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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과 불안이 만든 ‘트럼프 현상’

1960년대 이후 ‘저학력 백인’만 삶의 질 추락…“오늘날 백인은 새로운 흑인”

불만과 불안이 만든 ‘트럼프 현상’

8월 중순 미국 시애틀에서 미국사회학회 연례 학술대회가 열렸다. 그중 한 세션에서 미국 터프츠대 사회학과 학과장인 파완 딘그라(Pawan Dhingra) 교수가 ‘백인은 새로운 흑인(Whites are new blacks)’이라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 흑인은 학업 성적이 낮고, 청소년 비행률과 범죄율이 높으며, 마약에 손대는 비율과 혼외출산율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흑인의 높은 일탈률은 사회문제가 됐으며,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강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와 달리 1960년대만 해도 백인은 학력 수준에 관계없이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 저학력 백인층은 백인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난했지만 흑인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말 이후 저학력·저소득 백인의 행동 양식이 과거 흑인의 행동 양식과 비슷하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 백인이 바로 미국 대통령선거(대선)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다. 저소득, 저학력, 남성 백인이 압도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다른 인종의 트럼프 지지율은 매우 낮다.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2012년 오마바 대통령 재선 당시와 현재의 인구학적 집단별 대선후보 지지율 변화를 분석한 적이 있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공화당 후보 밋 롬니에 비해 여성과 소수인종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반면 백인의 59%가 롬니를 지지했고, 오바마를 지지한 비율은 39%에 그쳤다. 

치솟는 백인 사망률, 혼외출산율

그런데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의 지지층 변화를 살펴보면, 대학 이상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의 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2012년에 비해 9%p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 이상 교육을 받은 백인 남성의 민주당 후보 지지율도 지난 대선에 비해 4%p 높아졌다. 2012년 대선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등을 명확히 예측해 유명해진 네이트 실버(Nate Silver)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FiveThirtyEight’ 분석에 따르면, 이번 대선은 60년 만에 처음으로 고학력 백인 유권자가 공화당보다 민주당 후보를 더 지지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12년에도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 거의 모든 소수인종이 압도적으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는데, 이번 대선에서 소수인종의 공화당 후보 지지율은 이때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7월 NBC 방송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둘 중 한 곳에서만 져도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하는 펜실베이니아 주와 오하이오 주에서 흑인의 트럼프 지지율은 0%였다.

그럼에도 클린턴과 트럼프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고, 아직도 트럼프가 당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저학력 백인층의 지지율 변화 때문이다. 2012년에 비해 대졸 미만 저학력 백인 여성의 민주당 후보 지지율은 3%p 줄었다. 반면 저학력 백인 남성의 민주당 후보 지지율은 14%p 급감했다. 고학력 백인 남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인구학적 집단이 2012년에 비해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보다 민주당 후보를 더 지지하는데, 저학력 백인만 유일하게 공화당 후보를, 그것도 다른 중도적 공화당 후보는 모두 마다하고 오직 트럼프만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 현상’은 바로 저학력 백인 현상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들 저학력·저소득 백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거의 모든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미국인 삶의 질이 평균적으로 높아졌지만, 저학력 백인의 삶은 여러 영역에서 악화하고 있다. 그중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연구 결과는 사망률 증가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Angus Deaton)과 공동연구자 앤 케이스(Anne Case)는 1999년부터 2013년 사이 미국 중년 백인의 사망률이 증가했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 지속돼온 사망률 감소와 대비되는 현상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중년층 사망률 증가는 보고된 바 없다. 유독 미국의 저학력 백인에게서만 이 현상이 관찰된다.

사망률 증가의 원인은 마약·알코올 중독, 자살, 간질환이다. 자살 증가는 다른 인구학적 집단에서도 관찰되지만 마약, 알코올 등 약물 중독과 그로 인한 질병 증가는 저학력 백인에게서만 나타난다. 원인이 세균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생활습관이나 행동 양식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이 기간 저학력 백인층에서 마약·알코올 관련 사망률이 81% 증가했고, 간질환은 50% 늘었다. 디턴 교수는 이 현상을 ‘조용한 전염병’이라고 명명했다.

또 한 가지 저학력 백인의 행동 양식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이 결혼과 출산이다. 1960년대 미국 혼외출산 비중은 전체 출산의 5~7%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5년 현재 신생아의 40%가 혼외출생자다. 혼외출산 비율이 800%나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저학력 백인의 혼외출산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백인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1960년대에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생애사의 결정에 백인의 학력별 격차가 없었다. 하지만 브루킹스재단의 경제학자 이사벨 소힐(Isabel Sawhill)의 연구에 따르면 2010년 현재 고졸 이하 백인 여성 58%의 첫 출산이 혼외출산인 반면, 대졸 이상 백인 여성의 해당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혼외출산이 더는 흑인의 특징이 아닌 셈이다. 2000년 현재 백인 아이의 22%가 부모 가운데 한 명과 살고 있는데, 이는 60년 흑인 아이의 비율과 정확히 일치한다. 백인이 곧 새로운 흑인인 셈이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소수인종과 행동 양식이 달라 인종 계층구조에서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느끼던 저학력 백인의 위치는 이렇게 위협받고 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저학력 백인은 앞으로도 상황이 더 악화하리라고 믿는다. 지난해 여름 ‘애틀랜틱 매거진’에서 세대 간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성 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이 적다는 응답이 많았는데, 전체 결과보다 놀라운 것은 응답의 인종별 차이였다. 흑인과 히스패닉은 각각 43%, 36%가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하다’고 응답한 반면, 백인은 단지 19%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미국의 미래와 관련해 소수인종보다 미국에서 주류를 이루는 백인, 그중에서도 저학력 백인이 더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저학력·저소득 백인층은 영국에서 브렉시트(Brexit)를 지지하던 집단과 같다. 영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확률을 예측하는 가장 큰 변수는 학력이고, 그다음이 소득이다. 저학력·저소득층이 유럽 통합에 불만이 많았고, 변화를 원했다. 미국에서도 저학력·저소득 백인이 현 상태에 가장 큰 불만을 갖고 있으며, 변화를 원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곤궁함의 원인을 내부가 아닌 다른 인종이나 외국인 등 외부에서 찾고 있다. 미국에서 인종 간 격차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완화됐는데 상대적으로 약화된 인종집단 간 격차를 크게 악화된 빈부 격차의 원인으로 삼는 것이다.


입력 2016-09-09 16:00:34

  •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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