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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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좌표와 어젠다 설정 실패

개방화·일상화 전략 통해 ‘보편적 진보’로 거듭나야

  •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dycho@korea.ac.kr

    입력2009-07-08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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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를 위한 진보의 쓴소리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어법에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적 현실이 잘 응축돼 있다. 예컨대 ‘빼앗겼다’는 빼앗긴 주체와 뺏은 주체가 모두 설정되는 어법이다. 그러나 ‘잃어버린’이란 표현은 정권을 ‘잃어버린’ 주체로서의 보수진영은 함의하지만, 정권을 획득한 주체로서의 진보진영은 설정하지 않는다. 10년간 정권을 가져간 쪽은 익명의 누군가일 뿐이다.

    여기에는 정치권력의 주인은 보수세력이었고 언제나 보수세력이어야 하기 때문에, 정권을 ‘획득’한 진보세력은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내재한다. 결국 ‘분실’의 주체만을 함의한 ‘잃어버린 10년’은 대립관계를 넘어 존재 부정의 극단적 문법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정치적 수세로 저항과 투쟁의 주체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수세적 위치에 있었고 그에 따른 저항과 투쟁의 주체였다. 해방 이후 격렬한 좌우 이념대결에 이은 미군정의 노동운동 통제와 좌익 탄압은 이 시기 진보세력을 크게 위축시켰다. 6·25전쟁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를 축으로 하는 분단체제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좌파는 적어도 합법적 공간에서는 존립하기 어려웠다.



    1960, 70년대 군부 권위주의 아래, 특히 70년대 유신체제에서 진보진영은 이른바 재야와 학생운동으로 새롭게 등장했고 반유신운동을 주도하는 이 시기 진보진영의 이념은 자유주의를 크게 넘어서지 않았다.

    1980년대는 진보진영으로서는 특별한 시기였다. 신군부가 주도한 광주에서의 극단적 국가폭력은 국가권력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함으로써 진보진영이 유례없이 급진화했다. 계급지향의 민중주의와 반미 민족주의로 무장한 진보주의는 반정부 저항의 중심이 됐다. 그러나 87년 6월 대항쟁이 ‘개헌’을 향한 민주화의 물결로 귀결되면서 급진좌파의 진보주의는 분단체제의 벽을 넘지 못했다.

    곧 이은 동유럽 공산주의의 붕괴는 한국에서 급진적 진보를 빠르게 쇠퇴시켰다. 1990년대 한국의 진보진영은 민중정당을 실험하거나 보수야당으로 흡수되는 흐름과 민주노조의 건설과 민노당으로 이어지는 흐름, 나아가 시민운동의 흐름 등으로 분화·확산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진보는 보수야당을 아우르는 넓은 의미의 87년 세력으로 민주화의 주체를 포괄하게 됐으며, 보수진영은 권위주의 정권을 축으로 하는 이른바 산업화의 주체로 구획됐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민주화세력의 집권이라는 점에서 진보정권으로 불릴 수 있다. 두 정권은 약 10년에 걸쳐 민주화운동의 제도화가 정권 차원에서 전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특유의 리더십과 보수와의 일정한 타협을 기반으로 성립한 김대중 정부와는 달리,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보수적 ‘사회권력’에 포위돼 정치적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오늘날 진보진영은 집권의 경험을 가졌음에도 ‘운동’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설득적 권력운용에 실패했고, 민주화 이후의 어젠다 설정에 실패함으로써 정치적 구심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최근의 여건 변화는 진보진영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첫째,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신자유주의의 자기성찰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 시점에서도 고집스럽게 지속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진보진영이 좀더 뚜렷한 정체성을 확보하는 기회일 수 있다. 셋째,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권력운용 방식은 새로운 민주주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 같은 지구적 사회변동과 국내 정치조건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기 위해 진보진영은 권력운용의 실패와 민주화 이후 좌표 설정의 실패에 대해 뼈아픈 성찰을 해야 한다. 말하자면 운동의 관성을 넘어 제도의 섬세한 운영방식을 포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과제를 설정해 포용과 합리를 갖춘 보편적 진보주의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아래로 흘러 세상 변화시키는 ‘작은 민주주의’ 필요

    진보세력은 민주화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간 우리 사회가 이룬 민주주의의 성과는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민주적 제도와 절차의 ‘구축’에 있다. 제도를 갖추는 것과 운영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만들어진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는가의 문제는 또 다른 민주주의의 과제다. 제도의 구축과 관련된 민주적 질서를 ‘거시 민주주의’ 질서라고 한다면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는 소통과 설득, 합의의 과정은 ‘미시 민주주의’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사회가 지구적 수준에서 동시성을 경험하고 있다면 정치질서의 수준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한계는 이러한 동시성의 과제 중 하나다. 서구에서 이미 활발하게 논의됐으며 또 실험되고 있는 참여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 결사체민주주의, 주창민주주의 등은 탈근대적 사회변동과 시민적 욕구를 반영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제안이다.

    이러한 제안들은 소통과 설득, 합의의 정치과정을 수용한다는 측면에서 미시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미시 민주주의를 주도하는 진보의 전략적 과제는 민주주의의 개방화, 구체화, 일상화 등으로 구현될 수 있다. 참여와 심의 기회의 확대를 기반으로 한 개방화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주의의 결핍을 보완하는 과제다.

    미래 좌표와 어젠다 설정 실패
    균형발전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형평 논리에 기초한 정책의 구체화는 경제민주주의를 포괄하는 미시 민주주의의 과제가 돼야 한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일상화 과제는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기획하는 ‘작은 민주주의’의 실행과 결부돼 있다. 새로운 진보는 아래로 흘러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지역과 주민, 일상의 삶에 밀착해 민심과 함께해야 한다. 아래로 흐른 물이 큰물을 이루고 작은 민주주의가 큰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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