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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개성공단 폐쇄 한 달

閉城 된 開城 근로자는 웁니다

국무조정실장 “고용 유지 안 하면 세무조사” 발언에도 근로자 80% 이상 해고돼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閉城 된 開城 근로자는 웁니다

閉城 된 開城 근로자는 웁니다

정부가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에 마련해준 대체공장에 어렵사리 둥지를 튼 컴베이스 직원들의 모습. 박해윤 기자

2월, 개성공단이 멈췄다. 2013년에 이어 두 번째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개성공단 기업인과 근로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실상 개성에서 아무것도 챙겨오지 못한 채 얼마 남지 않은 거래처를 붙들고 분투하는 기업인부터 직장을 잃고 갈 곳이 없어 자신을 해고한 직장의 사무실에 나가고 있는 근로자까지, 그늘은 조직도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짙어졌다.
‘귀하는 소상공업진흥을 통하여 국가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다음 훈장을 수여합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 인근 좁은 골목 사이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이런 문구가 대통령 직인과 함께 찍혀 있는 ‘철탑산업훈장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중소기업이 받을 수 있는 훈장 가운데 가장 높은 거라고 합디다.” 박용만 녹색섬유 대표가 짐짓 자랑스레 덧붙였다. 훈장이 수여된 것은 2월 26일. 녹색섬유의 유일한 공장이 위치해 있던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보름 만이다. 본래는 왕십리 인근의 이 작은 건물이 공장이었다. 2005년 개성공단 토지를 분양받아 2007년부터 개성에서 물건을 생산해왔다. 2014년에는 공장을 증축했다. 공장이 닫혀 생산이 중단된 시점에 훈장을 받은 역설적 상황.



정부 전격 발표에 옷가지도 못 챙기고 떠나와

그래도 박 대표는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데, 섬유 쪽이 자본도 많이 들지 않고 열심히만 하면 먹고살겠다 싶어 1983년 4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만 33년 동안 한 우물만 파왔다. 내가 33년 동안 (섬유)제품을 만들어왔는데 개성공단 제품에는 정말 자부심이 있었다. 품질이나 신뢰도(납기)에서도 바이어 평가 1위였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해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2월 10일 오후 5시쯤. 개성공단 기업인들도 공식 발표 몇 시간 전 정부의 가동 중단 결정을 ‘통보’받은 터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게다가 정부는 기업들의 요청에도 철수 작업을 위한 인원은 단 한 명으로 못 박고, 차량도 1~2대만 통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당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공단 문을 닫겠다고 하면서 (철수할 시간을) 목·금·토(요일) 사흘 줬다. 겨우 갔더니 북한 측 직원이 없어 공장 설비도 제대로 뺄 수가 없었다.” 개성공단에서 플라스틱 완구를 생산하던 박남서 컴베이스 대표의 말이다. “(2월 11일) 오후 4시 반쯤 되니까 북한 측에서 5시까지 전원 퇴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결국 아무것도 못 갖고 내려왔다.” 박 대표는 개성공단 내 공장에서 금형을 가져오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고 한다. 플라스틱 제품의 틀이 되는 금형은 새로 주문하면 나오는 데 빨라야 1개월이고 보통 2~3개월 걸린다. 박 대표는 회사 직원들이 일기장도 못 챙겨 내려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덧붙였다. “거기(일기장)에 자기가 보고 겪은 것들에 대한 심정을 솔직하게 써놓았을 텐데, 북한 측에서 그걸 읽으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당시 입주 기업들이 얼마나 급하게 철수해야 했는지는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개성공단 내 모 섬유회사에서 일하던 ㄱ씨는 숙소에 있던 옷가지는 물론, 수십만 원에 달하는 현금도 챙기지 못했다. “2년 넘게 개성공단에서 생활하다 보니 옷 대부분을 숙소에 뒀다. 공단이 폐쇄되고 나니 입을 옷이 없었다.”
컴베이스는 레이저프린터용 토너 카트리지를 제조해 일본, 호주, 유럽 등지로 수출하는 기업이다.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에 있던 공장을 개성공단으로 옮긴 것이 2008년.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으로 해외 거래처가 떨어져나가자 내수용 플라스틱 완구 생산으로 전환했다. 2012년부터 홍콩 투자자가 기업 인수를 제안해와 논의 중이었으나, 2013년 4월 북한이 개성공단 입경을 차단하고 노동자들을 철수시키면서 물거품이 됐다. 그나마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애니메이션 ‘또봇 탐험대’의 완구 임가공을 맡으면서 그동안 쌓인 부채를 털어낼 수 있었다.



