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48

2022.07.15

여행의 ‘찐’ 묘미 선물한 ‘친절한 그리스인’ [SynchroniCITY]

저도 그리스 여행 갈래요!

  •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입력2022-07-2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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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닌 그리스. [GettyImages]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닌 그리스. [GettyImages]

    현모 장마에, 무더위에 고생하셨죠?

    영대 에휴, 제가 주택에 살다 보니 종종 지하실이 침수될 때가 있거든요. 가족이랑 빗물 퍼내느라 좀 고생하긴 했어요. 즐거운 일은 아니었네요.

    현모 어머! 저 혼자 장마를 피한 거 같아 죄송하네요.

    영대 아니에요. 여행 다녀오신 얘기 좀 들려주세요. 대리만족하고 싶어요. 그리스 어땠어요?



    현모 무척 좋았다는 것밖에 할 말이 없어요.

    영대 그래요? 예전에 아내랑 결혼 10주년이 되면 꼭 산토리니로 놀러가자고 약속한 적이 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갑자기 찔리네요.

    현모 그러셨어요? 왜 하필 산토리니?

    영대 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무척 예쁘잖아요. 예전에 블로그 운영할 때 산토리니를 배경으로 음악도 올리고 그랬죠. ㅎㅎ

    현모 예쁘긴 예뻤어요.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더라고요. 태양이 굉장히 뜨겁긴 했는데, 우리랑 다르게 습도가 낮으니까 푹푹 찌는 더위가 아니라, 산들산들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쾌적하더라고요.

    영대 크아, 날씨 타이밍이 기가 막혔네요.

    현모 그런데 제가 이번에 가장 놀랐던 건 사람들이었어요. 그리스가 지중해성 기후에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닌 국가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친절해서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영대 친절이요? 왠지 그리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닌 거 같네요. 뜻밖이에요.

    현모 친절함이 형식적이거나 로봇 같은 훈련된 서비스 마인드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본인이 재미있고 즐거워서 우러나오는 순박한 웃음과 미소더라고요. 같이 갔던 언니랑 저랑 둘 다 어리둥절할 정도였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의아해 한참 논의할 만큼요.

    영대 뭔지 알 거 같아요. 친절함보다는 따뜻함, 인간미 같은 게 아닐까 싶네요.

    현모 단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이 아닌 게 그리스 여행 책자에도 적혀 있더라고요. 그리스를 대표하는 키워드 10가지 중 당연히 신화의 나라, 역사의 나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제일 먼저 등장하고, 무려 네 번째로 소개되는 게 ‘친절한 그리스인’이더라니까요!

    영대 진짜요? 왜 그럴까요? 소위 말하는 국민성일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현모 저도 책을 읽을 때는 무심코 넘겼는데 직접 겪고 나서 그 대목을 다시 보니까 와 맞구나, 이게 주요한 특징이구나 싶었죠.

    영대 생각해보니 그리스는 저에게 항상 역사책에서만 접하던, 언제나 과거 속에 존재하는 유물 같은 인상이 강했던 거 같아요. 현대 그리스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을 그려본 적이 없었던 듯해요.

    현모 그죠. 우리가 이탈리아나 독일, 프랑스 명품은 많이 써도 그리스 산업을 경험할 일은 흔치 않고, 심지어 영화배우나 가수 중에서도 그리스 사람을 떠올리기가 어렵잖아요.

    영대 아, 딱 한 명 떠올랐어요! 제가 NBA 팬이잖아요. 요새 농구의 신으로 불리는 괴물 같은 선수가 있어요. ‘야니스 아데토쿤보’. 누구는 ‘아테토쿰포’라고 하기도 하는 그리스 출신 선수예요. 어떻게 읽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ㅋㅋㅋㅋ 테니스 선수 치치파스도 유명한데, 정말 할리우드나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그리스 출신이 딱히 떠오르지 않네요.

    현모 그러니까요. 저도 완전 갑작스럽게 정한 행선지라 사전 정보나 공부 없이 무작정 관광했는데, 무엇보다 남녀노소 누구나 영어를 잘해서 어딜 가나 웃음꽃이 피고, 진심으로 감동받았어요.

    영대 영어가 되니 말이 통한다는 것도 호감의 이유일 수 있겠네요.

