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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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용 캐리어는 공항 패션의 완성?

연예인이 끌기만 해도 화제…100만 원짜리 제품도 깨지고 찌그러지고 소비자 불만 증가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08-21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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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용 캐리어는 공항 패션의 완성?
    요즘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패션이 아니라 여행용 캐리어다. 2000년대 이후 해외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검은색의 바퀴 달린 가방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나 여행용 캐리어의 색상과 소재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연예인들이 끄는 캐리어는 아예 ‘○○○ 캐리어’라는 식으로 이름이 붙어 단숨에 화제가 된다.

    하지만 연예인 이름이 붙은 캐리어 치고 ‘착한 가격’은 없다. 일반적인 중저가 여행용 캐리어가 10만~30만 원대라면 이들 제품은 대부분 90만~150만 원대다. 방송인 유재석, 노홍철, 정준하 등이 MBC ‘무한도전’ 출연 당시 공항에 끌고 등장했던 독일 리모와의 알루미늄 소재 여행용 캐리어 ‘토파즈’는 크기와 색상에 따라 100만~175만 원이다. 탤런트 이서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상화 등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이 같은 모델의 제품을 사용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와 그룹 소녀시대 멤버들은 90만~100만 원대인 리모와의 살사를 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판매 전 충분한 설명, 판매 후 충분한 수리?

    이 밖에도 아이돌그룹 위너의 한 멤버와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누나’에서 배우 이미연이 끌고 등장했던 미국 투미의 ‘테그라라이트’, 가수 겸 탤런트 이승기가 사용했던 일본 제로할리버튼의 ‘ZR’ 캐리어 모두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고가 제품이다.

    ‘연예인 캐리어’로 불리는 이 제품들은 왜 이토록 비싼 것일까. 각 업체는 “제품에 사용된 특수 소재와 기술력 때문”이라고 홍보한다. 특히 알루미늄 캐리어의 경우 공통적으로 항공기 부속물에 쓰는 소재로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로할리버튼은 우주항공기 소재를 고온 가열, 급속 냉각 과정을 거쳐 강철처럼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리모와의 토파즈 라인은 초경량 항공기 전용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복합 소재를 사용해 외부 온도와 충격에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루미늄 제품은 아니지만 리모와의 살사 라인 제품은 폴리카보네이트 재질로 만들어 초경량·고강도이고, 투미의 테그라라이트 캐리어는 폴리프로필렌 소재로 만들어 충격 흡수 기능이 뛰어나다고 홍보한다.



    이런 홍보 효과 때문인지 고가 캐리어 인기는 해가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2006년 한국에 첫 매장을 연 리모와 토파즈의 경우 오픈 당시에 비해 현재 판매가 40%가량 늘었다고 한다. 리모와 관계자는 “독일에서 알루미늄 소재를 90단계에 걸쳐 가공해 완성하는 제품이다. 전문가가 수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제조과정에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간혹 물량이 부족해 못 파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여행용 캐리어는 공항 패션의 완성?
    그러나 아무리 고가 캐리어라 해도 기대만큼 외부 충격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다. 4년 전 괌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A사의 알루미늄 캐리어를 구매한 서모 씨는 인천국제공항 수화물 컨베이어벨트에서 자신의 캐리어를 찾다 깜짝 놀랐다. 새것이던 캐리어의 모서리 한쪽이 누군가 강하게 내려찍은 듯 움푹 들어간 모양으로 도착했던 것. 항공사에 항의했지만 캐리어가 부서진 것이 아니어서 ‘죄송하다’는 사과만 들었을 뿐 금전적 보상은 받지 못했다.

    서씨는 “신용카드 첫 달 할부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제품이 망가져 화가 났다. ‘알루미늄 캐리어는 찌그러져야 여행 좀 해본 티가 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막상 내가 겪고 보니 괜한 돈을 썼다고 후회되더라.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돌아가 반품하고 싶었다”고 했다.

    A사 측은 제품을 판매할 때 소비자에게 취급 시 주의사항 등을 충분히 설명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회사 관계자는 “하드 캐리어는 비행기 수화물 칸에서 험하게 다뤄지다 보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자사 알루미늄 캐리어 제품은 찌그러질 뿐 깨지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있으며 전 세계 어디서든 5년간 무상으로 찌그러진 부분을 두들겨 펴주는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폴리카보네이트 소재 제품은 간혹 깨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도 수리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캐리어에 문제가 생겨 난감한 상황에 처해본 사람이라면 ‘5년간 무상 수리 서비스’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2년 전 A사의 알루미늄 캐리어를 구매한 직장인 정모 씨는 첫 여행지에서부터 한쪽 바퀴가 빠져 고생했다. 입국하자마자 매장을 다시 찾았지만 수리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제품을 맡겼다. 그러나 두 번째 여행에서는 수리받은 바퀴 쪽으로 가방이 계속 기울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다시 매장을 찾았으나 직원은 수리를 받으라는 말만 반복했다.

    정씨는 “여행을 갈 때마다 캐리어 때문에 고생해서 해당 제품이라면 꼴도 보기 싫다. 유럽에 본사가 있는 큰 여행가방 회사라고 해서 믿고 구매했는데 왜 계속 불량이 생기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이에 대해 A사 측은 “여행 도중 소비자 과실로 생긴 제품 고장 문제는 5년간 무료로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가성비’ 안 따지는 과시용 소비

    최근 고가 캐리어 열풍에 대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지 않은 과시용 소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한 알루미늄 캐리어를 구매한 소비자에게 구매 동기를 묻자 “연예인들이 들고 다니는 제품이니까 멋있어 보여서 구매했을 뿐 성능은 따지지 않았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물론 이런 비합리적인 소비 성향에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다. 한 중소기업 과장으로 일하며 1년에 십여 차례씩 해외 출장을 다니는 김모 씨는 “100만 원씩 하는 캐리어를 살 돈으로 여행 한 번 더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는 “요즘 공항에 가보면 죄다 고가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특히 알루미늄 캐리어의 경우 가방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짐을 조금만 싸도 1인당 수화물 한도를 훌쩍 넘기기 십상이다. 비즈니스석을 타지 않는 이상 초과 비용을 내야 하는데, 그 비싸고 무거운 캐리어를 왜 끌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중저가 캐리어를 5년째 쓰고 있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어, 뚜껑 잘 닫히고 바퀴만 잘 굴러가면 계속 쓸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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