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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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울타리 뛰어넘어 독립 꿈

고양이 소녀 다연이

  •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입력2013-12-09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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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울타리 뛰어넘어 독립 꿈
    “그래, 다연아. 너는 너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저요? 저는 자존감이 아주 낮아요.”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자신의 어떤 것을 들키기 전 자신이 아주 형편없고 아픈 아이라는 인상을 강제로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 싶은 듯이 보이는 다연(20·가명)이가 귀여웠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저는 원래 자존감이 낮아요. 아마 가족이 다 따로따로라서 그런 것 같아요. 스스로는 자신이 가장 상처받는다 생각하죠. 저는 프로이트 책을 좋아해요.”



    “엄마 아빠와 관계는?”

    “당근(당연히) 안 좋죠.”

    “언니랑은?”

    “원수죠.”

    툭툭거리지만 사랑이 많은 아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질 새가 없었다. 툭툭 내던지듯 말하는 다연이의 말투도, 내용도 참 귀여웠다. 그때 동행한 효선이가 거들었다.

    “다연이 언니는 요물이에요.”

    큭,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정말이에요, 선생님. 다연이 언니는요, 마치 다연이를 괴롭히려고 태어난 것 같아요.”

    “혹시 다연이가 언니보다 엄마 아빠에게 더 사랑받는 건 아니니?”

    다연이는 잠시 구석으로 눈을 돌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돌아봤다.

    “네, 그런 것 같아요. 심지어 고양이까지도요.”

    “고양이라니?”

    “고양이를 키우는데, 언니는 제가 없는 동안 비싼 캔 같은 것으로 환심을 사려 하지만 그게 안 통해요.”

    “그럼 고양이는 너만 따르는 거니?”

    “(웃음) 선생님, 쟤만 따르는 것은 맞는 거 같은데 완전 괴물이에요.”

    효선이가 거들었다.

    “왜, 할퀴니?”

    “할퀴기만 하게요. 다연이는 완전 고양이 밥이에요. 물고 뜯을 뿐 아니라, 다연이의 머리칼을 완전히 자기 몸에 감고 발광해서 다 뽑아놓는대요.”

    효선이가 다연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킥킥댔다.

    “그래도 제가 없을 때 하루 종일 우는 걸 보면 저를 좋아하긴 하나 봐요. 이번에 집에서 나올 때 고양이를 데리고 나오려고요. 그런데 고양이를 데리고 집을 구하려니 조금 힘들긴 해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앞머리를 뱅 스타일로 자르고 아직 소녀티도 벗지 못한 다연이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던졌다.

    “두고 나오면 안 될 상황이니?”

    다연이는 잠시 말없이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은 주먹을 바라봤다. 눈치를 보던 효선이가 입을 벌리려는 순간 다연이의 작고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죽어요.”

    다연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효선이가 티슈를 다연이 앞으로 조심스레 내밀었고, 나는 다연이를 말없이 바라봤다. 다연이의 말이 이어졌다.

    가족 울타리 뛰어넘어 독립 꿈
    “전에 강아지 있을 때도 그랬어요. 제가 워낙 제멋대로 하니까 만날 강아지를 없애겠다고 협박하더니, 어느 날 집에 돌아가니 정말 없었어요. 개장수에게 넘겼어요.”

    다연이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티슈를 집어 들어 눈가를 눌렀다.

    다연이는 사랑이 많은 아이였다. 말을 툭툭 내뱉고 눈을 치켜떠 노려보는 듯한 인상이었지만 마음은 곱디고왔다. 학생이면서 시간제 일을 수도 없이 했다. 돈을 모아 집에서 독립하는 것이 꿈이었다. 고양이 밥도 다연이가 늘 샀다. 가족 누구도 고양이 밥을 챙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독립할 때 고양이를 꼭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다.

    단짝 효선이와 아웅다웅

    효선이는 다연이가 고양이에게 그토록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고양이를 데리고 나오는 데 동의했다. 효선이네 집이 크니 방 하나를 다연이에게 내주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효선이도 아버지를 조르는 중이라고 했다. 효선이네 집에는 진돗개가 있다. 봉구와 봉식이. 봉구는 하얀색 암놈이고 봉식이는 까만색 수컷이다. 3주 전 봉식이가 가출했다. 땅을 파고 밖으로 나간 것이다. 봉구는 요즘 잘 먹지도 않고 늘 대문만 바라본다고 한다.

    다연이는 여름(고양이 이름)이와 봉구가 잘 지낼까 걱정했다. 효선이는 친구와 같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개와 고양이가 잘 지낼 수 있다고 얼토당토않는 이유를 줄줄이 댔다. 효선이는 엄마를 먼저 보내고 외로움을 유독 탔다. 다연이가 함께 살면 효선이에게도 참 좋을 것이다.

    효선이와 다연이는 단짝이었다. 효선이 말에 의하면, 다연이는 효선이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친구다. 또 다연이를 좋아하는 남자가 많은데, 다연이는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는다고 했다. 다연이는 남자에 관심이 없다. 귀찮단다. 다연이는 효선이가 쓰레기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구박했다. 사기꾼에, 직업도 세탁하고 불효자라고. 나는 두 친구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효선이와 다연이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돼줄 것이다. 이것이 잘못됐다, 저것이 잘못됐다 해도 결국 서로에게 자기 고민을 털어놓으며 멋진 우정을 지켜갈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것은 많지만, 또 아무것도 없기도 하다. 아이는 스스로 크고, 친구를 만나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가장 좋은 부모는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부모다. 부모가 서로 혹은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늘 화난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는 상상 이상의 상처를 받게 된다. 아이는 어쩌면 하늘을 나는 나비인지도 모른다. 애벌레로 살다 번데기로 한껏 무르익은 뒤 하늘을 훨훨 나는 자유롭고 어여쁜 나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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