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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도시’ 부산 레디~액션!

시민들 전폭적 지원, 곳곳서 영화 촬영중 … 홍콩, 일본서도 찾아오는 ‘한국의 할리우드’

‘영화의 도시’ 부산 레디~액션!

‘영화의 도시’ 부산 레디~액션!
부산.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내려가 며칠씩 묵고 오는 곳이지만, 이번에는 기분이 좀 묘했다. 김해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차창으로 보이는 낙동강 하구언과 구포 굴다리 시장과 남포동 극장가, 그리고 비릿한 항구의 냄새를 풍기는 자갈치 시장…. 눈에 들어오는 곳곳의 풍경이 영화 ‘친구’의 장면들과 오버랩되면서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어린 친구들이 소독차의 뒤를 쫓아 달리던 곳이 저 골목이었을까?’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살벌하게 패싸움을 벌이던 극장에서는 지금 어떤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까?’

로마를 찾은 관광객들이 ‘로마의 휴일’이란 영화를 떠올리며 오드리 헵번이 걸어 내려오던 스페인 계단을 찾아가듯, 이제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은 영화 ‘친구’의 실제 무대를 거닐고 있다는 기쁨과 설렘을 맛볼지도 모를 일이다.

‘주간동아’가 지난호(280호)에 인터뷰한 배우 장동건은, “영화 ‘친구’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부산”이라고 말했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정말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촬영하느라 장사하는 분들에게 많이 방해가 되었을 텐데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협조해 주시고 격려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분들의 인정과 호의가 없었다면 ‘친구’도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친구’ 성공 절반은 부산 시민의 몫

‘영화의 도시’ 부산 레디~액션!
곽경택 감독과 주연 배우들은 영화를 개봉하자마자 부산으로 달려가 극장가를 돌며 시민들과 부산영상위원회(이하 영상위)측에 감사의 뜻을 표했고, 팬 사인회 등의 행사에 기꺼이 시간을 할애했다. 부산의 무엇이 이들을 감동시킨 것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부산시청 내에 위치한 부산영상위원회를 찾았다.



10여 명의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아담한 크기의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로케이션팀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벽면에 붙여 놓은 ‘로케 지원 현황판’에는 현재 촬영중이거나 협의중인 영화들이 빽빽이 적혀 있다.

“어제 수정동 고가도로에서 찍을 예정이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도로 통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촬영이 연기되었습니다. 인근 경찰서와 협의해 이른 시일 내에 촬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내일 일본영화사에서 로케이션 장소 물색차 영상위를 방문합니다. 차량과 인력 협조 바랍니다.”

6명의 로케이션팀원들은 각자 자신이 맡고 있는 영화들의 지원현황을 보고하고 어려운 부분에 대해 협조를 구하면서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해 나갔다. 회의가 끝나자 각자 자리에 돌아가 영화사와 관공서에 전화를 하고 필요한 공문을 작성하느라, 아침부터 커피 한잔 즐길 여유도 이들에겐 없어 보였다.

‘영화의 도시’ 부산 레디~액션!
“영도다리를 통제하고, 범일동 국제호텔 앞 도로는 3일간이나 차량 통행을 금지하면서 버스 노선까지 바꾸는 바람에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쳤는데, 영화가 성공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영상위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김정현씨는 “요즘엔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한다”고 말한다.

정직원, 단기 스태프, 파견 공무원 등 13명의 영상위 사람들이 하는 ‘일’은 바로 영화촬영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로케이션 지원, 행정기관 허가 대행, 숙박시설 알선 등 영화촬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신속하게 처리한다.

제작현장에 있는 영화인이라면 간단한 장면 하나를 찍기 위해 이런저런 공문을 들고 경찰서-소방서 등 관공서를 뛰어다닌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 때 제작진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촬영장소 섭외와 각종 장비를 동원하는 문제이다. 군부대는 보안을 이유로, 경찰서는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손을 내젓기 일쑤이고, 겨우 허가를 받아도 이 눈치 저 눈치 다 봐야 한다. 아예 촬영을 허락하지 않는 성역 같은 장소에서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던 감독들. ‘쉬리’의 강제규 감독은 “군부대의 협조만 있었다면 훨씬 잘 만든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고, ‘공동경비구역 JSA’ 제작진은 끝내 판문점 촬영 허가를 못 받아 7억원을 들여 세트를 만들어야 했다.

‘영화의 도시’ 부산 레디~액션!
지방자치단체들마다 앞을 다투어 거창한 이름의 영화제들을 개최하고 있지만, 정작 영화촬영에 대한 의식과 협조는 기대 이하인 상황에서 부산시와 영상위의 이런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은 영화인들에게 ‘가뭄에 단비’가 되고 있다. 부산에서 영화 ‘리베라 메’를 촬영한 양윤호 감독은 “영화촬영 때 흔히 요구되는 관청의 인-허가 과정이 거의 없는데다 물심양면의 적극적인 지원에 놀랐다”고 말했다.

