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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LH 땅 장사에 무너진 서민의 삶

강제수용 후 비싸게 팔아…404억 원 이득 남긴 사기 분양까지 곳곳에서 잡음

LH 땅 장사에 무너진 서민의 삶

LH 땅 장사에 무너진 서민의 삶

경기 광명 노온사동 일대. 논밭이 대부분인 이곳은 원래 보금자리지구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공주택 부지의 민간 매각을 당장 중단하십시오.”(9월 11일 국정감사)

LH가 토지 매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상희 의원은 9월 11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LH의 사업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의원은 “2015년 LH의 공공택지 2만5000가구가 민간건설사에 매각될 예정이다. 대형건설사들은 많게는 1조 원의 개발 이익을 취할 테고, 이는 서민·저소득층이 저렴하게 공공주택을 분양받거나 저렴한 임대료로 장기간 살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과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LH의 미착공 공공주택 가운데 올해 민간기업에 매각 예정인 지구는 경기 시흥 장현지구와 화성 동탄지구, 인천 가정지구, 대구 연경지구 등 총 31개 블록에 달한다.

“보상금 5000만 원으론 갈 곳 없어”

LH가 이번 국정감사에서 특히 비판받은 이유는 토지 매각 사업이 ‘공공성 강화’라는 목적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LH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공공택지를 강제수용해왔다. 해당 토지에 살고 있던 거주자들은 LH의 ‘공익적 사업’을 위해 주거권, 경작권 등을 포기하고 다른 동네로 이주해야 했다. 즉 공공택지는 원거주자들의 희생으로 비워진 땅이다. 그럼에도 LH는 ‘경제성’을 이유로 공공주택 개발을 포기하고, 일부 택지를 민간건설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LH의 ‘땅 장사’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2014년 10월 착공해 2019년 9월 완공 예정인 경북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도 LH가 서민들의 토지를 싸게 구매해 차익을 남긴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는 총 611만9465㎡ 면적에 7360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사업으로 철강, 에너지 등의 사업장과 공공시설이 들어선다. LH는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내 전답과 임야를 개발한 업체 2곳에 전체 공사비의 30%를 약 7만㎡ 토지로 지급했다. 이 토지는 LH가 주민들로부터 3.3㎡당 1만7000~7만 원에 사들인 땅이다. 업체들은 이 토지를 3.3㎡당 13만8000원에 받아 공사비로 처리했다. 이를 공사비로 환산하면 320억 원에 달한다. LH는 주민들의 토지를 싸게 매입해 공사대금 200억 원의 수익을 남겼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기존에 살던 주민들은 재산 규모에 따라 보상금을 차등 지급받고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보상금이 적은 영세민 30여 가구는 여전히 단지 내에 남아 있다. 김모(60) 씨도 그중 한 명이다.

“돈 없는 사람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평생을 여기서 살았고 오갈 데 없어 아직 못 떠났지만 매일 불안합니다. 공사하는 소리 쾅쾅 나지, 집은 흔들리지, 그동안 해온 농사도 못 짓지…. 동네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상황이) 말이 아닙니다. 단지에 남은 영세민들은 5000만~7000만 원 보상금을 받았는데, 그 돈으로는 이사 갈 집을 구하기도 힘들어요.”

단지에 남은 이모(63) 씨는 “국가가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려면 최소한의 생활권은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억울해했다.

이씨는 “원주민을 쫓아내려면 이주할 곳을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LH는 무조건 국책 사업을 이유로 재빨리 보상금을 정해버리고 우리에게 나가라 했다. 촌사람들 형편이 그렇다. 힘도 없고 힘써줄 사람도 없고. 시골에 사는 노인들뿐이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 30여 가구는 각자 보상금을 모아 공동으로 이주할 작은 택지를 구매했다. 아직 포항 남구청으로부터 택지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해 공사 현장의 분진과 소음을 견디며 지내고 있다.

토지개발 취소에 자살까지

LH 땅 장사에 무너진 서민의 삶

2010년 약 17km²(525만 평) 규모의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됐지만 2015년 4월 30일 개발 계획이 취소된 경기 광명·시흥지구의 토지이용계획도.



경기 광명·시흥지구 주민들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9월 23일 경기 광명 노온사동을 찾았다. 시내인 광명사거리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걸리는 농촌마을이다. 농작물 수확으로 한창 바쁠 때임에도 이따금 보이는 주민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이곳은 정부가 보금자리지구 개발을 약속한 땅이었지만 최근 그 계획이 전면 취소됐다. 대상 지역은 광명 광명동, 옥길동, 노온사동, 가학동과 시흥 과림동, 무지내동, 논곡동, 목감동 등지 약 17km2(525만 평)이다. 2010년 국토교통부는 “2018년까지 광명·시흥지구에 24조 원을 투자해 9만4000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개발지역을 분당급 신도시로 가꾸겠다는 화려한 공약이었다. 하지만 주택시장이 냉각되고 LH가 142조 원 빚더미(2013년 기준)에 올라앉으면서 개발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4월 30일 보금자리지구 지정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완전 철회됐다. 정부의 약속을 믿었던 주민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주민들은 부랴부랴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광명 광명로 광명농협 학온지점 앞에는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에 ‘광명지구 제3차 보금자리주택 주민대책 추진위원회’라는 낡은 간판이 걸려 있었다. 사무국장인 설동근(58) 씨의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다.

