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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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그때그때 달라요

단순한 이분법적 분류는 곤란 대 흐름 따라 보수와 진보 상대적 개념 변모

  • 최한수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hans@konkuk.ac.kr

    입력2009-07-08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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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와 진보, 그때그때 달라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500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 재임 때 바닥권이던 그의 인기를 되돌아보면 놀라운 숫자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추모와 애도라는 단순한 감정이 이처럼 많은 국민을 동원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바로 이데올로기다. ‘고학력’ ‘상류사회’ ‘권위’에 대한 반제(antithesis)인 ‘서민’ ‘탈권위’가 이념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상류사회는 자유가 좋을 것이고 서민은 평등을 바랄 것이다. 서민들이 평등에 대한 욕구를 ‘추모’로 표출했다고 본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 또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논쟁이 제기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논의되는 이념들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념에 대한 부정확하고 왜곡된 인식이나 지식은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이나 처방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념들을 대별하는 용어다. 보수는 사회의 기존 가치와 체계, 질서를 유지하려는 이념을 가리킨다. 반면 진보는 기존 질서를 타파하거나 개혁해 변화를 추구하는 이념을 담고 있다. 보수와 진보 모두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소중한 가치로 인식한다. 전자가 자유를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평등을 강조한다. 자유와 평등은 둘 중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방향이 달라진다.



    보수를 우익 혹은 우파, 진보를 좌익 혹은 좌파로도 부른다. 이 용어들은 프랑스혁명 직후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의 회의장에 앉은 위치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개념에서 출발해 우익은 자유주의자에서 파시스트까지, 좌익은 사회민주주의자에서 공산주의자까지 여러 스펙트럼을 포괄하고 있다.

    용어들은 본질적 의미와 함께 뉘앙스도 품고 있는데, ‘우익’과 ‘좌익’이 ‘우파’와 ‘좌파’보다 강한 의미를 전달한다. 우익과 좌익은 해방공간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의미했다. 우익은 반공이념의 총체였고 좌익은 용공분자 불온이념인 동시에 불법집단이었다. 이제 북한이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인식되면서 좌익은 진보이념을 통칭하는 좌파라는 말로 대체됐다.

    따라서 우리의 좌파는 반보수적인 진보이념과 이른바 통일세력, 북한에 호의적인 세력을 가리킨다. 다만 시민들이 진보의 개념보다는 좌익 이미지에 익숙하다 보니 좌파와 좌익을 동일시하면서 반보수적 이미지는 묻히고 ‘친북 빨갱이’로 덧칠되는 실정이다.

    보수와 진보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다양해서 교차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변화와 맞물려 돌아갈 때, 어느 한 시대에서는 진보이념이었던 것이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는 보수이념으로 평가되고 분류되기도 한다.

