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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깨어나는 동토, 웃고 있는 중 · 러

셰일가스로 에너지 패권 노리던 미국 뒤통수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깨어나는 동토, 웃고 있는 중 · 러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차얀다 천연가스전. [Gazprom]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차얀다 천연가스전. [Gazprom]

시베리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동토(凍土)다. 실제로 시베리아는 대부분 2년 이상 흙의 온도가 0도 이하로 유지되는 영구 동토다. 이 지역은 크게 우랄산맥을 기준으로 동서로 나뉜다. 동시베리아는 우랄산맥 동쪽부터 태평양 연안의 극동지역까지를 말한다. 면적이 1310만km2로 러시아 전체 영토의 77%를 차지한다. 이는 지구 전체 육지의 10%에 해당한다. 

동시베리아의 영구 동토 밑에는 원유, 천연가스, 금, 다이아몬드, 주석, 니켈, 동, 알루미늄 같은 각종 자원이 매장돼 있다. 엄청나게 추운 날씨 때문에 이 지역의 자원은 대부분 개발되지 않은 채 그대로 묻혀 있다. 특히 이 지역에는 원유 21억t, 천연가스 10조4000억㎥, 석탄 251억t(이상 추정치) 등 에너지 자원이 묻혀 있다. 러시아 전체 에너지 자원 매장량의 20%에 달한다.


지구온난화의 수혜자 러시아

2014년 5월 4000억 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맺을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Sputnik]

2014년 5월 4000억 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맺을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Sputnik]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로 영구 동토가 녹으면서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각종 자원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가 가장 공을 들이는 곳은 이르쿠츠크의 코빅타 가스전과 사하공화국의 차얀다 가스전이다. 코빅타 가스전에는 2조7000억㎥, 차얀다 가스전에는 1조2000억㎥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과 중국 국유기업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는 2014년 5월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매년 380억㎥씩 중국에 30년간 공급한다는 내용으로 4000억 달러(약 466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갖고 두 회사의 계약 서명식을 직접 주재했다. 


[Gazprom]

[Gazprom]

러시아는 같은 해 9월 천연가스를 중국까지 보낼 수 있는 3000km에 달하는 ‘시베리아의 힘(Power Of Siberia · POS)-1’이라는 파이프라인 건설에 들어갔다. 1단계로 차얀다 가스전에서부터 중국과 국경을 접한 블라고베셴스크까지 2200km의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이어 2단계로 2023년부터 차얀다 가스전과 코빅타 가스전을 연결하는 800km의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가스 공급량을 늘리기로 했다(지도 참조).




‘시베리아의 힘’

러시아 기술자들이 엄동설한에도 ‘시베리아의 힘(POS)-1’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공사를 하고 있다. [Gazprom]

러시아 기술자들이 엄동설한에도 ‘시베리아의 힘(POS)-1’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공사를 하고 있다. [Gazprom]

러시아는 5년여가 지난 12월 2일 POS-1 파이프라인 1단계 공사를 끝냈고 아무르강을 건너 3371km에 이르는 중국 헤이룽장성 헤이허-상하이 파이프라인과 연결했다. 당시 양국 국경지대 가압기지에서 열린 개통식에서는 소치에 있던 푸틴 대통령과 베이징에 있던 시 주석이 원격 화상으로 만났다. 시 주석은 “양국 간 융합과 상생의 모델”이라 말했고, 푸틴 대통령 역시 “양국 수교 70주년에 POS-1 개통은 중대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2015년 6월부터 헤이허와 지린성 창링을 연결하는 728km의 파이프라인 공사를 시작해 올해 7월 개통했다. 그리고 내년 말 창링에서 허베이성 융칭까지 1100km, 2024년 융칭에서 상하이까지 1543km 파이프라인을 각각 연결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중국에 연 5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해 2022년 150억㎥, 2025년 380억㎥로 점차 공급량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옛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최대 에너지 프로젝트인 POS-1 파이프라인은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동맹을 상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세계 에너지 질서를 변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강제병합하면서 미국과 EU의 강력한 제재를 받아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제재 조치를 예상하고 시 주석을 설득해 ‘가스동맹’을 맺는 방안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지 2개월 만에 중국과 POS-1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는 그동안 셰일가스를 대량으로 개발해온 미국의 도전에 전전긍긍했다. 실제로 미국은 동유럽국가는 물론 서유럽국가에까지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신 자국의 셰일가스로 만든 LNG(액화천연가스)를 구입할 것을 적극 권유했다. 러시아가 파이프라인을 잠그는 등 천연가스를 지렛대 삼아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을 마뜩잖게 생각해온 유럽국가들은 값이 비싸긴 해도 미국의 LNG를 도입해왔다.