“5년 동안 재산권 행사도 못 한 땅이에요. 그래도 개발될 줄 알고 꾹 참았는데 너무 절망스럽죠. 이곳 주민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에요. LH의 약속만 믿고 1억~2억 원씩 대출받아 토지를 구매했다 대출금과 이자를 못 갚아서 곤경에 처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7월에는 주민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도 퍼졌다. 개발 계획이 취소되자 생활고를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택했다는 것이다. 설씨는 “둘 다 30, 40대 젊은 사람이었다는데 안됐다”며 혀를 찼다.

설씨에 따르면 보금자리지구 지정이 취소된 취락지구는 정부가 다른 방식의 개발을 약속했고 11월 밑그림이 나올 전망이다. 하지만 이 계획에 주민들이 동의할지 알 수 없을 만큼 정부 계획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해 있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빨리 보상해달라는 거예요. 나이 든 주민이 많아서 노후대책으로 돈을 투자해 낭패를 본 사람이 엄청 많아요. 이명박 정부 때 보금자리지구를 마구잡이로 지정한 것부터 잘못이었어요. LH의 재정 관리가 방만해지니까 부채 절감에 세금만 쏟아붓고 주민들에겐 아무런 보상도 돌아오지 않은 거죠. 정부 공약만 믿었던 우리는 정말 속은 기분이고, 너무 힘듭니다.”

LH의 ‘사기 분양’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도 있다. 강원 춘천 석사동 휴먼타운(옛 퇴계주공 5단지) 아파트의 경우다. LH는 1995년 석사동 일대 토지 약 6만6000㎡를 매입해 아파트단지를 조성했다. 하지만 LH는 원래 토지 소유주인 A씨와 보상액이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2007년 아파트를 분양했다. 당시 LH는 해당 아파트 일부 지분의 불법점유를 이유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이 제기된 상태였지만 입주민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A씨는 LH와 수년째 보상액을 합의하지 못하자 2013년 아파트 입주민들을 상대로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을 제기했다. 김종수(57) 휴먼타운 비상대책위원장은 “입주 이래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 주민들 모두 황당해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토지 원 소유주로부터 입주민들에게 소장이 날아오고 있어요. 내 돈 주고 산 아파트인데 생활이 불안해요. ‘문제 있는 아파트’라고 소문이 나니까 매매도 잘 안 되죠. LH 강원지역본부 인력이 수시로 바뀌니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처리하기도 힘들어요.”

아파트 입주민들은 2014년 8월 LH 전 강원지역본부장 정모(61) 씨를 고소했다. ‘토지 소유권 분쟁이 진행 중인 사실을 은폐하고 입주민들에게 분양한 것은 사기’라는 혐의였다. 춘천지방법원은 2월 정씨에게 사기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는 정씨가 ‘아파트 수분양자들에게 이러한 사실(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 등)을 전혀 고지하지 않았고’ ‘2007년 9월 28일 무렵부터 2008년 1월 23일쯤까지 LH가 아파트 분양 대금 합계 404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게 했다’고 나와 있다.

LH 땅 장사에 무너진 서민의 삶

2014년 8월 강원 춘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강원지역본부 앞에서 휴먼타운 입주민 70여 명이 LH 측의 사기분양을 규탄하고 있다.

부채 줄였지만 서민 주거 안정은 외면

김종수 위원장과 신동철 LH 강원지역본부장은 2014년 9월 ‘휴먼타운 아파트 소송 피해 방지 협약’을 체결해 사태를 빨리 해결하기로 했지만 아직 진전된 사항은 없다. 입주민 양모(57) 씨는 “입주민들은 LH를 못 믿는다”며 “처음 소송을 제기할 때도 LH가 입주민 측 변호사를 수임해줬는데 입주민이 거부하고 다른 변호사를 구했다. LH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임에도 소송이 LH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여서다. 이는 죄 없는 입주민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냐”고 말했다.

LH로 인해 피해를 본 서민들은 한숨 속에서 매일매일을 힘겹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LH는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김상희 의원이 지적한 ‘공공택지 매각’의 이유만 설명했을 뿐이다. LH 관계자는 “부동산경기 침체와 LH 재무 여건 악화로 공공주택 미착공 물량이 늘어났다. 2014년 12월 ‘미착공 공공주택 부지 활용 방안’을 세웠고 지속적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할 것”이라며 “부채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하지만 경북 포항, 경기 광명·시흥, 강원 춘천 등 각 지역 사태에 대한 해결책은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LH 관계자에게 이들 지역 주민들의 사례에 대한 대책을 질의했지만 10월 1일 오전까지 답변을 듣지 못했다.

시민단체는 “LH는 중산층과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본연의 임무에 힘쓰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LH는 2003~2013년 연평균 10만 호의 주택사업 승인을 받았다. 계획대로라면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어야 하고, 땅 장사를 하거나 그 밖에 다른 방법으로 서민들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공공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LH의 부채가 쌓여가는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는 일이 절실하다”며 “서민들을 위한 주택 공급은 지속적으로 하되 적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간동아 2015.10.05 1007호 (p36~38)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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