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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드디어 소음 전쟁에서 해방!

2016년 재개된 대북 및 대남 확성기 방송 2년 4개월 만에 중단

  •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드디어 소음 전쟁에서 해방!

대북 확성기.(왼쪽) 경기 파주시 탄현면 보현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 수풀이 울창한 남한과 달리 임진강 너머 북한의 산들은 나무와 풀이 없는 민둥산이라 대조를 이룬다. [뉴스1, 동아DB]

대북 확성기.(왼쪽) 경기 파주시 탄현면 보현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 수풀이 울창한 남한과 달리 임진강 너머 북한의 산들은 나무와 풀이 없는 민둥산이라 대조를 이룬다. [뉴스1, 동아DB]

자동차로 서울 강변북로를 지나 자유로를 한 시간 남짓 달리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 둘로 나뉜 분단의 현장이 나타난다. 헤이리 예술마을과 영어마을(체인지업캠퍼스)로 유명한 경기 파주시에서는 강 건너 북녘 땅이 한눈에 보인다. 한강과 임진강을 군사분계선 삼아 남북이 마주한 이곳에서는 지난 2년 4개월 동안 매일 밤낮으로 대북 및 대남 확성기 방송의 소음이 휴전선을 넘나들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박근혜 정부 4년 차인 2016년 1월 8일 시작됐다. 그해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 것이 계기였다. 대북방송은 목소리 좋은 남녀가 북한의 실상에 대해 대화하는 내용이었고, 짧은 대담을 마치면 한국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대북방송은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1년 가까이 계속됐고 4월 23일 중단됐다. 

접경지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과 군인을 주 청취자로 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 핵실험에 맞서 시작한 만큼 초기에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대담 중간에는 한국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2016년 겨울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나오는 노래는 1980~90년대 유행하던 가요와 트로트가 주를 이뤘다. 문주란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신형원의 ‘개똥벌레’, 태진아의 ‘옥경이’, 송대관의 ‘네박자’ 등이 단골 레퍼토리였다. 이적의 ‘걱정말아요 그대’도 자주 방송을 탔다. 파주시 탄현면에 거주하는 정순자(73) 씨는 “우리가 북한에 보내는 방송은 주로 낮시간에 했는데, 귀에 익은 노랫가락이 많았다”고 말했다.


체제 비판+대중가요

경기 파주팜랜드(왼쪽)에서는 자유로와 임진강 너머로 북한이 한눈에 보인다. [동아DB]

경기 파주팜랜드(왼쪽)에서는 자유로와 임진강 너머로 북한이 한눈에 보인다. [동아DB]

대북 확성기 방송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방송 자체는 계속됐지만 구성 면에서는 달라졌다. 접경마을에 거주하는 최모(47) 씨는 “처음 대북방송을 할 때는 대화의 비중이 높았는데, 지난해부터는 대화보다 노래를 트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고 말했다. 군이 하루 8시간씩 매일 방송했다고 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모두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 결과는 아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오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2년 가까이 들어왔다는 접경지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감상평은 비슷했다. 

특히 남한 예술단이 북한 평양에서 4월 1일과 3일 두 차례 공연하고 돌아온 뒤로는 주로 평양 공연 레퍼토리가 대북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고 한다. 조용필의 ‘친구여’, 강산에의 ‘라구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잊지말아요’ 등이 자주 나왔다는 것. 



2016년 1월 8일 우리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한 이후 북한도 곧바로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파주시 탄현면 대동리 신호범 이장은 “우리 방송 소리보다 북한 방송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고 말했다. 

2년 전 파주로 이사 와 파주팜랜드를 운영하는 조선자(51) 씨는 “처음 대남 확성기 방송을 들었을 때는 새벽에 무슨 귀신소리 같아 너무 무서워서 울기도 했다”며 “매일 듣다 보니 익숙해지기는 했는데, 밤마다 확성기 소리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 괴로웠다”고 회고했다. 조씨는 “낮에는 우리가 북한에 보내는 대북방송이 주로 들렸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는 북한이 내보내는 대남방송이 많았다”고 밝혔다. 

2016년 북한이 남쪽을 향해 내보낸 대남 확성기 방송은 주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당시 새누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이 친박(친박근혜) 위주의 공천 때문이라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언론의 분석 결과를 대남방송을 통해 내보내기도 했다. 

북한의 대남방송이 한창일 때는 밤 8시 30분에 시작해 10시 30분, 12시 30분, 새벽 2시 30분, 4시 30분 등 매 2시간마다 20~30분씩 방송을 이어갔다. 짤막한 팡파르를 울린 뒤 ‘국군장병〜’이라는 멘트나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 등의 노래로 방송을 시작했다. 2016년 대남방송을 통해 흘러나온 노래는 주로 행진곡풍으로 여러 사람이 합창했다. ‘김정은 장군’으로 끝나는 노래는 방송 때마다 흘러나왔는데, 김정은 찬가인 듯했다.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가며 웅변조로 연설하는 대남방송의 내용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한국에서 촛불집회가 한창 시작되던 2016년 11월 이후 대남방송은 한국 언론 보도를 요약해 주로 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집회 관련 내용을 국군장병들에게 알리는 형식이었다. 지난해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에 대한 비판적 논조가 적잖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들을 향해 핵전쟁을 도발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대남방송은 귀 기울이면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하게 들렸다. 파주 본토박이로 평생을 접경지 마을에 거주해왔다는 최한국(76) 씨는 “방송 소리 때문에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했다.


평양 공연 레퍼토리로 바뀐 대북방송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올해 들어 대남방송 논조도 크게 달라졌다. 특히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 차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방남했을 때는 대남 확성기 방송을 통해 주체사상을 강독하는 등 체제 선전에 적극 나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설전을 주고받으며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는 군가 위주의 행진곡풍 노래를 주로 틀었지만, 올해 남북 대화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에는 서정적인 노래로 바뀌었다. 

남북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4월 23일,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멈추자 북한 역시 대남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2년 4개월 만에 ‘조용한 평화’가 남북 접경지역에 기습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정순자 씨는 “허구한 날 틀어대던 대남방송 탓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모처럼 잠잠해져 기분이 아주 좋다”며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라며 반색했다. 

남북 접경지역에 찾아든 ‘조용한 평화’는 지속될 수 있을까. 이 지역 주민들은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조선자 씨는 “매일같이 귀청을 울리던 대남방송이 사라져 마음이 편안하다”며 “남북정상회담이 잘돼 대남방송이 영원히 사라지고, 통일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주간동아 2018.05.02 1136호 (p48~49)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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