‘리베라 메’를 촬영할 당시 영상위는 대여료가 시간당 300만원인 헬기와 하루 임차료 40만원인 살수차를 무상으로 지원했고, 소방관과 119대원, 일일 품삯이 5만원씩인 엑스트라 등을 지원했다. 촬영 3개월 동안 지원내용은 금액으로 따져 10억원선. 뿐만 아니라 재개발 예정인 아파트를 폭파신 촬영장소로 제공하면서 촬영장 주변에 경찰인력을 배치해 도로 통제 및 안전을 담당하게 했다. ‘인디안 썸머’ 촬영 때는 부산시청 정무부시장실까지 촬영장소로 제공하였으며 부산교도소의 협조로 사상 처음 교도소 내 촬영도 가능했다고.

“부산에 가면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영화만 찍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영화제작진들은 너도나도 부산으로 몰려가고 있다. 영상위의 로케이션 현황자료를 살펴보니,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촬영을 완료한 작품이 13개, 현재 촬영중인 작품이 2개, 헌팅 및 협의중인 작품이 43개에 이른다. 홍콩 및 일본에서도 영화를 찍겠다며 찾아오고 있고 단편영화, 뮤직비디오, CF도 20개 작품이 잡혀 있다. 지난 몇 년간 부산에서 찍은 영화가 1년에 한두 편에 지나지 않고, 91년부터 95년까지는 단 한 편도 없던 것을 상기하면 영상위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다.

‘영화의 도시’ 부산 레디~액션!
현재 부산에서 촬영중인 장선우 감독의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지원하고 있는 김현석씨는 “영화 촬영 전에 시민들에게 미리 알려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도 큰일”이라고 말한다. ‘성냥팔이…’의 경우 3월중 열흘 동안이나 부전동 롯데백화점 앞 4차선 도로에서 대규모 액션신을 촬영했는데, 부산에서 가장 혼잡한 곳 중 하나인 이곳의 교통을 통제하면서 미리 시민들에게 전단을 배포하고 도로 곳곳에 플래카드를 걸어 시민들의 협조를 구했다. 차량통제에 따른 불편을 줄이기 위해 봉고차를 임시 운행하고 해병전우회 소속 회원들까지 현장에 나와 진행을 도우면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리베라 메 폭파장면 촬영 때는 인근 주민들 중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호텔로 옮겨 지내시게 했습니다.” 영상위의 이런 세심한 노력과 배려가 있었기에 ‘친구’의 주인공들은 그 복잡한 자갈치 시장을 마음대로 내달릴 수 있었고, 부산고등학교의 협조로 동수(장동건 분)가 학교 유리창을 모조리 깨뜨리는 ‘폭력’도 가능했으리라.

부산에서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지난해부터 부산 전체가 영화촬영장이 된 것 같다. 교통방송에서 수시로 상황안내를 해줘 어디서 무슨 영화를 찍는지 훤하게 알 수 있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촬영현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전한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으로 부산 시민들의 영화산업에 대한 이해도 크게 높아졌다. 지난해 부산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은 부산시의 핵심전략산업으로 영화산업을 꼽았고, 부산시에서 영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데 찬성했다. 이같은 시민들의 의지와 친화력은 부산시의 영상산업 구축에 상당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화관 수와 관객수도 크게 늘어 97년 18개이던 영화관 수는 작년 말 현재 45개로 늘어났고, 관객 수도 540만명에서 730만명으로 증가했다. 남포동 영화거리를 벗어나 서면에 멀티플렉스 CGV가 들어섰고, 롯데백화점 부산점과 밀리오레 부산점에도 곧 복합영화관이 들어서 서면이 새로운 영화의 중심지로 떠오를 전망. 서면 CGV 기획실의 심윤희씨는 “영화 ‘친구’의 경우 총 12개관 중 4개관에서 상영을 하고 있는데 평일에도 거의 매진사태다. 주말에는 하루 평균 1만5000명의 관객이 이곳을 찾는다. 부산 경기가 침체일로를 걷고 있지만 영화관객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한다.

영상위에서 부산에 영화고등학교가 신설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초량에 있는 부산국제영화고등학교를 찾았다. 올 3월 부산영상고등학교와 함께 전국 최초의 영화특성화 고교로 문을 연 이 학교는 영상정보통신, 영상헤어디자인, 영상연예 등 3개과에 400명의 신입생을 받았다. 학생들은 색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자유로운 차림새였다. 유쾌봉 교장은 “부산이 영화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뒷받침할 수 있는 인력자원을 양성하는 곳인 만큼 산-학 협동체제를 구축하고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한 연계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인으로의 꿈을 키우는 어린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촬영을 돕는 영상위 사람들, 부산의 강과 바다와 도심을 누비며 밤낮 없이 촬영에 열중하는 영화 제작팀들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영화의 도시’ 부산의 오늘과 내일을 그려볼 수 있다. ‘문화 불모지’라는 오명을 벗고 ‘시네마 시티’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부산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에 차 있었다.





주간동아 2001.04.26 281호 (p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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