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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하늘과 산을 모두 푸르다고 할까

‘빨강’에 비하면 새파랗게 젊은 ‘파랑’의 역사

우리는 왜 하늘과 산을 모두 푸르다고 할까

경기도 일산 고봉산에서 서울 북한산을 찍은 사진. 가까운 고봉산은 녹색으로, 멀리 있는 북한산은 파랗게 보인다. [사진 제공 · 장인용]

경기도 일산 고봉산에서 서울 북한산을 찍은 사진. 가까운 고봉산은 녹색으로, 멀리 있는 북한산은 파랗게 보인다. [사진 제공 · 장인용]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애국가 3절의 저 가사처럼 가을 하늘은 한국의 자랑이다. 88 서울올림픽 전후로 한국을 찾은 외국 유명 인사에게 뭐가 인상적이냐고 물으면 쾌청한 가을 하늘을 꼽는 이가 많았다. 나중에 해외여행 자유화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다녀온 한국인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공해에 찌든 한국 하늘이 그들의 말처럼 꼭 맑고 푸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데 ‘푸르다’는 파란 하늘색을 말하는 걸까, 초록빛 산색을 말하는 걸까. 그 어원이 ‘푸성귀’ 할 때 그 ‘푸’와 마찬가지로 ‘풀’에서 나온 것이기에 기본적으로 초록색을 뜻해야 한다. 푸른 신호등이 초록색을 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초록색뿐 아니라 하늘색이나 바다색에도 해당한다고 나온다. 

그렇지만 초가을 풍경을 둘러보라. 하늘은 파랗고 산은 초록빛이다. 둘은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둘을 하나의 색으로 묶어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일까. 

김양진 경희대 국문과 교수에 따르면 '푸르하다'는 고어에서 15, 16세기경 ‘파라하다’란 표현이 분화돼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15세기 전후까지 우리 선조는 초록과 파랑을 뚜렷이 구별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실제 고려청자의 빛깔을 보면 초록색 내지 옅은 푸른색이 혼재해 있다. 그러다 고려 말, 조선 초 청화백자가 등장하면서 뚜렷한 파란색을 띠게 된다.




초록과 파랑을 아우르는 ‘푸르다’

16세기 명나라 화가 문징명의  청록산수화 ‘만학쟁류도’. [사진 제공 · 난징박물관]

16세기 명나라 화가 문징명의 청록산수화 ‘만학쟁류도’. [사진 제공 · 난징박물관]

이는 동아시아의 공통된 전통이다. 한자문화권에서 푸를 청(靑)은 초록과 파랑의 뜻을 함께 지닌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청은 동방색인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파랑이 아니라 초록과 파랑이 혼재된 것이다. 중국문화학자 장인용 씨에 따르면 현대 중국어에서도 파랑은 남(藍)으로 표현하고, 청(靑)은 초록과 파랑, 즉 우리말의 ‘푸르다’에 해당하는 경우에 쓰인다. 

“중국인은 예부터 초록색을 생명의 색이라고 해 숭상하고 좋아했어요. 중국인이 옥을 좋아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파랑보다 초록이 먼저였던 거죠. 그러다 파랑이 점점 독립돼 나온 것으로 봐야 합니다. 당나라 때 청록산수(靑綠山水)라는 채색산수화가 등장해요. 거기서 가까이 있는 산은 녹색이고 멀리 있는 산은 청색입니다. 그게 공기의 투과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지만, 그때는 그저 거리에 따른 색의 변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에선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초록과 파랑을 구별했다. 인도와 중국에선 쪽이나 대청(大靑)이라는 식물을 말려 파란색 염료를 추출하는 염색문화가 고대부터 발전했다.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는 표현은 중국 전국시대에 편찬된 ‘순자’에 등장한다. 또 한나라 때 편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기’에도 ‘청색은 동방정색이요, 녹색은 동방간색’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고, 색채연구가 문훈배 청운대 교수는 설명한다. 

서양으로 건너가면 파랑은 1000년 무렵까지 명함도 못 내밀었다. 프랑스 역사학자 미셸 파스투로가 쓴 ‘파랑의 역사’를 보면 고대 그리스어(헬라어)와 라틴어에는 파랗다, 내지 푸르다에 해당하는 형용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리스·로마 고대 문헌에서 하늘이나 바다의 색은 회색, 황금색, 검은색으로 묘사됐다. 

그렇다고 파란색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실제로 지금 남아 있는 벽화나 모자이크화에서도 파란색이 발견된다. 다만 파란색 자체를 중요한 색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고대 그리스·로마인에게 파란색은 켈트족이나 게르만족의 눈빛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 야만적이고 추잡한 색이었다.


그리스  ·  로마시대 파랑은 없었다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청색 의상 차림의 성모 마리아. [사진 제공 · 민음사]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청색 의상 차림의 성모 마리아. [사진 제공 · 민음사]

로렌초 디 크레디의 ‘수태고지’(1495~1500년 무렵). 성모마리아와 천사 가브리엘이 모두 청색 의상을 입고 있다.  [사진 제공 · 민음사]

로렌초 디 크레디의 ‘수태고지’(1495~1500년 무렵). 성모마리아와 천사 가브리엘이 모두 청색 의상을 입고 있다. [사진 제공 · 민음사]

그들에게 중요한 색은 흰색, 검은색, 붉은색이었다. 초록색과 보라색은 그 중간색으로 어느 정도 대접을 받았지만 파란색은 기껏해야 검은색 상복을 대신하는 색 내지는 노예들의 작업복으로 천시됐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해 무지개 빛깔을 분석한 수많은 학자의 문헌에도 파란색은 등장하지 않는다. 서양에서 11세기까지 무지개는 최소 3개에서 최대 6개의 색깔로 분석됐는데, 거기에 파랑의 자리는 아예 빠져 있다. 

