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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발레리노 이원국

한국 남성 발레의 시대 막을 열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발레리노 이원국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발레리노 이원국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원국씨(33)가 10월20일 ‘문화의 날’ 행사에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무용부문 수상자’(문화관광부 주최)로 선정됐다.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그 상은 문화관광부가 주기 이전에 이미 관객이 이원국씨에게 주었던 상”이라는 축하 메시지가 뜨기도 했다. 중앙대 4학년 재학시절 이미 국립발레단 ‘레퀴엠’의 주역으로 뽑혔고,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 ‘지젤’ 객원 주역, 루마니아 국립클루즈오페라발레단 ‘백조의 호수’와 ‘지젤’의 객원 주역 등 화려한 무대경력을 관객들이 먼저 알아본 것이다.

1m82의 균형잡힌 몸매, 회전과 도약의 놀라운 테크닉은 남자후배들에게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여겨졌다. 여기에 풍부한 표현력과 신사다운 무대매너 역시 일품. 다른 남자 무용수들이 대체로 얌전하거나 다소 여성화된 세련미에 치우쳐 있다면 이원국은 여성 파트너를 정중하면서도 여유있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담스럽지 않게 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적절히 드러내거나 과시해야 할 순간을 놓치는 법도 결코 없다. 서구적 개념에서의 신사 혹은 기사의 풍모를 그는 갖추고 있다.

한국 발레는 이제 본격적인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남자들의 역할은 늘 제한돼 왔다. 그런 풍토에서 일찌감치 남성 발레의 시대를 예고했던 인물이 이원국이다. 그는 남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고등학교 2학년)에 발레를 시작해 중앙대 무용과에 들어와서도 거의 독학했다. 이원국뿐 아니라 남성 발레 무용수들이 대개 그랬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를 따로 가르칠 교사가 우리 발레계에 없었던 탓이다.

밤새워가며 거의 독학 … ‘춤추는 남자’들의 교과서

이원국은 그를 친형처럼 따르는 김용걸(파리 오페라발레단원) 등 가까운 후배들과 자취방에서 밤을 새우며 외국 비디오를 틀고 또 틀면서 자학자습을 계속했다. 어쩌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교사의 단기강습이라도 있으면 그날의 레슨 내용은 무조건 외우고 또 외웠다.



발레의 원조라는 공산권에서 배우고 싶기도 했지만 그쪽과 전혀 교류가 없던 시절에는 애만 태워야 했다. 그러다 1992년 세계 최고(最高·最古)의 바르나 콩쿠르(불가리아)에 출전해 심사위원들로부터 주목받았다. 우리의 환경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도 그는 지금보다 더 훌륭한 무용수가 되어 있었을 터이다.

한국 남자 발레의 계보는 선구자 임성남에서 시작된다. 평생을 발레에 바친 그는 4반세기에 이르는 세월을 국립발레단장으로 재직했고, 그래서 개척자의 고통도 있었지만 영광도 누렸다. 애석하게도 그 이후로는 남자 무용수가 없었다. 김성일, 이상만 세대는 뜻을 펼칠 만한 환경을 찾지 못했고 그 후 꾸준히 남자 무용수들이 무대에 섰지만 한눈에 반할 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는 발레 교육의 빈곤만이 아니라 사회적 편협도 있었다. ‘춤추는 남자’에 대한 근거 없는 선입견 말이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격변하고 있는 이 시기에 오랜 세대 단절 이후의 첫 주자격인 이원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후배 남성 무용수들을 잘 키워 오랜 세월 여성 과잉의 불균형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우리 발레계가 균형을 잡는 데 일조하는 일이다. 둘째로는 지나치게 여성 중심적인 데서 비롯된 무용 사회의 무기력증과 배타성, 비사회성을 치유하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

훌륭한 선배 남성 무용인도 많고 원로, 중진도 없지 않지만 어쩐지 ‘사회’라고 부르기에는 어줍잖은 우리 무용계에 이원국 같은 이들이 신선한 힘이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소속 단체의 이적과 보장 없는 외국행을 되풀이하며 진정한 무용가로 성장하기 위해 고뇌했던 자신의 역정을 되돌아본다면 젊은 힘은 언제든 솟아나지 않겠는가.



주간동아 2000.11.09 258호 (p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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