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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가족이라는 병 “차라리 같이 죽자”

일가족 동반 자살, 범죄로 인식해야…돈 노린 존속살인 늘어난 건 경제난 탓

가족이라는 병 “차라리 같이 죽자”

가족이라는 병 “차라리 같이 죽자”
10월 22일 오후 7시 20분쯤 경기 용인 수지구의 한 아파트에서 정모(45) 씨와 아내 박모 씨,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정씨의 자녀가 학교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도 인기척이 없다”는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소방관이 집 안 2층 다락방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숨진 일가족을 발견했다. 다락방 4곳에는 타다 만 번개탄이 남아 있었다. 사건 현장에는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나 흉기, 혈흔 등이 없었고 시신에서도 특별한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부부가 딸들을 먼저 숨지게 하고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했다. 사건을 수사한 경기 용인서부경찰서 관계자는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부부가 10월 20일 오후 8시 30분쯤 귀가한 이후 외출한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10월 23일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일가족의 사망 원인은 일산화탄소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1차 소견을 받았다. 경찰은 “2차 부검 결과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으면 사건을 종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망한 부부는 사기 등의 혐의로 피소된 상태였다. 일가족이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인 10월 22일 오전 이모(54) 씨 등 4명은 정씨 부부에게 200억여 원을 투자했다 돌려받지 못했다며 용인서부경찰서에 부부를 사기와 유사수신 혐의로 고소한 상태였다. 경찰은 투자자 4명을 10월 24일 경찰서로 불러 1차 조사를 마쳤으나, 피고소인이 사망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편안하게 죽여주겠다”

‘일가족 사망’ 또는 ‘일가족 동반 자살’로 세간에 알려진 이 사건은 ‘사망’이나 ‘동반 자살’이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봐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존속살해 사건 외에도 이처럼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비속살해 사건 또한 꾸준히 늘고 있다.



10월 7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 사건도 아내의 부채 문제로 고민하던 가장 이모(58) 씨가 암 투병 중이던 아내 김모(49) 씨와 고등학생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숨진 일가족 3명의 체내에서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씨가 강서구 한 의원에서 두 차례 처방전을 받아 졸피뎀을 사들였다는 점, 범행 직전 “음료수에 수면제를 탔으니 이걸 먹으면 편안하게 죽여주겠다”는 이씨와 아내와의 대화 녹음 파일과 유서 등을 토대로 경찰은 사건을 이씨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가족이라는 병 “차라리 같이 죽자”

10월 7일 서울 강서구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 사건은 가장이 아내의 부채 문제로 고민하다 가족에게 수면제를 먹여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국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3분의 1은 가족관계에서 발생한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경찰서에서 살인죄로 입건된 447명 가운데 29.8%(133명)가 가족(동거 친족·기타 친족)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살인죄로 입건된 377명 가운데 28.4%(107명)가 가족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것에 비해 1.4% 높아진 수치다. 경찰청에서 존속살해 통계를 작성한 건 1995년부터인데, 친족 살해 사건(미수 포함)은 매년 200건 전후였으나 외환위기를 겪던 97년부터 99년까지 218건에서 279건, 300건으로 늘어났다. 신용카드 부실 사태로 카드 대란이 있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265건에서 291건, 299건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228건에서 261건, 280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가족은 무척이나 가깝고 서로를 잘 아는 존재이지만, 그렇기에 제1의 범행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존속살해 범죄가 늘어난 건 혼자 힘으로 살기 어려워진 사회적 환경 외에도 가족을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이기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보험금이나 유산을 노린 존속살해 사건이 일시적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서구사회와 비교했을 때 존속살인 사건의 비율이 높은데, 성인이 되면 아이가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서구사회와 달리 자식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가족문화이다 보니 부모 목숨으로라도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패륜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강압적인 부모에게 반항하다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존속살인이 많았다면 요즘은 사전에 계획하고 독극물을 이용하는 등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존속살해가 늘어난 건 살기 어려워진 세태 반영 외에도 부모를 경제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보는 이기적 시각과 가족 간 화목함이 급격히 줄어든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가족이 사회적 집단의 가장 기초적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수서경찰서 강력팀장을 지낸 백기종 경찰대 외래교수는 “가장 쉽게 접하고 서로를 속속들이 다 아는 게 가족이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면 가장 쉬운 범행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핵가족화되고 단독가구가 늘면서 부모-자식 간 괴리가 생겼고, 이 과정에서 가족을 ‘내가 살아남기 위한 희생양’으로 여기는 심리가 강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공식통계에도 안 잡히는 비속살해

비속살해 범죄에는 경제적 요인 외에도 부모가 자식을 독립적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영향을 미친다. 이 교수는 “중산층으로 살다 추락해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아이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와 미혼모 또는 육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아이를 죽이는 경우가 있는데, 후자는 산후우울증과도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올해 초 발생한 서울 서초동 세 모녀 살인 사건을 봐도 15억 원 상당의 아파트가 있고, 부인 통장에 잔고 3억 원이 있었음에도 강남을 떠나면 비참해질 거라는 심리나, 가장이 쓰러졌으니 가족 전체가 불행해질 거라는 좌절과 절망감이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말했다.

