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3

2001.03.01

왕까지 오른 ‘건달’들 중국 흥망성쇠 좌우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입력2005-02-15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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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까지 오른 ‘건달’들 중국 흥망성쇠 좌우
    지난 1월 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으로 대우학술총서가 500권째를 돌파하자, 모처럼 아카넷 출판사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쳤다. 정연재 출판팀장은 “직원들끼리 앞으로 3년 뒤 600권째가 나올 때쯤 다시 있을까말까한 일이라며 웃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떠들썩한 박수소리가 멀어져가도 대우학술총서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그 결과가 501번째 ‘중국유맹사’다.

    유맹(流氓)이란 ‘올바른 직업에 힘쓰지 않고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우리말로 바꾸면 건달, 부랑자, 깡패쯤 된다. 중국에서도 시대에 따라 유맹은 이름을 달리했다. 예를 들어 선진(先秦) 시기에는 타민(惰民) 혹은 유협(游俠)으로 불렸고, 진한 때는 악소년(惡少年), 위진남북조 때는 무뢰배(無賴輩), 수당(隨唐) 때는 방시악소(坊市惡少), 송대에는 파락호(破落戶) 등이 있었다. 진보량의 ‘중국유맹사’는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각 역사시대에 이런 건달들이 사회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제반 영역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보여준다.

    흔히 유맹을 하층계급으로 그 사회의 일탈집단으로 취급하지만 연구범위를 넓히면 역사적으로 유맹의 대상에 속하지 않는 사회계층이 없을 만큼 광범위했다. 한나라 유방과 명태조 주원장처럼 건달에서 왕이 된 인물까지 있으니 유맹이 중국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역사상 유맹을 제재로 쓴 역사 전문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역사 분야에서 ‘최초’란 기초사료를 조사하고 배열-정리하여 분석하는 작업, 그리고 책으로 엮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음을 의미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자인 진보량(38)이 스물아홉 나이에 이 역작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진보량은 건달이라는 비학문적 주제를 학술의 장으로 끌어들이며, 정치-경제사 중심의 기존 중국사 연구에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소재의 빈곤과 연구자의 조로(早老) 현상으로 위기에 처한 우리 인문학계에 귀감이 될 만한 연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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