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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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길

  • 함민복

    입력2013-03-15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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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한 길
    길에 진액을 다 빼앗긴

    저 바싹 마른 노인

    길이 노인을 밀어내는지

    노인은 걷지도 못하고

    길 위에서 촘촘 튄다



    어찌 보면 몸을 흔들며

    자신의 몸속에 든 길을

    길 위에 털어놓는 것 같다

    자신이 걸어온 길인, 몸의 발자국

    숨을 멈추고서야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을거나

    길은 유서

    몸은 붓

    자신에게마저 비정한

    길은 짓밟히려 태어났다

    내 몸속에 여러 길이 있다는 걸 눈치챈 건 아주 오래전이다.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친구에게, 부모에게 가는 길이 어느 날 툭툭 끊어진다. 노인이 죽으면 멋진 길 하나가 세상에 태어난다. 시인은 길이다. 비정할지라도 문학이 길이라고 믿고 간다. 아득하지만…, 봄에 꽃이 피니 조금은 더 갈 수 있으리라. 도(道)는 이루는 게 아니라, 그저 가는 과정일 뿐이다. ─ 원재훈 시인

    사진·김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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