    이념의 학문적 분류

    진보 이념


    사회주의
    19세기 자유주의에서 파생한 이념이다. 본질적으로 공상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사회주의는 자유주의가 주창하는 자유에 대해서는 공감했으나 경쟁은 파괴적인 것이고, 사유재산은 불공평하고 차별을 지속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새로운 이념으로 발전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국가 경제체계에서 소유의 원칙에 근본적 차이를 갖는다. 사회주의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배제하는 배경은 마르크스의 말로 하면 ‘노동력 착취’를 막기 위해서다.
    19세기 후반에는 사회주의란 용어가 훨씬 폭넓게 사용됐지만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동의어였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어느 정도 이를 수긍했으며 사회민주주의라는 명칭에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회주의는 200여 년의 역사를 겪으면서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라마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정당이나 정부가 취하는 노선이 다르다. 이러한 사회주의들은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대별된다. 레닌이 ‘사회민주주의’ 대신 ‘공산주의’를 선택하고 10월 혁명을 성공시키면서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자들에게서 비판과 경멸의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기도 했으며, 결과적으로 ‘민주사회주의’라는 명칭도 파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사회주의자들은 자유와 평등의 원칙 속에서 민주주의를 수단인 동시에 목표로 간주한다. 수정사회주의 이론 대가인 베른슈타인은 1906년 “민주주의는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수단이고, 사회주의가 실현되면 사회주의가 취할 형태”라고 언명했다. 민주사회주의는 평등과 함께 자유를 소중한 가치로 하고 있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책임의 행사, 즉 타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자기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공산주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물에 관념적 기초를 두고 레닌 등에 의해 발전한 이데올로기. 마르크스가 본 공산주의는 사유재산과 인간 자기소외의 완전한 폐지가 이상이며, 따라서 인간을 통한, 인간을 위한, 인간 본성을 실질적으로 발휘하자는 사상이다. 그것은 인간 자신의 사회적 존재, 즉 참다운 인간으로의 복귀이며, 공산주의는 완전히 발휘된 인본주의이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책이다.
    북한의 공산주의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주의가 마오쩌둥을 세력의 혁명으로 삼아 창설된 데 비해 북한 공산주의는 한반도의 해방공간에서 소련에 의해 북한에 조직적으로 이식된 스탈린주의가 그 바탕이다. 스탈린은 또한 우상화와 더불어 공포정치, 대량 숙청, 강제 노동수용소, 정신병동, 테러리즘, 비밀경찰 조직망을 구축했는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전체주의 체계는 바로 이를 옮겨온 것이다. 다만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은 70년대 초 조선로동당의 지도이념에서 대체된 통치이념이다. 이는 스탈린주의를 기본으로 유교적 전통사상을 가미해 가부장적 통치이념으로 변질시켜놓은 것이다.
    공산주의는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 권위주의적 지배원리로 변질되면서 파시즘, 나치즘과 함께 전체주의 정치체계의 다른 이름으로 인식됐다. 이런 점에서 현대 공산주의 이념을 단순히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상과 같은 것으로 여기거나, 레닌과 스탈린 또는 마오쩌둥이 발전시킨 사상으로 인식해서도 안 된다.


    이념에 대한 왜곡된 인식, 엉뚱한 처방 낳을 수도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이념은 자유주의에서 태어났다.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토대로 하자 이에 대응하는 사회주의가 출현하면서 보수와 진보로 갈리게 됐다.

    보수이념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자유주의에서 고전적 자유주의, 현대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보수주의, 신보수주의로, 자본주의는 수정자본주의로 변화해왔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보수적이라면 현대적 자유주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로의 복귀라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보수주의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보수주의에 비해 신보수주의는 사회주의 요소를 일부 수용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다. 자본주의에 비해 수정자본주의도 사회주의 논리를 부분적으로 포용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명한 진보이념이다. 아울러 ‘제3의 길’은 자본주의 관점에서는 진보이념이지만 사회주의 관점에서는 보수이념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보다 근본적이라는 점에서 극단적 이념이다. 다만 공산주의를 주창하고 이론화한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의도와 달리,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 공산주의가 전제정치의 수단이 된 까닭에 공산주의로 포장된 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는 권력의 도구가 됐다.

    우리 사회는 특히 진보이념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어 이를 피하려 한다. 보수진영에서는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 부르지만, 북한의 공산주의는 왕조시대에나 있는 부자세습 권력체계라는 점에서 더 이상 진보의 모델이 아니다. 북한은 이제 좌파나 진보의 대상에서 안보·민족·통일 정책의 대상으로 분리돼야 한다.

    김대중 정권이 진보라면 그것은 이전의 보수정권과 상대적인 점에서 진보정권이다. 일부 정책이 수정자본주의를 따랐다는 점과 그동안 견지되던 상호주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으로 변화시켰다는 점 때문이지, 그 대상이 북한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보다 수정자본주의적인, 혹은 분명한 진보이념을 토대로 하는 정권이었다. 예를 들면 균형발전 정책과 부동산 정책은 평등추구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권이 이를 사회주의, 진보, 평등으로 부르지 않은 것은 진보이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 대한 정치적 고려에서였을 것이다. 진보와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정당지지율은 이러한 해석의 충분한 단초가 된다.

    보수주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는 정당을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사실상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으로 분할돼 있다. 이념 차이가 없다 보니 지역을 분할의 기초로 하고 있다. 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한 진보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은 민주노동당 혹은 진보신당뿐이다.

