에서 경찰대 출신(2기) 강 청장의 조직기강 확립 능력에 의문부호가 커졌기 때문. 여기에 경찰대 1기 출신인 황운하 경무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강 청장을 비판하면서 경찰대 출신 내부에서도 자중지란이 일어나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청와대는 차기 경찰청장 인선에서 강 청장에 이어 또 한 번 경찰대 출신을 뽑아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경찰 고위직 대부분을 경찰대 출신이 장악한 가운데 비경찰대 출신 청장이 들어서면 과연 조직 장악이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대, 간부후보생, 고시, 순경 출신이 함께 일하는 특유의 조직 구조상 두 번 연속 경찰대 출신 청장이 나오는 것에 대한 비경찰대 출신의 반발도 고려 대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이 내정자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가장 말단인 순경 출신이란 상징성을 갖고 있고 비경찰대 간부후보생 출신이기까지 해 조직 내부 세력 간 화합을 이루고 기강을 확립하는 데 유리한 점이 많다. 딱 필요한 시점에 이 후보자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고향 또한 정권 색깔과는 전혀 관계없을 뿐 아니라 34년간의 경찰 경험은 조직을 안정화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데 가장 적합한 요소라는 얘기다.  

    하지만 순경에서 시작해 15만 경찰을 책임지는 치안총수 자리에 오른다 해도 정권의 마지막 경찰청장으로서 이 내정자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검찰 개혁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조직 내부에서 신임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대선 정국에서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경찰청장에 내정된 직후 어느 기자가 “임기를 채우기 어려울 거란 이야기도 나온다”라고 말하자 이 내정자는 이렇게 답했다.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제게 주어진 일을 하루하루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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