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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형의 도하일기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라마단’ 5월 6일 시작…한 달 동안 낮엔 금욕, 밤엔 잔치

  • 동아일보 기자 turtle@donga.com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AP=뉴시스, 도하=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AP=뉴시스, 도하=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고요한 낮, 화려한 밤의 시간이 시작됐다. 이슬람교의 성월(聖月) ‘라마단’이 시작된 것이다. 라마단은 아랍어로 ‘더운 달’이라는 뜻으로, 이슬람력에선 9번째 달을 의미한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신으로부터 ‘꾸란(이슬람교 경전)’의 계시를 받은 신성한 시간으로 여겨진다. 1년이 354일 또는 355일인 이슬람력을 기준으로 날짜를 계산하기 때문에 매년 약 10일씩 앞당겨진다. 

라마단을 상징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절제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철저히 금식(물 마시기와 흡연도 안 됨)과 금욕을 해야 한다. 라마단 기간의 금식(사움)은 이슬람 신앙의 다섯 기둥으로 불리는 의무사항 가운데 하나인 만큼 무슬림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말이나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질투, 시기, 음란한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다툼과 싸움도 멈춰야 한다. 정부 부처와 회사의 업무시간도 대략 오전 8~9시부터 오후 1~2시까지로 짧아진다.

그러나 해가 지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물론 해가 진 뒤에도 말, 행동, 생각을 경건하게 해야 한다는 건 변함없다. 다만, 음식을 자유롭게 즐기고 가족이나 친지 간 교류가 활발해지는 시끌벅적한 시간이 된다. 한 달 내내 일종의 ‘저녁 잔치’가 열리는 것이다. 

전통시장, 공원에서는 전구와 등불이 반짝인다. 초승달(이슬람교 상징이자 라마단의 시작을 알리는 지표) 모양의 조형물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커다란 천막 아래에는 코프타(다진 고기에 향신료를 넣은 뒤 둥글게 빚어 구운 요리), 샤와르마(구운 고기와 채소를 다양한 소스와 함께 납작한 아랍빵에 싸서 먹는 요리), 캅사(쌀, 고기, 견과류, 채소 등을 함께 볶은 요리) 같은 전통요리를 파는 식당이 가득 들어서 있다. 낮에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밤에는 새벽 1~2시까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라마단으로 달라지는 일상

소셜미디어상의 라마단 인사 메시지. 카림은 ‘관대한’이라는 뜻이다(왼쪽). 도하 쉐라톤호텔의 라마단 장식(가운데)과 시아파 성지인 이라크 나자프 이맘 알리 사원의 라마단 야경. [AP=뉴시스]

소셜미디어상의 라마단 인사 메시지. 카림은 ‘관대한’이라는 뜻이다(왼쪽). 도하 쉐라톤호텔의 라마단 장식(가운데)과 시아파 성지인 이라크 나자프 이맘 알리 사원의 라마단 야경. [AP=뉴시스]

올해 라마단은 아라비아 반도에선 5월 6일 시작됐고 6월 4일이나 5일까지 이어진다. 기자는 중동과 아프리카로 출장을 여러 번 다녔다. 한국에 있을 땐 외교부와 중동 나라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이프타르’(Iftar·라마단 기간 중 하루의 단식을 마치고 먹는 첫 식사) 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라마단을 중동, 그것도 이슬람교 발생지인 아라비아 반도에서 경험하는 건 처음이다. 



카타르 도하의 기온은 한낮에는 벌써 섭씨 35~38도에 이른다. 물론 천연가스와 원유가 풍부한 나라답게 냉방시설은 어느 곳을 가도 잘돼 있다. 그러나 강렬한 햇볕과 더운 사막 바람 때문에 낮에는 야외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음식을 안 먹는 건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지만 목마름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요즘 같은 날씨에 갈증을 참는 건 솔직히 좀 힘들다. 그래도 라마단을 지키는 건 무슬림의 의무 아닌가.”(언론학 전공 대학원생) 

“영국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여름에 영국은 해가 밤 9시 넘어 진다. 그것에 비하면 여기(카타르의 최근 일몰시간은 오후 6시~6시 30분)는 아무것도 아니다.”(민간 연구소의 박사급 연구원) 

“현대인은 모두 커피 중독 아닌가.(웃음) 커피를 업무시간 중 못 마신다는 게 좀 힘들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카타르 정부 관계자) 

