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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특별기획 | 민의 왜곡 주범 ARS를 어찌할꼬

60대를 20대로…ARS의 마법

조직적 거짓 대응에 무방비…낮은 응답률 덕에 높은 지지율 효과 누려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60대를 20대로…ARS의 마법

60대를 20대로…ARS의 마법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동아DB

“안 녕 하 십 니 까. 여 기 는 여 론 조 사 전 문 기 관 ○ ○ ○ ○입 니 다.  4 월 에 실 시 되 는 20 대 총 선 과 관 련 하 여 몇 가 지 설 문 조 사 를 실 시 하 고 있 습 니 다.”
낯선 전화번호로 당신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를 들자 경직된 톤의 기계음이 또박또박 흘러나온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응대하는가. 대한민국 주권자이자 유권자인 당신은 ‘한국 정치를 바꿀 소중한 기회’라 생각하고 하던 일을 멈춘 채 성실히(?) 응답하는가. 만약 느닷없이 걸려온 여론조사에 끝까지 답변했다면 당신은 대한민국 5% 안에 드는 모범 응답자라 할 수 있다.



ARS vs 전화면접, 응답률 9배 차

일반적으로 다수의 유권자는 전화기로 걸려오는 자동응답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비록 몇 분에 불과한 길지 않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걸려온 전화에 답하자면 해야 할 일, 하던 일손을 멈추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는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응답률은 전화면접이냐, 자동응답시스템(Automatic Response System·ARS)이냐, 유선전화냐 무선전화(휴대전화)냐, 평일이냐 주말이냐 등 조사 시점과 전화유형, 조사 방식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기계음으로 일방적으로 질문을 쏟아내는 ARS 조사 응답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면접원이 “잠시면 됩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주세요” “이제 거의 다 돼갑니다”라며 상냥하게 양해를 구해가며 응답자의 심기까지 고려해 조사를 실시하는 전화면접 방식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출퇴근하는 직장인 비중이 높은 30대와 40대의 경우 주말에 비해 평일 응답률이 낮은 게 일반적이다.
여론조사 응답률이 조사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대표적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는 2015년 12월 28~30일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사흘 동안 정당 지지율 정례조사를 실시했다. 전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남녀 1634명을 표본으로 조사했는데, 조사 방법을 조금씩 달리했다. 유선 ARS 35%, 무선 ARS 35%, 유선전화면접 15%, 무선전화면접 15%를 각각 조사 결과에 반영했다. 응답률은 천차만별이었다. 무선 ARS가 3.8%로 가장 낮았고, 유선 ARS가 5.5%였다. 무선전화면접 응답률은 34%에 달했다. 유선전화면접은 26.1%였다(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사위원회).
응답률이 현저히 낮은 무선 ARS 응답률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2만5968명에게 무선전화로 자동응답전화를 걸어 그 가운데 3.8%인 567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전화는 받았지만 응답을 거절하거나 응답을 완료하지 않고 도중에 전화를 끊은 사람이 조사 대상자의 54%인 1만4187명이었고, 통화 중이거나 부재중으로 전화연결이 되지 않은 사람이 3319명이었다. 7895명은 없는 번호이거나 팩스, 또는 지역별 또는 연령별 할당을 초과한 사람이 답한 비적격 사례였다.



여론조사 행동요령 지침서

60대를 20대로…ARS의 마법

새누리당 대구 동구을 이재만 예비후보 측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여론조사 행동요령 지침서’가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 뉴스1

복잡해 보이지만 이 같은 ARS 조사 현황을 역으로 이용하면 얼마든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즉 적극적으로 ARS에 응답해줄 응답 대기자를 많이 확보하면 할수록 낮은 응답률 덕에 높은 지지율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 지지율 조사처럼 전국에 걸쳐 실시되는 ARS 조사의 경우 누구에게 전화가 걸려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조작’ 가능성이 거의 없다. 문제는 조사 대상과 범위가 협소하거나 제한적이고, 거기에 조사 시점까지 예측이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조직적으로 여론조사에 참여해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12년 총선 때 통합진보당 몇몇 후보는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한 ARS 여론조사를 위해 당원과 지인 등을 동원해 휴면 유선전화를 대거 임대하고, 이를 다시 휴대전화로 착신전환해 특정 후보 지지에 나섰다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호남 한 지역에서는 수천 회선에 달하는 휴면 전화번호를 임대한 뒤 이를 다시 30여 대의 휴대전화로 착신전환해 특정 후보의 지지율을 높인 일도 있었다. 당시 여론조사 표본이 700명이었는데, 이 같은 방법으로 150여 건의 여론조사 표본으로 선정됐다. 산술적으로 전화회선 임대와 착신전환으로 21%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시작한 셈이다. 결국 유선전화 임대→휴대전화로 착신전환→표본 선정 등의 방법을 동원한 후보자가 무난히 경선에서 승리했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19대 총선 때 유선전화 임대를 통한 여론조작 사례가 여러 건 적발되면서 2014년 지방선거 이후에는 유선전화 대량 구매와 착신전환을 통한 여론조작 시도는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올해 총선을 앞두고 변종, 신종 여론조작 시도가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선전화를 휴대전화로 착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응답률이 낮은 20대와 30대 등으로 연령대를 속여 응답토록 유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
2015년 12월 29일 뉴스1은 새누리당 대구 동구을 이재만 예비후보 측에서 생산한 것으로 보이는 A4용지 1장짜리 ‘여론조사 행동요령 지침서’를 공개했다. 지침서에는 ‘지금은 여론조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제목으로 12항의 여론조사 대응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여론조사 응답 버튼을 누를 때 연령을 물어보면 20, 30대를 꼭 선택하시라’와 ‘상대적으로 20, 30대는 조사 대상이 적기 때문에 우리가 20, 30대를 선택하면 모두 다 반영된다’는 지침이 담겨 있다.
만약 실제 여론조사 때 이 같은 여론조사 행동요령을 몇 사람이라도 이행했다면 조사 결과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12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대구 동구을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와 30대 조사 비율은 각각 4.1%와 5.3%에 불과했다. 목표치의 3분의 1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의 20, 30대 응답자가 가중값 배율에 따라 3.88배(20대), 3.45배(30대) 반영됐다. 만약 문건에 나온 지침대로 어느 60대 이상 응답자가 거짓으로 20대라고 응답했다면, 그 응답자의 응답은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최소 3.88명이 응답한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현행 ARS로는 20대 또는 30대로 가장 한 60대를 찾아낼, 이른바 거짓 응답자를 가려낼 방법이 없다. 공천 등에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려면 먼저 여론조작을 근절할 최소한의 보완책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주간동아 2016.01.06 1020호 (p10~11)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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