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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위정자들의 회고록에 비친 Korea의 운명

  •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강대국 위정자들의 회고록에 비친 Korea의 운명

볼턴, 처칠, 루스벨트.

볼턴, 처칠, 루스벨트.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이던 존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에 공개된 내용은 미국뿐 아니라 해외, 특히 한국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단순히 남북한의 관심사가 아니라 세계 관심사가 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수많은 비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각과 북한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각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 보좌진의 시각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이 매우 위험스러우면서도 긴급한 현안의 향방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돌이켜보면 ‘조선=한국’을 이야기한 강대국 지도자들의 회고록은 그사이 수십 책 이상 출판됐다. 볼턴 회고록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그것들 가운데 중요한 몇 책을 재조명해보기로 하자. 

우선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회고록이다. 그는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귀결된 직후 러시아 대표와 일본 대표를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스 군항으로 초치해 사실상 대한제국을 일본의 지배 아래 넘기는 조약을 성립시킨 장본인이다. 관찰자에 따라서는 그는 대한제국을 일본에 팔아넘겼다는 혹평을 받을 만했다. 루스벨트는 신문기자 출신으로 문필에 능했다. 그래서 방대한 양의 회고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왜 코리아를 일제에 넘겼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코리아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그가 이 조약으로 동양평화를 이룩했다고 칭찬하면서 노벨평화상을 수여했으니, 우리 ‘조선=한국인’으로서는 모욕을 당한 셈이 됐다. 

코리아를 무시하기로는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코리아에 단계적으로라도 독립을 주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제의에 반대했다. 훗날 카이로에 와서야 코리아라는 나라를 처음 알았다고 회상한 그는 코리아의 독립을 약속하면 인도를 비롯한 영국의 수많은 식민지가 자신들에게도 독립을 약속하라고 요구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이 마련한 ‘적절한 시점에’ 독립을 주자는 구절을 ‘인 듀 코스(in due course)’라는, 그 뜻이 아주 애매모호한 구절로 바꿔놓았다. 이 구절을 어떻게 번역할지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른데, 대체로 ‘밟아야 할 절차를 모두 밟아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처칠은 훗날 자신의 총리 시절에 관한 회고록을 여섯 권으로 나눠 출간했다. 이렇게 방대한 회고록에서 왜 자신이 ‘인 듀 코스’라는 구절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지 않았다. 아니, 어느 한 곳에서도 코리아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듯, 처칠은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기 조선=한국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는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국민당을 이끌던 장제스는 자신의 회고록 ‘중국의 명운(中國之命運)’에서 조선을 앞으로 중국이 되찾아야 할 ‘잃어버린 땅’이라 표현했고, 옌안에서 중국공산당을 이끌던 마오쩌둥은 서방기자와 회견에서 “청일전쟁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의 속방 조선을 잃었으며, 앞으로 되찾아야 할 후보 가운데 하나”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 회견이 보도된 뒤 중국공산당의 비호 아래 활동하던 조선 독립운동가들이 항의하자 그제야 그 발언을 ‘취소’했다. 그러나 국민당이건, 공산당이건 중국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조선은 우리의 속방이다’라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중국공산당의 동북공정에서도, 그리고 2017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에서도 시진핑의 입을 통해 그러한 뜻이 에둘러 드러난 것이다. 

1945년 8월 15일에 이뤄진 한반도 분할도 당시 조선=한국의 국제 상황을 반영했다. 분할선이 강대국 수뇌들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미국 영관급 장교들의 손에 의해 깊은 사려가 결여된 상태로 이뤄졌다. 그때 분할선 결정에 참여한 딘 러스크 미 육군대령은 훗날 국무장관으로 승진했는데, 퇴임 후 출간한 회고록에서 “소련군이 이미 한반도 북단으로 진입한 상태라 미국은 최소한 서울과 인천을 포함하는 지역은 차지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38선을 제시했다”고 짧게 언급했다. 