    현모 특히 자신들 문화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진정으로 감사하더라고요.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알려주려 노력하는 자세들이었어요. 가게에 들어가도 이것저것 다 꺼내면서 이리 와서 보라고 하고, 물건을 사지 않고 나와도 전혀 눈치 주지 않고 밝게 웃으면서 또 오라 하고. ‘환대’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영대 제 생각엔 관광국가로 평생 살아오다 보니 좋은 매너가 몸에 밴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왜 손님이 자주 오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손님들과 어울릴 줄 알고 친화력도 높잖아요.

    현모 진짜 너무 신기해서 마지막까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관광객인 우리만 아쉬운 게 아닌가 보다 싶더라고요. 우리는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내가 언제 또 이렇게 멀리까지 올 수 있을까 막 아쉽잖아요. 근데 그 감정이 상대도 마찬가지인 거죠. 아무리 수많은 손님이 오가며 들락거려도, 이 손님이 잠깐 머물다 떠나면 똑같이 아쉽고 섭섭한 거예요. 여행객이 배고 호스트가 항구라면, 배나 항구나 피차 짧은 만남이니까요.

    영대 그런가 보네요.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고 전 세계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소중히 여기나 봐요. 운 좋게 친절한 사람을 많이 만나신지도? ㅎㅎㅎ

    현모 크레타섬의 한 호텔에서 2박을 했는데, 우리 일정이 몇 번 변경되는 바람에 리셉션 직원과 e메일, 전화를 주고받았거든요. 그랬더니 벌써 정이 들었는지 우리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맞이하는 듯이 엄청 반가워하면서 두 팔 벌려 안아주더라고요. 오느라 수고했다면서. 신나서 주변 맛집들을 추천해주는데 우리가 이틀만 자고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고 했더니, 어찌나 슬퍼하던지. 이 도시가 얼마나 볼 게 많고 예쁜데 그렇게 일찍 가냐고, 내년에 꼭 다시 와야 한다고 당부에 당부를 하더라고요. 자신이 살아가고 일하는 고장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찐’으로 느껴졌어요.

    여행객을 진심으로 환대하는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 여행을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GettyImages]

    여행객을 진심으로 환대하는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 여행을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GettyImages]

    영대 부러워서 안 되겠다. 저도 내년에 그리스로 가족여행 갈래요.

    현모 가게 되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그리스에서 현지 친구들을 꽤 사귀었으니 연결해놓을게요.

    영대 신혼여행으로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에 갔을 때 딱 그런 정겨운 느낌이었는데, 다시 가기로 하고 아직도 못 가고 있네요.

    현모 여행은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무조건 두 다리가 건강할 때 최대한 가야 합니다!

    영대 그러게요. 그런데 왜 주변에서 그리스 이야기를 들은 적이 별로 없었을까요?

    현모 아직 직항 노선이 없어서 그래요. 무조건 경유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그리스관광청도, 문화원도 없대요. 일본 지사에서 한국 업무까지 담당한다고 하네요. 당연히 우리말로 된 정보도 부족하고, 홍보 활동도 거의 없다시피 한 거죠. 몇 해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단체로 그리스를 한 바퀴 훑은 적이 있는데, 그때 반짝 관심도가 올라갔던 게 아마 전부일 거예요.

    영대 그렇구나! 맞다, 기억난다. 그럼 이제부터 현모 님이 그리스 홍보대사 하세요! 왠지 어울려요. 외모도 뭔가 그리스 여신. ㅎㅎ

    현모 ㅎㅎㅎ 안 그래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자발적으로 홍보하고 있잖아요.

    영대 그리스에서는 한국 홍보대사 하고요.

    현모 그럼요. 무지하게 하고 다녔죠. 요새는 다들 한국 영화, 드라마, 케이팝 팬이라며 붙잡고 얘기하는 분위기라 신도 나요. 그런 분들한테는 한국에서 일부러 가져간 조그만 한국적인 선물도 챙겨드린답니다. 심지어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뛰어와서는 한국인이냐면서, 한국에 너무 가보고 싶다고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니까요. 국적도 다양했고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냐고요!

    영대 여행할 맛이 나겠네요. 그리스에 막국수도 전파하세요!

    현모 헉.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걸어 다니다 보니 더워서 딱 그 생각했는데…. 한국 스타일 팥빙수, 막국수 가게를 차리면 대박나지 않을까요?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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