허울뿐인 보상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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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녹색섬유 대표(위)와 그가 받은 철탑산업훈장증. 박해윤 기자

컴베이스는 2014년 한국에서 유일하게 사출, 도포, 조립을 일괄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성공단에 갖추고 ‘또봇 탐험대’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 완구를 2015년 가을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맥이 끊겼다. 현재 ‘터닝메카드’ 완구의 제작 물량은 중국으로 넘어간 상태. 그나마 일부 거래처가 남아 그 물량이라도 생산하고자 정부가 대체공장으로 제공한 시화공단 내 공장에 입주했다. 이곳 아파트형 공장에서 몇몇 직원이 작업 중이었다. 입구에는 아직까지 전 입주기업의 명패가 붙어 있어 얼마나 급하게 들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박 대표는 공장 한가운데 텅 빈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라인이 더 들어와야 한다. 다음 주부터 인력이 더 필요해 직원 모집을 시작하긴 했는데….”
정부는 현재까지 ‘개성공단 입주기업 지원 정부합동대책반’(정부합동대책반)을 구성해 다섯 차례 회의를 하고 갖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기업주와 근로자들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책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제시하는 대책이 대부분 대출 알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정부합동대책반에서 내놓은 ‘개성공단 입주기업 지원사업 안내’를 보자. 남북협력기금 기존 대출 만기 연장, 남북협력기금 신규 대출, 중소기업 정책자금 상환 유예 및 신규 대출, 보증기관 및 은행을 통한 금융지원…. 박남서 대표는 “정부는 보상은 해주지 않고 빚만 지우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는 입주기업들의 투자를 보전하고, 빠른 시일 내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중략) 남북경협기금의 보험을 활용해 개성공단에 투자한 금액의 90%까지 신속하게 지급할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 16일 국회 국정연설에서 한 말이다.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박 대통령의 이 언급에는 현실의 많은 측면이 가려져 있다.
입주기업 124곳 가운데 남북경협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이 50곳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3년 개성공단 잠정 중단 사태 때 보험금을 받은 기업 중 상당수가 실질적으로 자사의 손실 보전에 쓰지 못했다. 개성공단의 리스크가 확인되자 공장 설립 당시 대출을 해준 은행들이 대출금 상환을 요구했기 때문. 개성공단 운영이 재개되자 기업들은 보험금을 반납해야 했는데, 이제는 은행으로부터 대출받기가 어려워졌다. 이 역시 리스크가 높아졌기 때문. 자금난으로 보험금을 제때 반납하지 못한 기업들에게는 연체료가 부과됐다. 보험금을 전액 반납하지 못한 기업들은 남북경협보험에 다시 가입할 수 없었다. 개성공단 기업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2월 말 기준 보험금 미반납 기업은 총 19곳으로, 이 중 14곳은 남북경협보험에 재가입할 수 없게 됐고 나머지는 사업 포기나 해산 절차를 밟았다고 한다.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개성공단 중단 사태를 이미 경험한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현 상황이 2013년과 똑같다고 말한다. 심지어 정부의 허울뿐인 대책까지도.
“2013년 국회에서 긴급 운영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집행된 건 하나도 없다. 지금도 똑같다. 정부가 조 단위의 지원책을 발표하니 국민은 (입주기업들이) 엄청난 지원을 받은 줄 안다.” 박용만 대표의 말이다. 그는 또한 정부가 말하는 대출 제공액도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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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서 컴베이스 대표. 박해윤 기자

“정부에서 또 대출을 5800억 원인가 제공한다고 했는데 우리 기업들이 실제로 대출받을 수 있는 최고액은 1200억 원에 불과하다. 관련 자금관리규정에 고정자산 잔존 가치의 40%를 초과해 대출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대출 과정에서 관련 서류에 미비한 점이 있으면 (대출액은) 더 깎인다.” 2013년 정부가 기업들에 제공한 대출은 모두 거래처 피해보상액으로 지급됐다. 결국 빚만 늘어난 상태. “거래처에 피해보상을 안 해줄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나.”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으로 정부가 기업인들에게 끼친 피해는 금전적 측면만이 아니다. 기업인들은 정부의 ‘언론플레이’로 도덕적 자존심까지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 정부 시책에 대한 의견을 묻자 “기업인이 정부랑 각을 세워 시위할 것도 아니고…”라며 담담한 태도를 보이던 박남서 대표조차 개성공단 기업인들에 대한 국민의 반응에 못내 서운함을 드러냈다. “거래업체와 국민은 우리가 남북경협보험으로 피해액의 90%를 받은 줄 안다. 심지어 다른 모임 자리에서 한 친구가 ‘10% 정도만 손해보고 사업을 청산할 수 있으면 매우 괜찮은 조건 아니냐’고 말하더라.”



