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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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경쟁 부족이야

정부 ‘가격통제’ 순진한 발상으로 소비자 혜택 줄어 ‘삐그덕’

  • 정호재 채널A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4-10-27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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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야, 문제는 경쟁 부족이야
    “천하의 삼성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어요. 무산되면 국가의 위신문제입니다.”

    올해 초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관계자들은 특정 법안 얘기만 나오면 적잖이 흥분하며 격앙된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추진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국회 문턱 앞에서 몇 차례 주저앉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탓이다. 상당수 관료는 그 원인을 특정 대기업으로 보고 불만을 표출했다.

    ‘가계 통신비 인하’라는 야심 찬 계획을 거부하는 세력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제조사, 정확하게는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가 이 법안에 반대한다는 사실은 추진 과정에서 공론화됐다. 요지는 간단했다. 국내 유통망에 뿌리는 제조사의 보조금이 공개되면 해외 시장에서 효과적인 가격정책을 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같은 휴대전화 제조사인 LG전자와 팬택은 피해가 예상됨에도 법안에 찬성했다. 당시는 정부를 비롯해 소비자단체, 심지어 이동통신업계까지도 속칭 ‘17만 원 갤럭시’ ‘호갱님’(호구+고객)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삼성전자 측 반대만 없으면 단통법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최적의 대안으로 여겨졌다. 그 바람대로 국회가 제조업체의 건의를 일부 받아들인 끝에 5월 2일 압도적인 지지로 이 법이 통과됐고, 6개월이 지난 10월 1일 시행되기 시작했다.

    시행 2주 만에 ‘확’ 바뀐 분위기



    그러나 시행 3주 차에 접어든 지금 제조사는 물론 소비자, 유통업자 등 대부분이 이 법에 불만을 나타낸다. 유일하게 이동통신업계만 ‘표정 관리’에 나선 형국이다. 실제 이동통신사 주가도 급등했다. 법안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전문가들은 이제야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단통법은 이름 그대로 단말기 유통구조와 관련한 법이다. 필수적으로 통신보조금에 대한 규제를 동반한다. 통신보조금은 제조사나 이동통신사가 이용자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지원금의 일종이다. 통신서비스는 한 번 가입하면 계속 요금을 내야 하는 일종의 세금이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서 통신서비스를 적절히 사용하면 개인을 넘어 국가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통신제품에 적당한 보조금을 허용함으로써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

    문제는 소비자에게 무조건 선(善)인 보조금이 그동안 평등하게 지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17만 원 갤럭시 파동’에서도 알 수 있듯 출고가 100만 원짜리 휴대전화가 어떤 이에게는 가격 그대로 팔리지만 누군가는 83만 원의 보조금 혜택을 받아 ‘17만 원’에 구매하는 차별이 일어났다. 단통법 입법이 추진된 근본 배경이다.

    10월 1일 시행된 단통법은 기업이 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를 최대 34만5000원으로 고정해놓았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는 매주 한 차례씩 출시된 지 1년 5개월 미만의 단말기에 대해 해당 주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공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사는 갤럭시 노트4를 월 7만 원대 요금제로 구매할 경우 30만 원의 보조금을 줄 수 있다’는 식이다. 이 액수는 시장 상황에 따라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호갱님은 사라졌지만 시장은 ‘침체’

    바보야, 문제는 경쟁 부족이야

    단통법 시행 첫날인 10월 1일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왼쪽)이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의 이동통신사 대리점을 찾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부가 이 법안을 만든 까닭은 첫째도 둘째도 ‘혼탁해진 이동통신시장’을 정화하기 위해서다. 이동통신시장이 고가의 스마트폰과 데이터 요금제 중심으로 바뀌면서 그 혼란을 틈타 유통사가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피해 사례가 다수 접수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 고위관계자들까지 미래부로 민원전화를 넣어 “휴대전화 싸게 사는 방법이 없느냐”는 농담을 건넬 정도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같은 시기에는 전국에서 동일한 휴대전화를 엇비슷한 가격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단통법 원칙이 세워졌고 이를 위해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을 통제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동통신사로서는 ‘고가 단말기+고가 요금제’에만 30만 원 가까운 보조금을 투입하고 싼 요금제를 쓰는 고객에게는 10만~20만 원 내외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최선이 됐다. 한 달 전만 해도 인기 기종이 아니면 보조금 30만~50만 원을 받던 것과 비교하면 소비자로서는 손해 보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앞서 설명한 대로 현재 단통법에 대한 시장 반응은 최악에 가깝다. 과거에는 발품을 팔면 휴대전화를 싸게 살 수 있는 뒷문이 존재했지만, 이제는 소비자 대부분이 비교적 높은 가격에 새 휴대전화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단통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전국적으로 10만 곳에 달하는 휴대전화 판매점과 이동통신 대리점이다. 법안 발효 이후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단통법은 모두가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제정돼야 함에도 통신사업자를 제외한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었다”며 “국회와 행정부 모두 혼란만 부추긴 채 무책임하게 손을 놓고 있고 있다”고 항의했다.

