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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대칭

끌어당기고 밀어내며 팽팽한 긴장감 연출

대칭

어린 시절 미술시간에 누구나 한 번은 했던 미술기법 가운데 데칼코마니가 있다. 종이 한쪽에 물감을 흘린 뒤 반으로 접으면 반대쪽에 물감이 찍혀 양쪽에 같은 무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떤 모양이 나올까 궁금해하며 신이 나서 여러 번 반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굴, 꽃, 나비를 만들기도 하고 예술가라도 된 듯 추상적인 그림을 완성하기도 했다. 상상하던 모양이 나오면 즐겁고, 예상치 못한 형상이 나와도 재미있었다. 

‘복사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데칼케(de′calquer)’에서 유래한 데칼코마니는 말 그대로 한쪽 면을 다른 쪽 면에 복사한다. 한쪽 면에 붉은색 물감을 칠하면 다른 쪽에 붉은색, 파란색을 칠하면 파란색을 그대로 반사하는 데칼코마니는 한 부분의 모습을 다른 쪽에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대칭이다.


대칭 모양의 꽃이 더 오래 살아남는 이유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대칭이란 양쪽 부분이 동일한 위치와 모양으로 배치된 상황을 가리킨다. 우리는 완전한 대칭을 이룬 형태를 보면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모습도 대칭을 이루고 있다. 팔 두 개, 다리 두 개가 몸통을 기준으로 대칭이며 얼굴도 눈 두 개, 귀 두 개가 대칭을 이룬다. 포유류뿐 아니라 꽃과 나뭇잎 등 대칭을 이루는 자연의 모습은 무수히 많다. 마커스 드 사토이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가 저서 ‘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소개한 생태계의 대칭 이야기는 흥미롭다. 책에 의하면 벌들에게 대칭은 생존의 문제다. 

대상과 거리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는 데다 색맹인 벌이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이 바로 대칭이다. 완벽한 대칭 모양의 꽃들이 많은 벌을 끌어모아 진화경쟁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뿐 아니라 공장형 닭장에 사는 닭의 달걀보다 방목한 닭이 낳은 달걀이 더 대칭적이다. 이처럼 대칭은 아름다움, 혹은 진화를 위해 형성된 자연의 섭리로 작용한다. 

숲속의 꽃들은 특별한 규칙 없이 아무렇게나 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자인으로 표현하면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자연의 완전한 대칭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로 손꼽히는 윌리엄 모리스는 자연 속에서 어우러지며 피어난 꽃들을 벽지로 디자인했다. 그가 1800년대 중·후반 디자인한 벽지의 꽃들은 곡선으로 질서 있고 균형 잡히며 조화롭다. 대칭은 같은 모양의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며 자연스러운 모습 아래서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대칭으로 디자인된 꽃 하나는 반대쪽에 자신과 같은 모습을 복사하며 살아 있는 자연의 모습을 창조해간다.


공감하는 대칭

[www.adsoftheworld.com]

[www.adsoftheworld.com]

멕시코 한 쇼핑몰 광고에도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꽃잎으로 보이던 부분이 실제로는 고급스러운 하이힐들이 뒷굽을 맞대고 방사형으로 원을 그린 모습이다. 아래 진분홍빛 구두 사이를 기준으로 반을 접으면 데칼코마니처럼 완전한 대칭 모양의 꽃이 된다. ‘Luxury. It’s in your nature’(럭셔리. 그것은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라는 광고 카피에서 말하듯, 자연의 완전한 대칭이 선사하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럭셔리한 제품이 럭셔리를 반사하면서 아름다운 제품들이 풍부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에겐 ‘거울뉴런(Mirror Neuron)’이라는 신경세포가 있어 타인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한 것처럼 반응하고 공감한다. 신경심리학자인 자코모 리촐라티 이탈리아 파르마대 교수 연구팀은 원숭이가 땅콩을 쥔 사람을 보고 자신이 땅콩을 쥔 것과 같은 뇌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영화를 볼 때 관객 반응과도 비슷하다. 마치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인 양 그의 감정에 따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며 손에 땀을 쥐면서 응원하지 않던가. 관객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정서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한다. 인간의 뇌에 자리 잡은 대칭의 기능으로 마음이 함께 공명한다. 

신영복 교수의 ‘담론’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된 내용이 있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비대칭적인 관계가 아니다’라는 부분이다. 가르치는 일은 이미 알고 있는 바를 깨우치는 것이므로 설득하거나 주입하는 것이 아니며 ‘공감’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아,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위로이자 격려의 교류인 것이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뿐 아니라 대화하는 사람 간에도 대칭적 관계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금 앞에 있는 사람과 자신은 대칭 거울을 사이에 두고 못마땅한 표정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미소 짓는 표정은 미소 짓는 표정으로 서로를 반사하고 있다. 아기에게 ‘엄마, 엄~마~’ 하며 열심히 단어를 가르치는 엄마의 행복이 아기의 얼굴에도 떠오르는 것처럼 대칭은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반사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창조기법이다.




입력 2017-12-26 16:26:12

  • 신연우 아트라이터 dal_roa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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