해고 처리 미비로 실업급여조차 못 받아

개성공단 폐쇄로 해고된 근로자들의 울분은 이보다 훨씬 더하다. “(국회, 정부종합청사 등지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으니까 시민들이 손가락질하며 ‘정부에서 90% 보전해줬다지 않느냐’고 말하더라.” 모 섬유회사에서 일하다 해고된 ㄱ씨가 1인 시위를 하다 겪은 일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ㄱ씨도 30년 넘게 섬유업에 종사했다. 1980년대 말에는 남미 등 해외공장에서도 일했다. 당시에는 해외에서 일한 경험이 상당한 메리트로 작용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특이할 게 없는 이력이 됐다고 한다. 지인 소개로 개성공단 내 기업에서 일한 지도 26개월이 됐다. 이미 50대인 ㄱ씨는 “마지막 직장이라 생각하고 갔다”고 말한다. “개성공단에 가면 회사가 문을 닫지 않는 한 60, 70세까지 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처럼 50세가 넘은 사람은 이제 와 어디 갈 곳도 없지 않나.”
같은 섬유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한 ㄴ씨의 상실감은 더 크다. 그는 회사가 어려울 때 다른 직원들의 급여를 위해 퇴직금도 반납하고 일했을 정도로 회사에 헌신했다. 2007년 개성공단 근무를 시작해 2009년부터 주재원으로 일했다. 개성공단 주재원의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공장이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기 때문에 휴일은 거의 없다. 주재원들은 2주 정도 개성공단에서 근무하고 주말에 집으로 돌아가 잠시 쉰 뒤 월요일 새벽 5시쯤 개성공단으로 향한다. 개성공단에는 북측 노동자들이 24시간 교대로 일하는 회사가 많아 잘 때도 무전기를 머리맡에 둔다. 공단을 벗어날 수 없고 휴대전화를 쓸 수 없는 데 따른 고립감과, 사회체제가 다른 데서 오는 정신적 부담감도 크다고. 그렇게 헌신적으로 일했건만 조업이 중단되자마자 헌신짝처럼 버려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인들을 믿고 왔는데….” ㄴ씨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근로자들이 기업인에게 갖는 불신도 상당했다. 기업이 해고해놓고 관련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해고자들이 있다고 한다. ㄴ씨는 관련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2013년 공장 가동이 중단되자마자 근로자들부터 해고한 기업인이 이번에 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근로자들 걱정을 하더라. 역겨웠다.”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에게 고용을 유지할 것을 당부하고 각종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2월 26일 열린 개성공단 기업인 간담회에서 국무조정실장은 근로자들을 해고한 기업인을 힐난하면서 “고용을 유지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무조사까지 하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폐쇄된 상황에서 고용을 유지할 만큼 온정 넘치는 기업인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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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서 컴베이스 대표가 개성공단에서 겨우 가져온 자재를 어루만지고 있다. 박해윤 기자

권고사직 당하고도 기약 없는 출근

근로자들은 정부가 제시하는 대책에는 근로자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이나 ‘무급휴업·휴직 근로자 지원’ 등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근로자를 직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통해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기업인이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을 때나 가능하다.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가 자체 집계한 바에 따르면 개성공단 입주기업 근로자 2000여 명 가운데 80% 이상이 권고사직 등으로 해고됐다. 정부 대책 중 해고 근로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면 월 129만 원을 받는다더라. 고교 2학년 딸에게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이 120만 원이다.” ㄴ씨의 아들은 올해 대학에 입학한다. “정부 대책 중 실직자에게 대출을 해준다는 내용이 있기에 알아보니 한도가 600만 원이었다. 1억 원 정도 대출해준다면 빌려보려 했다.” ㄱ씨가 허탈하게 웃으며 옆에서 덧붙였다.
2013년 개성공단 중단 사태 때도 이 회사는 근로자들을 일괄 해고했다. “내 평생 일하면서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그때 5개월간이 가장 오래 쉰 것이다.” 2월 11일 공장이 닫히자 이 회사는 2월 말 남측 근로자 전원을 해고했다. 기자가 ㄴ씨를 만났을 때 그는 오늘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 소속의 다른 회사 해고자가 자신의 사무실에 왔었다고 했다. “안부나 물으러 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해고되니까 어디 갈 곳이 없다’고 하더라. 내 처지와 다르지 않았다.” ㄴ씨 또한 권고사직을 당했음에도 일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이번에는 쉬는 날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른다.






주간동아 2016.03.23 1030호 (p18~21)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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