    제조사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보조금이 정형화되면서 소비자들이 가격 차이가 사라진 고가 단말기로만 몰려간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등 제조사의 경영환경은 단통법을 준비하던 시기와 크게 달라졌다. 그렇다고 출고가를 크게 내릴 수 없는 것도 고민이다. 한국에서 가격을 낮추면 세계 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게 흘러가자 10월 22일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단통법의 부작용을 좌시하지 않고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동통신사가 이용자와 유통점이 느끼는 고통을 분담하려는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이동통신사의 미적지근한 경쟁을 질타한 바 있다. 그들이 단통법 작동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단말기

    “도서정가제와 단통법은 닮은 면이 많습니다. 통신 및 미디어 상품의 가격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거든요.”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회심의 작품인 단통법을 도서정가제와 같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기업 경쟁을 이끌어내 소비자 혜택을 늘려야 하는데 정부가 그 위에서 가격을 통제하려는 ‘권위주의 산물’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IT 제품인 애플 ‘아이폰6’만 해도 그렇다. 이미 2개월 전 미국 시장에서는 2년 약정 시 16GB 199달러(약 22만 원), 64GB 299달러(약 33만 원)에 풀렸다. 약정 없이 공기계로 사면 ‘아이폰6’ 기본형 가격은 649달러로 약 70만 원이다.

    그러나 10월 말 국내에서 출시되는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 출고가는 각각 80만 원, 100만 원 선에서 책정될 전망이다. 단통법이 적용된 한국 시장에서는 2년 약정을 해도 60만 원 이상에 살 수밖에 없다. 미국에 비해 2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을 지불하는 셈이다.

    이동통신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선국 씨는 “출시한 지 15개월이 지난 휴대전화의 경우 보조금 제한이 없고 투명하게 보조금을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은 단통법의 장점”이라면서도 “국내 이동통신시장의 경쟁이 부족한 점을 정부가 명확히 인식해야 소비자 혜택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단통법 시행 후 시장 변화

    소비심리 위축 직격탄…뒤늦게 출고가·요금제 인하 ‘법석’


    바보야, 문제는 경쟁 부족이야

    10월 8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민단체가 단통법 폐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동통신시장을 혁신하기 위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시행 한 달을 맞고 있지만, 소비자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비자 차별을 없애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혜택을 주겠다는 법 취지는 지켜졌다. 문제는 동일한 혜택의 폭이 축소됐다는 데 있다. 일부에 한해서긴 하지만 최대 100만 원을 넘던 휴대전화 보조금이 10만 원 안팎으로 줄었다. 그것도 월 10만 원 가까운 고가 요금제에 2년 약정을 체결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단통법 시행 첫날 이동통신사가 공시한 보조금은 8만~11만 원 수준이었다.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4’를 구매할 경우 SK텔레콤의 LTE전국민무한100 요금제는 11만1000원을, KT의 완전무한97 요금제는 8만2000원을 각각 지원했다. LG유플러스의 LTE89 요금제는 보조금 8만 원을 책정했다. 판매점이 추가 지원할 수 있는 최대폭인 15%를 더해도 총보조금이 10만 원을 조금 넘는 데 그친다. 단통법 시행 2주 차에는 보조금이 소폭 상향됐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출고가가 80만~100만 원에 이르는 최신 스마트폰을 구매하려면 소비자가 60만~80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휴대전화 가격이 높아지자 신규 휴대전화 판매가 급감했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휴대전화 유통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것. 실제로 단통법 시행 첫 2주간 번호이동 건수는 하루 평균 5900여 건으로, 1~9월 하루 평균 2만2700여 건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중고 휴대전화 가입자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통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법안을 주도한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분주해졌다. 법이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좀 더 지켜보자는 방침이지만, 여론의 역풍이 워낙 거세다. 양 부처 수장이 휴대전화 유통 현장을 방문하고, 이동통신사와 제조사 대표들과 회동을 갖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소비자 혜택 축소가 이어지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일부지만 시장의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당초 단통법이 시행되면 제조사들이 불필요한 장려금과 가격 거품을 빼고 출고가를 낮출 것으로 기대됐다. 단통법 시행 3주 만에 LG전자가 처음 출고가를 인하했다. LG전자는 10월 22일 스마트폰 3종의 가격을 6만~10만 원 낮췄다. 8월 출시한 ‘G3A’ 가격을 70만4000원에서 64만9000원으로, ‘Gx2’ 가격을 69만3000원에서 59만9500원으로 인하했다.

    이동통신사가 보조금 대신 요금과 서비스 경쟁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실현 가능성을 보였다. KT가 가장 먼저 약정 없이 기본요금을 할인해주는 ‘순액요금제’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KT는 요금 신고를 거쳐 이르면 12월에 새 요금제를 출시할 계획이다.

    순액요금제는 사용 기간을 약정하지 않아도 기존 약정요금제 할인 금액만큼 기본료를 낮춘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기본료 6만7000원인 완전무한67 요금제에 2년 약정으로 가입하면 매달 1만6000원을 할인해줬다. 그 대신 약정기간 전에 해지하면 그동안 받은 할인액을 위약금으로 내야 했다. 순액요금제는 이런 조건 없이 처음부터 5만1000원에 제공한다. 애초 약정하지 않으니 위약금도 없다. KT는 기존 약정 고객도 순액요금제로 위약금 없이 바꿀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KT 관계자는 “요금 약정 없이 평생 요금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요금제인 만큼 고객 선택권을 보장하고 가계통신비 절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KT는 기존 무제한 요금제 혜택을 강화하고, 휴대전화 구매 시 멤버십 포인트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서비스 정책도 개선했다.

    LG전자와 KT가 먼저 나서자 경쟁 사업자들도 따라오고 있다. 이동통신시장의 팽팽한 경쟁 상황을 고려하면 경쟁사의 혜택 제공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11월부터 가입비를 전면 폐지하고, KT의 순액요금제와 유사한 요금제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최신 단말기 지원금도 최대 30만 원까지 높였다.

    권건호 전자신문 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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