중  ·  러 가스동맹

중국이 러시아산 가스를 운반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왼쪽). 중국석유천연가스
집단공사(CNCP) 기술자들이 가스관을 점검하고 있다. [VCG, China Daily]

중국이 러시아산 가스를 운반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왼쪽). 중국석유천연가스 집단공사(CNCP) 기술자들이 가스관을 점검하고 있다. [VCG, China Daily]

이 때문에 대(對)유럽 수출이 줄어든 러시아는 세계 최대 가스시장인 중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PNG(파이프라인 천연가스) 수출’ 전략을 추진했다. 러시아는 자국 PNG가 미국 LNG보다 저렴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미국 LNG는 셰일층에서 가스를 뽑아내는 비용과 태평양을 횡단하는 물류비용을 합쳐 1MMBtu(가스 측정 단위 · 1000ft³)당 8달러 수준으로 팔아야만 수익성이 있다. 러시아 PNG는 파이프라인 건설에 상당한 자금이 들지만 일단 완공되면 물류비용이 거의 없다. 게다가 시베리아산 가스는 가장 양질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내년 세계 최대 가스 수입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소득이 늘어나면서 청정연료인 가스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은 2024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가스 수요의 4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1225억㎥ 규모의 가스를 수입했으며, 대외의존도가 45%에 달한다. 따라서 중국으로선 안정적인 가스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 지도부는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미국의 LNG를 수입하기보다 러시아 PNG 도입을 택했다. 중국으로선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확대할 경우 자칫하면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는 만큼, 러시아 천연가스의 도입을 늘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와 ‘가스동맹’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는 것이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관세폭탄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 LNG를 전혀 수입하지 않았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 러시아 PNG가 중국에 대량 공급되는 만큼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잃은 셈이 됐다. 

중국이 러시아 POS-1을 통해 도입하는 가스는 연간 소비량의 13%, 연간 수입량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중국과 러시아의 ‘가스동맹’이 셰일 혁명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에서 LNG 수출을 확대해오던 미국의 전략에 급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양국은 이와 함께 가스 대금 결제통화에서 달러를 배제하고 위안화만 쓸 계획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오가는 에너지시장에서 달러화의 영향력도 약화하겠다는 의도다.


북극해 통과하는 ‘빙상 실크로드’

[GASEX]

[GASEX]

중국은 러시아와 POS-2 파이프라인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양국은 시베리아 알타이지역에서 몽골과 신장웨이우얼자치구를 지나 중국 서부지역으로 연결되는 POS-2 파이프라인 건설을 검토 중이다. 중국은 또 러시아의 ‘야말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야말 프로젝트는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북서부에 있는 야말반도의 천연가스전에서 가스를 추출해 LNG로 만든 뒤 쇄빙 LNG 운반선으로 수출하는 사업을 말한다. 

러시아는 야말반도의 가스전에서 연간 1650만t의 LNG를 생산하고 이를 아시아 등에 수출할 계획이다.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기업 노바텍(지분 50.1%), 프랑스 토탈(20.0%),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20.0%), 중국 국영 투자 기금 ‘실크로드 펀드’(9.9%)가 각각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연간 400만t의 LNG를 도입할 예정이다. 

중국이 야말반도의 LNG를 들여오는 해상 루트는 북극해를 통과하는 북동항로다. 이 루트는 야말반도에서 러시아 연안 해역을 따라 베링해협을 통과한 뒤 동해를 거쳐 다롄항으로 운송되는 항로다. 이 항로를 이용하면 LNG를 도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6일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이 앞으로 LNG 운반을 명분으로 북극해에도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북극권 개발을 위해 ‘빙상 실크로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가스동맹’은 앞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질서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양국 모두 미국의 제재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장하면서 세계 정치·무역·에너지시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국 교역액은 지난해 870억 달러(약 101조4100억 원)에서 올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하고 가스 수출입 확대로 2024년까지 2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에리카 다운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대안이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가스동맹’은 자칫하면 미국에게는 악몽이 될 수도 있다.






주간동아 2019.12.20 1219호 (p58~61)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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