카타르에서 비(非)무슬림은 라마단 때 금식할 필요가 없다. 공공장소에서 음식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는 것만 자제하면 된다. 카타르 통계청에 따르면 이 나라 전체 인구(약 274만 명) 중 인도(약 25%), 필리핀(약 11%), 스리랑카(약 5%)와 같이 비이슬람권에서 온 근로자의 비율이 40%를 넘는다. 전문직종에는 영미권 계열의 서양인도 많다. 또 카타르는 1990년대 중반부터 중동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서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사실상 사회 전체적으로 금식을 강조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부처와 기업이 몰려 있는 웨스트베이 지역에는 라마단 기간 중 낮에도 음식과 음료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받은 음식점들이 있다. 호텔 식당도 대부분 문을 연다. 그러나 이들 식당도 문을 닫아놓고 불도 끈 채 조용히 영업한다. 일부 식당은 출입문을 닫은 채 ‘Open’(문을 열었다는 뜻) 팻말을 붙여놓기도 한다. 커피숍 중에는 낮에 ‘테이크아웃 판매’만 하는 곳도 있다. 역시 불을 꺼놓았고 종업원도 1~2명만 있어 얼핏 봐선 문을 닫은 것 같다. 평소와 달리 커피를 사면 사람들 눈에 안 보이게 종이봉투에 잔을 넣어준다. 

많은 회사와 학교는 라마단 기간이 되면 커피나 간식을 먹는 휴게실의 문을 닫아놓는다. 또 커피, 차와 같이 냄새가 나는 음료는 아예 치운다. 다만, 생수는 계속 두는 곳이 많다. 비무슬림이거나 무슬림이더라도 건강상 문제 등으로 물을 마셔야 하는 이들을 위해 일종의 ‘운영의 묘’를 발휘하는 것. 

비무슬림이 더 많은 회사에선 물은 자유롭게 마시고, 커피나 차는 휴게실에서 마실 수 있는 분위기다. 유럽계 기업의 한 관계자는 “무슬림 동료와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커피나 간식은 최대한 자제한다”고 말했다.


테러와 갈등으로 얼룩진 라마단

이프타르를 알리는 도하의 대포(위)와 카타르 자선단체가 라마단의 의미를 공유하고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프타르 박스(과일, 음료수, 빵 등 먹을거리가 들어 있는 도시락)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 [더 페닌슐라]

이프타르를 알리는 도하의 대포(위)와 카타르 자선단체가 라마단의 의미를 공유하고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프타르 박스(과일, 음료수, 빵 등 먹을거리가 들어 있는 도시락)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 [더 페닌슐라]

무슬림은 라마단 기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금식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이해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라마단이 끝난 뒤에는 ‘자카트’라고, 자신의 재산 2.5% 이상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쓰는 것도 무슬림의 의무다. 

하지만 최근에는 라마단의 의미가 온전히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기계적으로 금식에만 신경 쓰고, 본연의 취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다. 한 지인은 “해가 떠 있을 때만 굶고, 저녁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게 과연 절제를 강조하는 시기에 어울리는 모습이냐”며 “신이 그런 모습을 본다면 흐뭇해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라마단 때 폭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더 늘어나고, 음식물 쓰레기도 평소보다 증가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수년간 라마단 기간에 이슬람국가(IS)나 탈레반 같은 극단주의 단체의 테러가 자주 발생한 것에 대해서도 평범한 무슬림들은 안타까워한다. 이들 단체는 ‘성스러운 시기인 라마단 때 이교도를 공격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테러를 조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이 주도한 ‘카타르 단교’(2017)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조치’(2018·라마단 시작 하루 전) 같은 외교 갈등도 라마단 기간에 터졌다. 절제, 화해, 평화를 강조하는 라마단 때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다. 

라마단 기간에 가장 흔히 쓰는 인사말은 ‘라마단 카림(Ramadan Kareem)’과 ‘라마단 무바라크(Ramadan Mubarak)’다. 전자는 ‘너그러운(관대한) 라마단’, 후자는 ‘축복의 라마단’이라는 뜻이다. 이 의미를 라마단 때 제대로 되새겼다면 최근 몇 년 사이 세상을 놀라게 한 안타까운 사태들이 터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무슬림들이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9.05.17 1189호 (p52~54)

동아일보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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