세계 외교사에는 ‘국경은 외교관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특히 아프리카를 염두에 두고 나왔다. 1884년 독일 베를린에서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 주재로 15개국이 아프리카 문제를 다루면서 아프리카의 종족 및 민족 특성, 그들의 역사와 지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로 재듯 국경을 정한 것이다. 오늘날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국경선이 일직선으로 그어진 곳이 적잖은 까닭이 거기 잇다. 그래서 같은 종족이 이 나라와 저 나라로 나뉜 채 편입됐고, 이것이 훗날 한 나라 안에서 종족 간 대결과 심지어 전쟁으로 확대됐는데, 비슷한 일이 한반도에서도 재연된 것이다. 

1950년 6·25전쟁과 관련된 서방 측의 대표적 회고록으로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던 딘 애치슨의 회고록, 극동군사령관 및 유엔군사령관을 겸한 더글러스 맥아더의 회고록, 그리고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회고록을 꼽을 수 있다. 이 회고록들 가운데 애치슨의 회고록은 여타 회고록들에 비해 덜 정직하다. 자신이 왜 6·25전쟁의 발발을 예견하지 못한 채 1950년 1월 전국기자협회에서 코리아를 미국 극동방위선에서 제외시켰는지 설득력 있게 회상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 이유도 거기 있다. 그는 맥아더의 건의를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6‧25전쟁과 관련된 소련 측의 회고록으로는 우선 소련공산당 제1서기였으며 소련정부 총리였던 니키타 흐루쇼프의 일련의 회고록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그는 6‧25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북한 김일성이었다고 폭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폭로는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빼놓고는 부정확한 ‘기억’이 적잖아 전문가들은 이 회고록 내용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흐루쇼프의 회고록과 대조되는 것이 그의 정적이던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의 회고록이다. 몰로토프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소비에트 러시아의 ‘총리’일 때 비서실장을 했고 스탈린 밑에서 외무장관 및 총리를 지냈기에 많은 것을 기억하는 소련의 거물급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진실한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회고록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회고록 집필을 거부했다. 다만 그를 존경하는 한 시인이 수십 년에 걸쳐 그에게 물어보면 짧게 짧게 대답해준 내용을 훗날 ‘몰로토프의 회고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책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6‧25전쟁에 관해서는 별 내용이 없다. 

그렇지만 볼턴 회고록과 관련해 떠오르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가 이끌던 영국 노동당 정부의 외무장관 어니스트 베빈의 행태에 관한 내용이다. 회담 후 가진 만찬에서 베빈이 술을 많이 마셨고 차에 토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외무장관을 할 수 있었느냐고 비웃은 것이다. 

이러한 틀 안에서 볼턴 회고록에 대해 말해보자. 볼턴 회고록은 우선 공직자가 자신이 재임 중에 얻은 정보를 이렇게 빨리 공개해도 되느냐 하는 공직자윤리 문제를 낳았다. 미국 국가안보담당 대통령보좌관, 이어 국무장관까지 역임하며 미국 세계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던 헨리 키신저의 경우, 회고록 출간에 앞서 자신이 관여한 일들의 공식 문서들을 해제시간 전에 사용해도 되느냐의 문제에 직면했지만 슬기롭게 해결함으로써 논란을 피했다. 

볼턴 회고록은 미국과 관련 있는 나라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도 직면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하게 될 외국 수뇌들은 앞으로 상당히 고민하게 될 테다. 그리고 이래서는 현상에 대한 정직한 대화가 오갈 수 있을지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어떻든 이 문제는 앞으로 미국 법원에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국민의 알권리’를 앞세우는 판결이 나온다면 이것 역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될 테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볼턴의 폭로는 세계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대통령이 국제정치에 관해 얼마나 준비가 덜 된 사람인지를 알게 했다. 트럼프가 한국의 대외관계와 안보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언동하고 심지어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주간동아 1245호 (p14~16)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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