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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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는 항구다

  • 박형권

    입력2013-08-09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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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당포는 항구다
    방세 두어 달 밀리고 공과금 고지서는 쌓여만 가는데

    죽을 땐 죽더라도 삼겹살 몇 덩이 씹어보고 싶어서

    전당포 간다

    육질이 쫄깃했던 내 젊음은 일회용 반창고처럼 접착력이 떨어져

    오늘 하루 버티는 일에도 힘껏 목숨을 건다



    언제나 돈 떨어지면 공연히 허기지는 것처럼

    봄비 내리면 입이 궁금해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김치! 김치! 벙싯벙싯 웃었던

    수동식 디카를 맡기고 십만원을 받는다

    고기도 고기지만 우선 급해서

    잔치국수 곱빼기! 커다랗게 시켜놓고 디카를 먹는다

    필름 없는 국물에

    찰칵찰칵 떠오르는 식구들을 먹는다

    처음 내린 서울역 국밥집에서 땀 흘리며 씹었던 나의 쓸개는 어디 갔나

    홍릉수목원 생강나무 옆에서

    나에게 쏟아지던 샛노란 양념, 온몸에 스며들 때까지

    꾹꾹 절여놓은 나라는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먼 것 당겨주고 벅찬 것 밀어주던 디카, 허기 속에 밀어 넣고

    우적우적 깍두기를 씹으며

    울렁거리는 서울을 새삼 사랑한다

    멀미로 채워진 위장을 내려놓고 창밖을 내다보니 멀리

    개나리 흐드러진 정육점이 아련한데 고기 생각 어디론가 사라지고

    봄비 내린다는 이유 하나로

    저기 저 내가 전당포 간다

    그래, 불러야겠다 이쯤에서는

    아직도 잔술을 파는 골목 안 밥집처럼

    전당포는 항구라고

    ‘전당포’에서 배를 타고 어디를 가본 적이 있는가. 전당포구는 깊고 푸른 바다가 아니라, 도시 시궁창이나 하수구와도 같은 곳이다. 오물이 던져진, 어둑한 도시 뒷골목에서 멀고 아득한 곳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이 시에 나오는 세 개의 느낌표가 창이 되어 나를 찌른다. 도시 빈민의 삶은 아직도 여전하거나 더 굴곡져 있다. 앞으로 더하겠지…. 그것이 가슴 저린다. ─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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