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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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경제’ 가고 ‘속도의 경제’ 뜬다

  • 입력2005-03-07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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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모의 경제’ 가고 ‘속도의 경제’ 뜬다
    미국과 유럽 통신업계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지난 수년간 세계 M&A를 주도했던 거대 통신업체들이 M&A에서 다시 기업 분할로 사업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통신업계의 거인들은 이동통신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꿈의 통신이라는 IMT-2000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대형 M&A로 세계 언론을 장식해 왔다. 이런 이면에는 통신산업의 흐름이 유선통신에서 이동통신으로, 음성통신에서 데이터통신으로 급속히 전환되면서 전화기가 단순한 통화 수단에서 멀티미디어 기기로 변화하고 있는 현실도 크게 작용했다. 또한 IMT-2000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대기 위해서도 규모의 경제는 생존의 조건이었고 먹지 않으면 먹힌다는 강박관념으로 대형 업체들은 쇼핑붐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그러나 지금 대형 통신업체들은 이러한 과식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미국의 최대 통신업체인 AT&T는 최근 회사를 케이블TV, 이동통신사업 등 4개로 분할한다고 발표했다. AT&T는 모든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원스톱 통신 서비스업체로 전환한다는 목표 아래 1000억달러를 케이블TV 업체 인수에 쏟아부었지만 결국 구상에 그치고 말았다. 주가가 바닥을 기고 있으며 620억달러에 이르는 부채로 인해 투자적격 등급을 간신히 넘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러한 악전고투 끝에 결국 기업 분할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게 되었다. 그러나 1000억달러를 들여 키워놓은 케이블TV사업을 분사하겠다는 AT&T의 M&A의 전략은 ‘잘못된 만남’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회사를 쪼개는 업체는 AT&T뿐만이 아니다. 미국 통신업계의 2인자인 MCI월드콤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 최대 통신업체였던 브리티시텔레콤(BT)도 분사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업체들이 M&A와 사업 확대의 후유증이 중병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보다폰의 경우 두번의 과감한 베팅으로 세계 통신업계의 거인으로 거듭났다. 보다폰은 지난해 초 미국의 이동통신업체인 에어터치를 인수하면서 BT의 강력한 도전자로 떠오르더니 올해 초 독일의 통신업체인 만네스만을 1630억달러(180조원)에 인수한 이후 BT를 완전히 추월했다. 현재 BT의 시가총액은 보다폰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BT의 경우 산만한 투자 전략, IMT-2000사업에 따른 부담과 민영화 이후에도 과거 국영기업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실 보다폰은 매출 규모에서 만네스만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만네스만은 자기가 보다폰을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보다폰은 만네스만 인수에 성공한 이후 이동통신부문을 제외한 사업부를 거액에 팔아치우며 자금력을 확충했다.

    악전고투 대형통신업체들 ‘기업분할’ 최후의 카드

    이런 차이는 보다폰이 이동통신이라는 확실한 부문에 모든 경영자원을 집중한 반면 AT&T와 같은 통신업체들은 기존 통신사업을 유지하면서 이동통신사업을 확대했다는 데 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막대한 수업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수익성 높은 이동통신과 하향세의 고정통신을 분리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제 통신업계도 대형 업체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모든 부문에서 성공하기보다는 한 분야에서 확실하게 입지를 닦은 이후 다른 사업부문의 업체들과 ‘강자연합’을 구축해 전체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기술의 발전속도가 날로 가속화되어감에 따라 수직적 통합은 모래 위의 성으로 변하고 있으며, 규모의 경제는 이제 속도의 경제에 밀려나고 있다. 한국통신의 민영화와 IMT-2000 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해외 통신업계의 흐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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