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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가 돌덩이라고? 진짜 돌화폐 ‘라이’를 아시나요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가상화폐가 돌덩이라고? 진짜 돌화폐 ‘라이’를 아시나요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의 붐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화폐가 있다. 서태평양 미크로네시아연방에 속한 야프(Yap)섬의 돌화폐 라이(Rai)다. 페이(Fei)로 불리기도 하는 이 돌화폐는 엽전 모양으로 가운데가 뚫려 있다. 야프섬에 없는 석회암을 인근 팔라우섬에서 채굴한 뒤 카누와 뗏목으로 실어 나르는 과정에서 어깨에 짊어질 막대를 넣기 위해서다. 야프섬에는 금속류가 없기에 섬 밖에서 들여온 희귀암석으로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그 연원도 깊어 500년부터 사용됐다니 1500년 역사를 지닌다. 

문제는 이 돌화폐의 가치가 크기와 무게로 매겨진다는 데 있다. 지름이 7cm밖에 안 되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지름 3.6m, 두께 50cm, 무게 4t에 이른다. 처음엔 작았지만 점점 커져서다. 현재 남아 있는 라이는 대부분 웬만한 타이어보다 커서 바위화폐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그만큼 크고 무거우니 이동 자체가 용이하지 않다. 그래서 야프섬 원주민들은 그 돌화폐를 주고받지 않고 그냥 둔 채 “저 라이는 이제부터 누구 거”라고 선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전승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완성한다. 심지어 카누로 옮기던 중 라이가 바다에 가라앉아도 그 소유주가 누구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한 똑같은 거래 수단이 된다. 실제적 ‘소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그걸 누구 것으로 인정하느냐는 암묵적 ‘약속’이 더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라이가 유명해진 것은 미국 경제학의 태두 밀턴 프리드먼이 말년에 발표한 ‘화폐경제학’(원제 Money Mischief · 1992)에 언급하면서부터다. 거창한 번역서 제목과 달리 이 책은 화폐제도에 대한 오해와 억측이 빚은 역사적 사례를 모아 소개한 책이다. 

프리드먼은 여기서 1898~1919년 야프섬을 식민 지배한 독일이 섬을 관통하는 도로를 깔 때 원주민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벌금을 물린다면서 몇 개의 라이에 독일 정부 소유라는 표시로 검은 십자가를 그려 넣었고 이에 기겁한 원주민들이 적극 협조했다는 사례를 든다. 그러면서 이를 1932~33년 프랑스 정부가 미국 연방준비은행에 보관 중이던 프랑스의 달러 자산을 모두 금으로 바꾼 뒤 프랑스 정부 소유라는 표시를 해 보관하게 한 사건과 비교했다. 같은 장소에 두고 소유자 표시만 바꿨을 뿐이지만 이 사건은 미국 대공황 원인의 하나로까지 거론되는 충격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설명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같은 지적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허구 내지 환상이지만 그 어떤 현실보다 사람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3대 발명품으로 종교, 제국과 함께 화폐를 들었다. 

비트코인은 유저들의 채굴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돌덩이에 비견되곤 한다. 가상화폐 무용론자들은 이를 무가치한 돌덩이로 취급한다. 그들 눈에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야프섬 원주민과 다를 바 없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프리드먼이 지적했듯, 그것이 화폐 액면 값과 실제 값을 일치시키려 한 금본위제하의 화폐이든, 1973년 이후 금본위제에서 이탈한 화폐이든 본질적으로 돌화폐 라이와 큰 차이가 없다. 대다수 사람이 그 허구성을 수용하면 돈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쇳덩이 내지 종잇조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18.01.24 1123호 (p27~27)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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