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3

2001.05.10

두 번 팔린 쌍둥이 사건 ‘美·英 시끌시끌’

입양 중개소, 두 부부에게 수수료 챙겨 … 양육권 다툼 법정 비화 ‘결국 양쪽 모두 헛물’

  • < 김현진/ 연세대 유럽정보문화센터 전문연구원 hyunjinkim@yahoo.com >

    입력2005-01-25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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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후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젖먹이 아이들을 놓고 이루어진 파렴치한 ‘장사’로 인해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 영국과 미국에서는 한편의 드라마가 진행중이다. 이른바 ‘인터넷 쌍둥이’ 킴벌리와 벨린다가 그 주인공.

    이미 두 딸과 두 아들이 있는 40대 후반의 영국인 킬쇼 부부는 인터넷 광고를 통해 알게 된 미국인 흑인 여자아이들을 입양하면서 8200파운드(약 1500만원)의 수수료를 입양 중개소에 지불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영국으로 데려온 후 알고 보니 두 쌍둥이는 이미 미국의 또 다른 부부가 입양한 상태.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앨런 부부가, 킬쇼 부부가 제공한 금액의 절반 가량밖에 되지 않는 6000달러만을 지불하고 아이들을 입양한 것이었다. 앨런 부부에게서 아이들을 다시 빼앗아 훨씬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자 하는 킬쇼 부부에게 넘기도록 생모를 부추겼던 것은 다름 아닌 입양 중개소 소장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그렇게 이중으로 팔린 9개월된 이 젖먹이 아이들이 누구의 손에서 자라나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영국과 미국에서는 벌써 석 달째 재판을 계속하고 있다. 사기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미국인 부부는 아이들을 양도해 줄 것을 요구했으며, 영국인 부부 또한 자신들이 ‘사들인’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지키고자 했다.

    이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떠들썩하게 알려지자 마침내 영`-`미 간 외교문제로 비화했고, 각종 매스컴과 법정은 아이들을 둘러싼 투쟁 장소로 변했다. 삼류 법정영화를 방불하게 하는 치졸한 싸움과정에서 두 입양 희망 가정의 추악한 점들이 세상에 속속 공개되기 시작했다. 미국 입양부모 중 아버지인 앨런 씨가 예전에 두 명의 베이비시터를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는가 하면, 영국측 킬쇼 부인은 괴기한 마녀숭배에 빠져 있다는 의혹을 샀던 것. 그러나 일이 더욱 복잡해진 것은 그 와중에 아이들의 생모가 다시 나타나 아이들의 양육권을 요구하고 나선 후부터였다. 성폭행 전력으로 인해 비난의 화살을 한몸에 받은 앨런 부부가 입양을 포기하자, 대신 이제는 아이들의 생부마저 나서서 그때까지는 알지도 못했던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새삼 들먹이기 시작했다. 결국 한 쌍의 아이들을 놓고 세 쌍의 부부가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지난 4월9일 영국 최고 사회복지재판소는 영국인 킬쇼 부부에게 패소 판정을 내려 그들이 아이들을 다시 데려올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그들의 입양이 합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부터 일단 문제가 되었기 때문. 영국인 부부는 패소를 인정하고, 상소심 절차를 포기했다. 입양을 원한 두 가정 모두가 기회를 잃었지만, 영국 법원은 모든 법적 문제를 종결할 때까지 사회복지기관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도록 결정했다.



    이들이 언제 미국으로 돌아갈지, 간다면 생모에게 돌아갈 것인지, 아직 어느 하나 분명한 것은 없는 상태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 생모와 생부 간의 새 양육권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모는 바로 자신의 아이들을 두 번씩이나 팔아먹은 장본인이고, 뒤늦게야 자신의 존재를 알린 생부의 의도 또한 의심스러울 뿐이어서 아이들이 친부모 중 어느 한 쪽에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들의 장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현재로서는 젖꼭지를 입에 물고 다정하게 누워 있는 킴벌리와 벨린다의 천진한 얼굴이 어른들의 다툼으로 인해 멍들지 않도록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모든 법적 문제를 일단락하기를 바라는 것만이 사태를 지켜보는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셈이다.

    이번 사건에서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생후 채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공공연하게 인터넷 상거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생모가 두 번씩이나 자신의 젖먹이 아이들을 팔아먹도록 부추겨 천진한 아이들을 인신매매의 대상으로 삼은 입양 중개소의 소장은 사건이 불거지자 종적을 감췄다. 한편 영국 정부는 차후 입양법을 강화하여 당국과의 합의 없이 외국에서 아이를 입양할 경우 석 달의 금고형에 처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러한 조치가 실제로 아무런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의 보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입양이 인신매매가 되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영국 내의 까다로운 입양정책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입양을 원하는 영국인 부모들이 보다 간편한 입양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다 보니 이런 결과가 생겨났다는 것. 그런가 하면 ‘가디언’ 지는 “이 서글픈 사건은 입양절차에서 아이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줄 뿐”이라며 당국의 감독을 벗어난 사적 입양을 보다 강력히 통제할 것을 미국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제3세계 국가의 아이들을 유럽-미국 등의 선진 국가에서 끊임없이 입양하고 있으며, 그 숫자 또한 해마다 증가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해외 입양에 있어서 러시아-중국에 이어 세계 3위라는 명예롭지 못한 타이틀을 차지한 우리 나라에서도 역시 입양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이 표출되어 왔다.

    한국이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뒤집어쓴 것은, 우선 입양의 개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오로지 불임에 대한 대체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국내 입양 가정들의 이기적 태도가 원인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입양을 자칫 거래로 만들 수도 있을 입양비 내지는 입양수수료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99년 한 민간 입양기관은 국내 입양의 경우 200만원의 수수료를 받는 데 비해 해외 입양을 성사할 경우에는 700~ 1000만원의 수수료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적인 이유로 은밀하게 입양이 이루어질 경우 수천만원대의 입양비가 오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입양은 이미 입양이 아니며, 아이들을 놓고 벌이는 일종의 ‘상거래’가 된다.

    제3세계 국가의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입양한 독일에서도 입양아의 수는 점점 늘고 있다. 독일 당국은 아이들을 놓고 벌이는 어떤 형태의 ‘거래’도 생기지 않도록, 국제적 입양기관을 거치지 않은 사적 입양을 철저히 금한다. 그럼에도 최근 인도나 케냐의 아이들이 생모의 동의 없이 불법으로 입양되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 하지 않는 무자녀 부모들, 마찬가지로 이익을 챙기기 위해 무슨 짓도 마다 하지 않는 불법 입양 중개자들을 통한 사적 입양이 유럽 곳곳에서 과다한 수수료, 이중 거래, 불확실한 법적 근거 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진정한 휴머니즘의 발로로 이루어져야 할 입양사업이 ‘아이 장사’라는 범죄적 행위로 전락한 서구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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