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지역 영·유아 보육시설장들의 ‘아동학대 방지 선서’.
이 사건은 ‘어린이집 바늘학대’라는 이름의 동영상으로 순식간에 인터넷을 통해 확산돼 수많은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 동시에 어린이집에 대한 불신감을 낳았다. 5세 된 딸을 어린이집에 맡긴 지 2년이 됐다는 서울 마포구의 박혜은 씨는 “동영상을 보는 순간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면서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저런 취급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지금까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어린이집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맞벌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현실에서 ‘아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하는 문제는 맞벌이 가정이 갖는 공통 고민일 것이다. 베이비시터나 친정어머니에 의한 가정보육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어린이집이 늘어나고 정부가 다양한 어린이집 지원책을 시행하면서 어린이집을 통한 시설보육이 일반화됐다.
탁상공론으로 끝난 ‘학대 근절대책’
특히 0~2세 영아의 보육료 전액지원제가 실시된 이후 0~2세 영아의 어린이집 이용이 점점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어린이집 같은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0~2세 영아는 78만 명(이용률 56%)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고하는 시설 이용률이 30% 미만임을 감안하면 턱없이 높은 수치다.
하지만 높은 이용률에 비해 어린이집에 대한 안전대책은 미비한 실정이어서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겨야 하는 부모의 불안감을 해소할 길은 막막하다.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각종 학대 사건에 대해 수수방관하던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것은 2010년. 당시 인천 남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 김모(47·여) 씨와 김씨의 어머니 이모(65) 씨가 아이들을 학대하는 장면이 담긴 CCTV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른바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직후의 일이다.
2010년 12월 20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근절대책 가운데 관심을 모았던 것은 어린이집에서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폭언, 체벌, 폭행 등 신체학대와 정서학대 행위를 일삼거나 이를 방임했을 경우 해당 관계자를 보육업계에서 영구 퇴출시킨다는 ‘학대자 영구퇴출’ 조항이었다. 또한 해당 어린이집에 대해선 운영 정지나 시설 폐쇄 등의 강경조치를 취해 어린이집에도 책임을 물을 것임을 밝혔다. 학부모들에게는 아동학대가 발생했던 어린이집임을 알리고 정부보조금 지원을 중단 또는 환수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 밖에도 어린이집 종사자의 적극적인 신고를 위해 ‘아동학대자 신고포상금 제도’를 마련해 포상금 300만 원을 지급하는 한편, 어린이집 원장에 대한 인권교육 강화안(직무교육 80시간), 어린이집에 IPTV를 포함한 CCTV 설치 유도와 설치비 지원 등의 방안을 통해 어린이집 아동학대 예방대책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대부분의 근절대책은 탁상공론으로 끝난 실정이다. ‘개인정보 보호법’이 강화되면서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져 사실상 어린이집의 ‘자율설치’에 맡긴 상태다. 하지만 어린이집 대부분에선 교사들의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설치하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자 신고포상금 제도’는 홍보 미비와 신분 노출 등의 우려로 아직까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영구 퇴출’ 조항도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이처럼 적극적인 근절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어린이집에서 생기는 각종 학대 사건에 사후약방문식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장 목소리를 담은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선 어린이집 아동학대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어린이집 종사자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교사 처우개선과 학대 예방 교육
인천의 한 어린이집 원생들이 원장에게 당한 가혹행위를 기록한 일기장.
학대가 일어나기 가장 쉬운 0~2세 영아반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먼저 이 시기 아이들은 학대 사실을 부모에게 표현하지 못해 학대 사실이 묻히기 쉽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평소 아이에게 학대가 무엇인지 알려줘 아이가 학대받았을 때 곧바로 부모에게 얘기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두는 것이 좋다. 또 아이의 잘못과 관계없이 학대가 이뤄진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 둔다면 학대로 인한 아이 마음의 상처를 덜 수 있다.
학부모는 늘 아이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함으로써 아이가 정서적, 신체적 변화를 보였을 때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부모들과 연계해 어린이집의 급식 상태나 보육 방침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원장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관리 소홀로 인한 학대 예방에 도움이 된다.
만약 아이나 어린이집에서 학대 정황이 포착된다면 곧바로 관계당국에 신고한다. 신고번호는 국번 없이 1577-1391(아동학대 신고전화)과 129(보건복지콜센터). 또한 전국 아동보호 전문기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신고가 가능하다.
또 현행처럼 어린이집에 보내야만 양육수당을 지급하는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영아 어머니 취업률이 29.9%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2세 미만 영아의 절반이 불가피한 사유가 없음에도 시설보육을 선택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를 두고 부모의 책임 논란이 일기도 하지만, 지원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부모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도 없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인경 박사는 “부모에게 시설보육과 가정양육의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 연령대는 신체적, 심리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다. 이 시기 아이는 아동복지법에 의해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으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할 권리가 있다. 그런 만큼 부모를 대신해 적절한 보육환경을 제공해야 할 어린이집에서 학대행위가 벌어진다면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도, 용서해서도 안 되는 중차대한 범죄행위다. ‘어른’ 처지에서 결정한 행정처분으로는 어린이집 학대의 사슬을 끊기 어렵다. 어린이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더욱 강력한 처벌과 현실적인 감시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