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층 결집케 할 호재
여야 정치권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매개로 저마다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총선이라는 전국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자기 지지층을 먼저 결집케 한 뒤 무당층과 중도층 공략에 나서는 것은 선거 승리를 위한 기본 공식. 통상적으로 선거가 여야 맞대결 구도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찬성과 반대로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야말로 지지층을 총결집할 수 있는 대형호재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는 지지정당별, 정치성향별로 극명하게 찬반이 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층의 84.2%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지지층은 국정화 반대 비율이 90.0%로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층 68%가 찬성했고, 새정연 지지층 가운데 65%가 반대했다.
또한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정치성향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크게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보수층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찬성 비율이 76.3%로 반대(18.1%)를 압도한 반면, 진보층이라고 답한 응답자 중에서는 반대 비율이 75.7%로 찬성 비율(18.3%)과 큰 격차를 보였다. 중도층에서는 찬성(41.0%)과 반대(55.5%) 중 반대 의견이 조금 우세했다.
지역별, 연령별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에 대한 찬반 여론이 크게 갈렸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등 영남에서의 찬성 비율이 각각 69.2%, 57.1%로 높았다. 서울(52.1%), 대전·세종·충청(52.5%), 광주·전라(55.0%)에서는 반대 비율이 더 높았다. 연령별로는 20대(57.5%)와 30대(66.3%), 40대(56.8%)에서 반대 비율이 더 높았고, 50대와 60세 이상에서는 찬성 여론이 각각 57.6%, 72.3%로 반대 비율보다 월등히 높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대전·세종·충청에서 국정화 찬성 여론이 50%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다음으로 PK(부산·경남)가 44%로 뒤를 이었다. 반대 여론의 경우 인천·경기가 46%, 서울과 호남이 각각 45%로 평균보다 조금 높았다. 연령별 조사에서는 20대(66%)와 30대(57%), 40대(53%)에서 반대 여론이, 50대(57%)와 60대 이상(61%)에서 찬성 비율이 높았다.
종합해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계기로 ‘새누리당 지지층+보수층+영남+50대 이상’ vs ‘새정연 지지층+진보층+수도권·호남+20·30·40대’란 명확한 대립전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변수는 무당층과 중도층에서 반대 비율이 높다는 점. 역대 선거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 역시 무당층과 중도층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19대 총선 당시 연령별 투표율과 결부해 분석해보면 조금 다른 결과가 도출된다. 여론조사에서는 찬반 여론이 오차범위 내로 팽팽히 맞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령별 투표율을 감안하면 국정화 찬성 여론이 오차범위를 벗어나 반대 여론을 크게 앞선다는 결과가 나온다.
‘주간동아’가 시대정신연구소에 의뢰해 리얼미터와 한국갤럽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연령별 여론조사 결과를 19대 총선 당시 투표율로 재계산한 결과 두 조사기관 결과는 모두 찬성 54%, 반대 46%로 나타났다.
19대 총선 당시 세대별 투표자 비율로 재계산하기 전 리얼미터 조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비율은 47.6%, 반대는 44.7%였다. 그러나 19대 총선 투표자 비율로 재계산하면 54.1% 대 45.9%로 8.2%p 격차가 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갤럽 조사도 마찬가지. 여론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 여론이 각각 42%로 동률을 이뤘지만, 19대 총선 당시 연령별 투표자 비율로 재계산하면 리얼미터와 마찬가지로 54% 대 46%로 찬성 비율이 8%p 더 높게 나타났다(표 참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0월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탑을 참배한 뒤 방명록에 ‘올바른 역사교육이 애국의 시작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이날 정부 여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저지하기 위한 3자 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부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일반적으로 여론조사는 우리 국민의 실제 지역별·연령별 인구분포를 감안해 조사 결과를 보정한 뒤 발표한다. 일례로 20대 응답자 수가 조금 적으면 인구비례에 맞게 가중치를 부여해 실제 20대 인구 수만큼의 비율을 조사 결과에 반영한다. 60대 이상 응답자가 많을 경우에는 오히려 역으로 가중치를 낮춰 인구비례만큼 보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투표율은 어떤가. 여론조사와 달리 20대 투표율은 언제나 평균을 밑돌았다. 19대 총선 전체 평균 투표율은 54.4%였지만, 20대와 30대 투표율은 각각 42.1%와 45.5%로 평균에 크게 못 미쳤다. 반대로 50대 이상에서는 62.4%(50대), 68.6%(60대 이상)로 평균 투표율을 한참 웃돌았다.
인구분포를 정확히 반영해 여론을 측정한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선거에서 유권자의 의사결정과 다를 수 있는 이유가 거기 있다. 투표하지 않는 ‘기권자’도 유권자라는 이유로 가중치를 둬 세대별 의견에 반영하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에는 언제나 투표하지 않는 기권자 수가 끼어들 여지가 생긴다.
반대로 평균 투표율을 웃도는 연령층의 경우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여론조사에서는 큰 비율을 차지하지 않지만, 막상 투표장에서는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19대 총선 투표율로 따져보면 60세 이상 유권자 수는 전체 국민의 20.7%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투표자 가운데 60세 이상 비율은 26.1%로 실제 유권자 비율보다 5.4% 이상 더 많은 의사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20대의 경우 유권자 비율은 18.2%였지만, 실제 투표자 비율에서는 14.1%로 4.1%p 정도 더 적었다. 결론적으로 20대는 실제보다 더 적게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60대 이상은 실제 인구분포보다 더 높은 비율의 의사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론이 내년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국정화에 반대하는 비율은 46%인 반면, 투표 결집력이 더 높은 찬성 비율은 54%로 약 8%p 더 높다. 찬반 여론이 팽팽해 보이는 것은 조사 결과를 우리 국민 100%로 인구분포에 맞게 보정한 여론조사의 함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