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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독립영화 ‘10년’ 홍콩의 우울

금상장영화제 최우수작품상…민주주의 사라진 암울한 미래 고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독립영화 ‘10년’ 홍콩의 우울

독립영화 ‘10년’ 홍콩의 우울

4월 3일 열린 제35회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홍콩 독립영화 ‘10년’의 포스터. 뉴시스

홍콩 독립영화 한 편이 중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문제의 영화는 중국 통제가 강화된 2025년 홍콩을 묘사한 ‘10년(十年)’이란 작품으로, 5개 단편으로 이뤄진 옴니버스 영화다. 흑사회(폭력조직)를 끌어들여 홍콩에 국가안전법 도입을 도모하는 중국 고위관료, 보통화(普通話·표준 중국어) 사용 의무화로 고초를 겪는 홍콩 택시기사,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돼 단식투쟁을 하던 중 숨지는 청년운동가, 중국식 교육을 받아 홍위병처럼 어른들을 감시하는 홍콩 어린이 등이 소재다.

영화 ‘10년’은 홍콩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부르는 홍콩금상장(金像奬)영화제에서 올해(4월 3일) 최우수작품상으로 선정됐다. 과거 아시아 영화를 주도해온 홍콩 영화계는 현재 중국의 거대 자본과 권력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물론, 세계 최대 영화시장으로 떠오른 대륙의 입김이 어느 곳보다 강력하게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치적으로 민감할 뿐 아니라 50만 홍콩달러(약 7000만 원)라는 저예산으로 제작한 영화가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는 점은 말 그대로 홍콩 영화계의 ‘반란’이라 할 수 있다.



사상 최초 생중계 금지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정부는 홍콩금상장영화제 생중계를 금지하는 등 이 영화에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영화제가 중국에서 생중계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 중국 언론들은 홍콩금상장영화제 소식을 다루면서도 최우수작품상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인 ‘환추시보’는 이 영화가 터무니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사상의 바이러스’라고 악평하기도 했다.

영화는 지난해 말 작은 영화관 한 곳에서 처음 상영된 후 입소문을 타고 상영관이 홍콩 전역으로 늘어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보다 많은 사람이 관람해 600만 홍콩달러(약 8억4000만 원)라는 흥행 실적을 올렸다. 영화가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까지 수상하자 홍콩에서는 사회단체 주도로 재개봉에 들어갔다. 일본, 대만, 싱가포르는 물론 미국 영화제에도 초청됐다.



홍콩 주민들이 이 영화에 공감한 이유는 점점 사라져가는 홍콩의 정체성과 갈수록 심해지는 중국의 강압통치를 현실에서도 느끼기 때문이다. 제작자 차이렌밍(蔡廉明)은 영화 흥행 이유에 대해 “지금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다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콩 최고지도자인 행정장관의 직선제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젊은이들이 홍콩 중심부 도로를 2014년 9월 28일부터 79일간 점거한 ‘우산혁명’이 중국 정부의 개입으로 무산된 일이 대표적. 지난해 10월에는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서적을 취급하던 서점과 출판 관계자 5명이 실종되는 사건마저 발생했다. 이후 이들이 중국 공안당국에 비밀리에 연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홍콩 주민들이 분노한 바 있다. 춘제(우리나라의 설날)인       1월 8일에는 카우룽(九龍)반도 번화가인 몽콕(旺角)에서 홍콩의 자치 확대를 요구하는 젊은이들이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홍콩은 1840년 아편전쟁으로 영국에 할양된 후 156년 동안 식민지로 있다 1997년 중국으로 귀속됐다. 당시 중국은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하면서 홍콩에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세계 역사상 초유의 제도를 50년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말 그대로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체제, 국가는 중국이지만 홍콩의 각종 제도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의미였다. 홍콩 주민들은 그동안 중국의 약속을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고는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원칙의 보장으로 해석해왔다. 반면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일국양제와 관련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경제체제의 원칙을 가리킨 것일 뿐, 정치체제는 중국 사회주의체제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중국 정부가 발행한 ‘홍콩백서’에서도 ‘중국 정부가 홍콩에 대한 전면적인 관할권을 행사한다. 홍콩이 고도의 자치를 시행하지만 중앙이 감독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탄압 거셀수록 반발도 커지는 악순환

중국 정부는 홍콩을 귀속한 초창기만 해도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홍콩특별행정구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고 홍콩 행정장관 역시 자신들 입맛에 맞는 인물로 임명하려 시도해왔다. 홍콩 입법부와 사법부, 언론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현재 홍콩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6000명이 주둔하고 있다. 홍콩 기본법 제18조에 따르면 중국은 전쟁이나 홍콩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경우 홍콩에 중국 법을 적용할 수 있다.

한때 글로벌 금융과 무역 중심지라는 명성을 누리던 홍콩 경제도 나빠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홍콩의 위상은 약화된 반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부상했다. 홍콩 국내총생산(GDP)은 2011년 상하이에, 2013년 베이징에 각각 역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6〜7%였던 GDP 성장률은 지난해 2.4%로 떨어졌고 올해도       1〜2%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사이 중국 신흥 부자들은 홍콩 쇼핑가를 점령하고 고가의 부동산을 매입하는 등 ‘홍콩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중국 사람들이 분유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지난해 홍콩에서 분유가 품귀현상을 빚었을 정도. 이들의 유입으로 집값이 급등하고 취업 기회가 박탈되는 등 홍콩 주민의 불만은 쌓여만 가고 있다.

홍콩은 전체 인구 720만 명 가운데 빈곤선 이하가 96만 명에 달해 세계에서 12번째로 불평등이 심한 지역으로 꼽힌다. 소득 분배의 형평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0.537로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이라는 0.5를 웃돌고 있다. 특히 홍콩 미래에 대한 젊은 층의 기대 상실이 중국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일부 젊은 층은 이러한 반감을 정치투쟁으로 표출하고 있다. 우산혁명에 가담했던 학생 대표 가운데 일부는 홍콩 독립을 위해 ‘홍콩민족당’을 결성했다. 반면 중국 정부는 홍콩 내부의 이러한 독립 움직임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왕즈민 홍콩·마카오판공실 부주임은 “홍콩 독립 주장은 심각한 불법행위”라면서 “홍콩 기본법 위반일 뿐 아니라 반역죄와 선동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중국 정부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영화 ‘10년’이 그린 홍콩의 암울한 미래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우려 역시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주간동아 2016.04.20 1034호 (p64~65)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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