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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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혈세로 안식년, 보고서는 깜깜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연구연가’ 제멋대로 운영, 억대 지원금 수령도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10-14 17: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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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 소속 연구기관 연구원들이 평균 1년간 연구연가를 사용하고도 연구보고서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연구연가 비용이 국민 세금으로 처리된다는 점에서 연구연가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10월 7일 새누리당 김선동 의원(서울 도봉을)은 “경인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구연가를 운영하는 24개 연구기관 가운데 58%에 달하는 14개 기관이 연구자에게 연구 과제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연구보고서를 전부 제출받은 기관은 단 2곳뿐”이라고 밝혔다. 결국 나머지 22개 기관은 연구원들에게 연구연가만 줄 뿐 어떤 책임도 부과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인 셈. 연구연가는 해당 기관 연구원이 자신의 학문 발전을 꾀하고 이를 통해 연구기관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해외 또는 국내 기관에서 자율적으로 연구하는 제도로, 대학교수들의 안식년을 본떠 만들었다.

    이들 연구기관을 총괄 감독하는 경인사는 과거 각 부처 산하에 존재하던 연구기관이 1999년 국무총리 산하 경제 분야 연구회와 인문사회 분야 연구회로 분리돼 있다가 2005년 두 연구회를 하나로 합치면서 탄생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국토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산업연구원, KDI국제정책대학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등 26개(부설기관 3개 포함, 2곳은 연구연가 미실시) 연구기관이 이에 속한다. 기관별로 사용하는 연구연가 명칭도 다양하다. 특별휴직, 학술파견, 자율연구, 연구년·방문연수, 연구휴직 등이 대표적이다.



    한 쪽짜리 보고서도 통과

    보통 연구연가 대상자는 해당 기관 원장이 선발하며 기간은 6개월부터 1년 정도까지 가능하다. 지난 5년간 연구기관들의 연구연가 보고서 제출에 관한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연구자 전원에게 연구보고서를 받은 기관은 KDI한국개발연구원과 KDI국제정책대학원뿐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연구연가를 다녀온    6명 중 단 1명도 연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역시 8명 중 1명만, 통일연구원은 9명 중 2명만 연구보고서를 제출했다. 심지어 내규상 안식년(연구연가) 기간 연구과제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는 연구기관도 있다.



    설령 연구보고서를 제출했다 해도 그 내용이 부실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한 쪽짜리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하고 ‘해외 대학에서 어학연수와 강의를 들었다’는 식으로 출장보고서 수준의 내용도 있었다. 또한 ‘연구연가를 통해 앞으로 어떤 주제의 연구를 실시하겠다’는 식의 ‘계획표’를 제출한 이도 허다하다. 과연 연구연가 기간에 제대로 연구를 수행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연구보고서와 달리 연구연가 대상자에게 지원되는 예산은 상당하다. 연구기관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가족수당, 자녀학비보조금, 현지 체류비를 지급하고 있으며 상해질병보험료, 여행자보험료, 해외이주비 등을 주기도 한다. 또한 연구기관 대부분은 연구연가로 실제 근무하지 않음에도 해당 연구원에게 기본 연봉에 성과급까지 지급하고 있다. 특히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12년까지 월 체류비로 3700만~4000만 원을 지급하면서도 능률성과급을 챙겨줬고,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지난해까지 능률성과급을 지급해 개선조치를 받았다. 올해 기준 24개 연구기관(2곳은 해당사항 없음)의 연구연가자에게 지급된 금액(연봉 포함)은 총 40억 원가량이며 기관별로 적게는 1명, 많게는 5명이 연구연가를 쓰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김선동 의원은 “연구연가는 국가 재정으로 운영하는 제도임에도 사익을 채우는 행위로 제도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며 “연구보고서를 의무화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연구기관에 적용되는 공통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 대해 정작 경인사는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연구기관별로 설립 시기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획일화된 잣대로 연구연가제도를 시행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 경인사 한 관계자는 “보고서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질 또한 낮다는 점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이 부분이 반드시 보완되도록 각 연구기관에 통보했다. 공통 가이드라인 구축과 관련해서도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기관별 규모와 예산이 다르다 보니 하나로 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연구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인정하는 것이 연구회의 목적인 만큼 강압적으로 밀어붙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자율성만 강조, ‘나눠 먹기’ 식 특혜로 변질

    이 관계자의 해명처럼 실제 각 연구기관은 예산 면에서 ‘빈익빈 부익부’를 겪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연구연가를 다녀온 연구원이 2명뿐인 기관이 있는 반면, 같은 기간 34명이 혜택을 누린 곳도 있다. 지원 기준과 액수도 중구난방이어서 월급 외 기타 비용(가족수당, 자녀학비보조금, 체류비 등)조차 제각각이다. 체류비의 경우 많게는 20배가량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경인사 관계자는 “사회통념상 적당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추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경인사 관계자는 절반 이상의 연구기관이 연구연가자에게 연구 과제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연구 주제는 연구자 스스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기관이 주제를 부여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연구연가를 쓰면 인력이 모자라 기존에 진행하던 연구 과제를 그대로 들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해명했다. 이는 곧 업무보다 연구연가를 우선시하는 현 실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실제로 연구원 대부분은 입사 7년 혹은 10년에 한 번꼴로 연구연가를 챙기고 있다. 결국 연구연가제도 자체에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 행정전문가는 “자신에게 당연한 혜택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사실은 모럴헤저드(도덕적 헤이)의 전형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공기관 종사자로서 신분을 확실히 보장받는 상태에서 성과 창출에 의한 포상이 아니라 단순히 재직 연수를 채웠다는 이유로 ‘나눠 먹기’ 식 특혜를 누리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또한 이러한 폐단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면서 비판 의식 자체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실질적인 관리·감독이 없는 공공기관은 감시망에서 한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관행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조직 구성원이 자성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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