    이제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당당히 전면으로 나와야 한다. 특히 정당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에게 자신들의 정책을 가장 간명하고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용어는 ‘보수와 진보’ ‘자유와 평등’ 어느 하나의 선택이다. 국민도 이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국민 스스로가 이제 공산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념의 학문적 분류

    보수 이념


    자유주의
    모든 이념의 어머니요 아버지다. 보수나 진보도 자유주의의 반제 혹은 합제(synthesis)의 한 형태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이해하려면 자유주의의 본질과 발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자유주의는 진보적 이념으로 출현해서 현재는 보수적 이념의 한복판에 자리한다. 17세기 절대왕정 체계에서 자유는 결국 국가권력의 제한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관념이었다. 그러다 존 로크에 이르러 국가의 권력과 기능을 제한적으로 보는 자유주의 관념으로 바뀌었고, 프랑스의 몽테스키외를 비롯한 계몽주의 학파와 미국의 건국 주역들을 거쳐 보편화됐다. 자유주의는 결사 및 사유재산의 강조와 함께 절대군주제에 대항해 법이 지배하는 의회제에 대한 주장도 포함했다는 점에서 개혁적, 진보적이었다.
    그러나 이념은 추구하는 가치나 목표가 가시권에 들어오면 그에 대응하는, 또는 방향을 달리하는 다른 이념의 도전을 받는다. 자유주의도 프랑스혁명 때 평등으로부터 도전받으면서 보수이념으로 밀렸다.

    자본주의
    사유재산 소유 및 축적에 대한 법적인 제한의 부재, 자유시장, 즉 경제에 대한 정부의 불간섭과 이윤동기를 특징으로 한다. 자본주의는 이윤의 획득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으로 많은 사람은 이윤동기를 자본주의의 동력으로 본다. 1930년대의 대공황을 계기로 자유방임 정책이 배제되면서 자본주의는 대부분 나라에서 회의의 대상이 됐고, 자유주의 국가에서 태양처럼 홀로 빛나던 아담 스미스의 주장은 존 케인스(1937)의 주장, 즉 적극적인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에 가려졌다. 케인스의 이러한 노선을 기존 자본주의와 구분해 수정자본주의라고 한다. 수정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상당한 변화로, 특히 경제적 자유가 국가권력에 의해 제한되면서 수정된 양만큼 평등지향적이라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보수주의
    보수주의의 개념은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므로 각각의 상황에서 적절한 내용을 담아 표방할 수 있다. 한국, 영국의 보수주의와 캐나다의 보수주의, 일본의 보수주의가 다르고 1890년대의 미국 보수주의자와 현대의 보수주의자가 다르다. 그러나 보수주의는 각 나라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적 원류에서 파생됐다.
    보수주의는 전통가치를 보호하고 역사와 기존 관행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더 새롭고 정의로운 사회질서 확립을 위한 진보적 변화를 모색하는 데 있어선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보수주의자들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 때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변화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변화한다는 시각이다. 보수주의 철학에서 자유와 평등이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자유의 일관된 목적은 개인과 가족의 재산(물질 및 비물질적인 것도 포함)을 보호하는 것인 반면, 평등의 고유한 목적은 한 공동체에서 불평등하게 분배된 물질적, 비물질적 가치를 재분배하거나 평준화하는 것이다. 보수주의 특성은 변화에 대한 저항, 전통에 대한 존중과 인간 이성에 대한 불신,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이용에 대한 거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선호와 전통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자유의 제한, 반평등주의와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으로 요약된다.

    신보수주의
    새로운 보수주의(New Conservatism)는 유럽의 보수주의가 미국에 이식되면서 태어난 미국적 보수주의를 뜻한다. 이것이 1960년대 급진적 보수주의를 거쳐 70년대에 신보수주의(Neo-Conservation)를 낳았다. 미국 신보수주의의 기원은 전통보수주의가 아닌 현대자유주의에서 찾을 수 있는데, 30년대 뉴딜 자유주의자들에게서 비롯됐다. 특히 신보수주의는 60~70년대에 자유주의 세력이 자기분열 과정을 겪으면서 분화된 일부 세력이 신좌파와 자유주의적 급진세력에 대응하는 가운데 점차 보수화하면서 그 명칭을 얻게 됐다. 이어 80년 전후부터 2000년 전후로 신보수주의자들은 민주당과 결별하고 레이건의 공화당 행정부에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신보수주의는 자본주의에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며, 현대자유주의에 뿌리를 둔다는 점에서 사회보장제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복지정책의 완전 철폐를 주장하는 전통보수주의자와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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