손 원장은 “우리 사회가 성장 사회가 아닌 침체 혹은 고착화된 사회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부모가 자녀의 독립성과 미래를 의심하고 앞날을 절망적으로 예측하다 보니 ‘나 없이도 잘 살아’가 아니라 ‘내가 없으면 너는 분명히 살기 힘들어질 테니 차라리 여기서 끝내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자녀 인권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만 중요하게 여기는 이기주의의 발로이자 극도의 비관주의이며, 자식을 자기 소유물이나 분신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살인죄를 저지른 범인은 형법 제250조에 따라 사형이나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을 받는다. 존속살인은 최저형량이 ‘7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자식을 죽였을 때는 가중처벌 규정이 없다. 영아살해는 최고형량이 징역 10년으로 일반 살인보다 형량이 가벼운 편이고, 최저형량은 없다. 경찰청에서는 존속살해 통계는 따로 내지만 비속살해는 영아살해를 제외하면 공식통계를 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존속살해는 가중 요인이지만 비속살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이 교수는 “존속살해가 비속살해보다 엄중히 다스려지는 건 결국 ‘가장’을 죽였기 때문이다. 이는 부부 간 살인사건에도 적용되는데, 아내가 남편을 죽인 건 살인으로 판결한 반면 남편이 아내를 죽인 건 살인이 아닌 치사로 판결하는 등 양형 판단에 가부장적 사고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판례가 다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정성국 박사는 2006년부터 2013년 3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분석하고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논문을 냈다. 논문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발생한 존속살해 건수는 총 381건으로 해마다 50~60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살해 동기는 가정불화가 188건(49.3%)으로 가장 많았으며 정신질환 130건(34.1%), 경제 문제 58건(15.2%)이었다. 피해자 연령은 60대 이상이 222명으로 전체의 65.7%였고 가해자 연령은 20, 30대가 199명으로 전체의 58.5%였다.

동전의 양면 같은 존속·비속살해

가족이라는 병 “차라리 같이 죽자”

1월 7일 서울 서초경찰서는 처지를 비관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강모 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날 검거된 강씨의 모습(왼쪽).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비속살해 사건은 같은 기간 총 230건으로 매년 30~40건가량 발생했는데, 살해 동기는 가정불화가 102건(44.6%)으로 가장 많았고 경제 문제 62건(27.0%), 정신질환 55건(23.9%) 순이었다. 살해 후 가해자인 부모가 자살한 경우는 102건(44.4%)에 달했다. 가해자 연령은 30, 40대가 77%로 대부분이었고, 피해자 연령은 9세 이하가 123명(59.1%)으로 저항이 어려운 어린아이가 많이 살해됐다. 현재 정 박사는 범죄 예방을 위해 이와 같은 사건들의 빅데이터를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존속살해는 자녀살해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습니다. 범인들을 면담해보니 어릴 적 학대받거나 불우했던 아이가 비속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살아남았을 때 그렇게 쌓인 분노를 풀며 존속살해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정불화, 경제적 원인도 있지만 해마다 줄지 않는 존속살해의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정신질환인데, 관련 내용을 진술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로 가정 내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가족범죄지만, 밖으로 나오면 무동기범죄로 이어집니다. 사회적 격리와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데, 국내의 경우 치료 프로그램이 소극적이고 범죄자 처벌 시 치료 감호와 징역을 병행하는 범위도 굉장히 좁아 경찰 외 유관기관들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늘어나는 가족범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단기적이거나 쉬운 해법은 없다.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부모의 폭력, 외도 등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며 자란 아이는 차곡차곡 쌓아둔 분노를 한순간에 터뜨리게 된다. 어릴 때부터 경쟁해야 하는 압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는 사회를 상대로 싸울 수 없으니 내재한 분노를 집에서 터뜨리는 것이다. 건강한 상태라면 이성이 감정을 지배하지만, 분노에 휩싸인 상태에서는 감정의 폭군이 이성을 지배해 통제 불능이 된다”며 “가장이 실패했을 때 아이나 아내를 대상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보완하고 미성년자 후견제도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5.11.09 1012호 (p43~45)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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