이런 상황은 인도에서 출발해 아랍을 거쳐 수입된, ‘인디고블루’로 불리는 선명한 파란색 염색문화를 접하게 되는 1000년 무렵을 전후해 변한다. 특히 12세기 중반 생드니 성당과 사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성모 마리아의 상복을 검은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바꾼 것이 기폭제가 됐다. 12세기말 성모 마리아를 수호 여신으로 섬기던 프랑스 왕실이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청색 방패 위에 순결한 성모를 상징하는 백합꽃이 흩뿌려진 문양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해 영국을 필두로 유럽 왕실과 기사들이 앞다퉈 파란색 문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유럽 왕실과 귀족가문의 문장에서 청색의 사용 빈도는 1200년 무렵 5%에서 1300년 무렵 25%, 1400년 무렵 30%로 증가했다. 그것과 함께 빨강 또는 자주색이 황제나 교황의 색으로 축소된 반면, 청색은 왕의 색으로 굳어지게 됐다. 아서왕의 전설을 그린 그림 속에서 아서왕이 청색 옷을 입게 된 것도 이즈음부터다. 

이와 더불어 13세기 중반부터 파란색 옷감과 의상이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게 된다. 특히 대청을 집중 재배하기 시작한 프랑스와 이탈리아 북부, 영국, 스페인에서 시작된 파란색의 유행은 그 전까지 최고 권위를 누리던 붉은색을 완전히 압도하게 됐다. 


장 푸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에게 충성 서약을 올리는 장면’(1460년 무렵). 프랑스 왕이 청색 바탕에 백학 무늬 의상을 입은 반면, 무릎을 꿇은 영국왕은 붉은 의상을 입고 있다. [사진 제공 · 민음사]

장 푸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에게 충성 서약을 올리는 장면’(1460년 무렵). 프랑스 왕이 청색 바탕에 백학 무늬 의상을 입은 반면, 무릎을 꿇은 영국왕은 붉은 의상을 입고 있다. [사진 제공 · 민음사]

파란색 유행의 중심에는 프랑스가 있었다. 이는 중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1564년 창설된 프랑스 왕실근위대는 줄곧 왕실 문양의 상징색인 청색의 군복을 입었다. 그러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민중의 편에 서서 혁명군의 선봉이 된다. 그 영향으로 프랑스 혁명군과 민병대는 청색 군복을 착용하기 시작했고, 1790년 6월 국가 상징색으로서 청색이 선포된다. ‘파랑이들’쯤 되는 프랑스어 ‘레 블뢰(les Bleu)’가 프랑스혁명기 공화국군을 지칭하다 오늘날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을 가리키게 된 것도 이와 같은 전통의 산물이다. 

이런 변화는 비단 파란색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유럽에서 아랍을 통해 오렌지가 수입되기 전까지는 붉은색과 오렌지색을 구별하지 못했다. 영국만 봐도 오렌지가 수입되기 시작한 9세기 전까지 오늘날 오렌지빛깔에 해당하는 주홍을 모두 빨강(red)으로 표기했다. 중세 영국의 시문에서 오렌지빛깔의 꾀꼬리(oriole) 깃털을 붉다고 표현한 이유도 거기 있었다. 그러다 지중해 남부에서 재배되는 오렌지가 집결된 프랑스 남부 오랑주 지역을 통해 오렌지가 대거 유입되면서 빨강과 주홍에 대한 선명한 구별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양 정물화에서 빨간 사과와 주홍빛 오렌지를 비교하는 정물화가 많이 등장하는 전통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청어람의 해석

루카스 크라나흐 공방의 ‘청기사’(1535년 무렵). [사진 제공 · 민음사]

루카스 크라나흐 공방의 ‘청기사’(1535년 무렵). [사진 제공 · 민음사]

그런 유럽과 비교하면 동아시아에선 일찍부터 파랑의 중요성이 부각됐다고 할 수 있다. 파랑과 초록을 동일색의 변용으로 묶어서 보기는 했지만 ‘생명의 색’이자 고귀한 ‘하늘의 색’으로 귀히 여겼다. 김양진 교수에 따르면 ‘희다’와 ‘검다’에 해당하는 무채색을 제외하고 유채색 가운데 순우리말 표현은 붉다(빨강), 푸르다(파랑), 누렇다(노랑) 등 3가지만 있다. 그 밖의 유채색 표기는 한자어나 영어 표기를 수용한 외래어다. 반면 11세기 전까지 유럽의 삼원색이 하양, 검정, 빨강이었음을 감안하면 한국의 청색 선호 전통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청어람’이라는 표현 속에서 청(靑)과 남(藍)을 어떻게 구별하느냐의 문제다. 그동안 우리는 청을 파랑, 남을 그보다 진한 남색으로 해석해왔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청이 그린이 도는 블루라면 남은 순수한 블루에 가깝다. 이에 대해선 2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 하나로, 남색은 현실의 색이고 청색은 이데아의 색이라는 해석이다. 고대부터 중국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생명의 색’이 청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불순물이 섞인 색이 남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남을 쪽이라는 식물에서 청색 염료를 추출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탁한 색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푸른 염료를 추출하는 중간 단계에서 쪽은 청록색(탁한 청색)을 띤다. 이를 장기간 건조시키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인디칸이라는 물질이 산소와 만나 진청색(맑은 청색)을 띠게 된다. 따라서 남은 쪽에서 처음 추출된 탁한 청색, 청은 최종 결과물로 추출된 맑은 청색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간동아 2019.10.18 1210호 (p4~6)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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